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행복학교 문해교실
추억은 시간과 장소로 기억된다. 이 추억을 누군가에게 편지로 선물해 본 적이 있는가? <편지쓰는 그곳>에서는 특별한 곳에서 편지를 쓰고, 선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편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함께 소개한다.
경주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자면, 집들 사이로 우뚝우뚝 솟아있는 고분들이 어우러진 대릉원 일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대릉원에서 중앙시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조금 특별한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1997년에 개교해서 약 2,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노인 문해교육기관인 경주행복학교다. 초등학교를 좁은 골목길 사이에 두고 위치한 경주행복학교 교실에는, 이 날도 한글을 배우러 가방을 메고 꼬부랑 길을 넘어온 할머니 학생들로 가득했다.
오늘은 특별히 그동안 배운 한글 실력으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할머니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첫 글자를 띄웠다. <편지쓰는 그곳>에서는 경주행복학교에서,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편지에 담은 할머니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예전엔 이름도 쓸 줄 몰라서 혼자 은행에 갈 수 없었다던 박태현 할머니. 4년이 지난 지금은 지나가는 간판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라고 한다.
“저는 어릴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그때는 친구들이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것이 너무 부러웠죠. 결혼하고 아이도 다 키우고 이제야 늦게나마 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요즘은 한 글자씩 배우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예전엔 은행에 가면 이름을 못 써서 남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지금은 저 혼자 은행에 다녀올 수 있고, 지나가다 보이는 간판도 읽을 수 있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에요.”
서위자 할머니는 이만큼 한글을 읽고 쓰게 도와준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고, 학교 오는 날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잘한다는 칭찬과 ‘몰라서 학교에 왔지,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하면서 응원해주세요. 나이가 들어서 허리, 다리가 아프지만, 지금까지 가방 한 번도 못 메 봤잖아요. 가방을 메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고 인사하는 것들이 너무 좋아요. 정말로 학교 오기 싫은 날이 없어요.”
편지를 쓴 할머니들은 쑥스럽지만 칠판 앞에 서서 자신이 쓴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에는 거창하고 화려한 표현은 아니지만 소소함에서 묻어 나오는 할머니의 진심이 학생들, 선생님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경주행복학교에서 93세로 최고령이신 최난이 할머니는 처음 써보는 편지라 너무 설레고 기쁘다고 했다.
“편지를 쓰니 흐뭇하고, 반갑기도 하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저는 편지를 쓰다 보니 한마디라도 더 좋은 말만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저를 기분 좋아지게 하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께 앞으로 목표를 질문하자 김경숙 할머니는 글을 읽고 쓰게 되니 더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여기서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글을 읽고 쓸 줄 알다 보니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요새는 ABC 배우고 있는데요. 앞으로 중학교도 졸업하고 싶고, 능력 되는데 까지 공부하고 싶어요.”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은 노인들에게 편지의 따뜻함을 알리고 가족들과 소통하는 문화를 확산하고자 경주행복학교와 연계해 ‘생애 첫 편지’ 캠페인을 진행했다. 편지로 하는 표현은 아무리 익숙한 관계더라도 새롭고, 설레게 한다. 이날 만났던 할머니들의 생애 첫 편지는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했다. 다시 학창 시절 소녀로 돌아간 할머니들이 앞으로 한글을 통해 새로운 삶과 목표를 이끌어 나가길 손자뻘의 필자도 같이 응원한다.
이날 수업에 참여하셨던 박태현 할머니와 서위자 할머니는 경상북도 평생교육원이 주최한 ‘2019 경상북도 문해교육 편지쓰기’ 대회에서 각각 대상, 금상을 수상했다.
글, 사진 이관민
원문: http://www.postnews.kr/npost_people_e/sub_read.asp?cate=21&BoardID=7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