볼쇼이 극장에서 만들어진 인연
모스크바 강을 보며 걸었던 고르키 파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계속 연락하자는 약속과 함께
각자 자기의 길로 떠났다. 어차피 나와 같은 숙소에 머무는 피터는 나와 계속 같이 다니기로 했다.
내가 1박 2일로 모스크바에 있으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이름부터 크다는 의미를 가진, 볼쇼이 극장이었다.
애초에 한국에서 볼쇼이 극장 공연을 예매하려 했지만, 매진이어서 아쉬웠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터에게 가보자고 했다.
볼쇼이 극장의 매표소는 극장을 보면서 왼편에 있었는데, 마침 <돈까를로> 오페라가 예정돼있었다.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니, 6층 스탠딩석이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공연장이 얼마나 크길래 6층까지 있냐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공연 티켓의 가격이었다.
6층 스탠딩석 가격은 단돈 100 루블!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1800원 정도 하는 돈이었다.
나는 이런 경이로운 가격에 이런 공연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실 나는 이런 공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들은 종종 봤었지만,
대형 홀에서 하는 오페라나, 연주회, 뮤지컬 등은, 한 달씩 연구비 벌어 생활했던 내 대학시절 때는
부담스럽고 사치스럽다고 생각해 관심 없이 살아왔었다.
그랬던 내가 오페라를 보러 간다니! 설레었다.
피터와 나는 저녁을 먹고 공연장에 입장했다. 극장 내부는 바깥보다 더 고급스러웠다.
마치 오래된 서양 영화 세트장을 보는 느낌이랄까?
공연장 내부는 1층부터 시작해 6층까지 있었고, 천장은 성화로 꾸며진 돔 형태로 되어있었다.
그냥 이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사실 공연장을 보면서 이 자리 가격이 왜 100 루블인지 알 수 있었다.
무대는 2/3밖에 보이지 않았고, 연기자들은 손톱보다 작게 보였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모든 사람과 같은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는 가치 있는 자리였다.
한국에 만약 이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오페라에 대해 거의 모른다. 한 가지 아는 것은 굉장히 길다는 것.
중간중간 막이 끝날 때는 피터랑 같이 뒤에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놀고 있는데, 내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우리 둘을 흥미로운 듯이 보고 있었다.
그 친구와 간단하게 눈인사만 나누다 붙임성 피터 덕뿐에 어느새 우리와 함께 공연을 즐기게 되었다.
그 친구 이름은 폴리나. 모스크바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종종 공연을 보러 온다고 했다.
이 친구도 영어를 (나만큼...) 진짜 못했는데, 피터가 가운데서 서로 쉬운 영어로 바꿔주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폴리나는 가져온 귤을 꺼내 한쪽씩 나눠 먹고, 내일 큐브 대회에 참여한다며 자기 큐브 실력도 보여주었다.
나도 폴리나조차 못 가본 러시아 여행사진을 보여주기도 하며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겁게 보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폴리나는 자기의 주소를 적어주었다.
내 여행이 앞으로 재미있고, 기대가 된다면서,
여행 때마다 자기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주면 좋겠다는 말을 함께 남겼다.
내가 앞으로 여행해야 될 의미가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새로운 여행지 부다페스트로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하루였지만, 모스크바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만든 피터와도 인사를 하고 나는 아르바트 거리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벽화가 잔뜩 그려진 담장 앞에 섰다.
이곳은 바로 러시아 전설적 락밴드 키노의 보컬이자 고려인 가수인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평화의 벽'이었다.
자유를 향한, 그리고 저항을 외쳤던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서 짧은 모스크바 여행이지만,
이곳은 꼭 보고 가야 될 것 같다 생각해 숙소도 이 근처로 잡았다.
그를 위한 추모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지금 시대에 그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비록 이해 못하는 러시아어지만, 그의 노래를 함께 한동안 자리에 서서 공유했다.
나름의 추모를 마친 뒤 나는 다음 여행지로 가기 위해 브누코보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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