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삶의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거나 단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오질 못했다.
나는 그저 '지금', 그리고 '여기'에 충실하려고 했다.
나쁜 일이 생기면 그저 그 순간을 해결하고 빠져나오려고 했고,
좋은 일이면 그 자체에 머물며 즐기려고 했다.
나는 철저히 현재형 인간이다.
어제에 대한 미련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머물지 않으려 했다.
물론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일을 위해 고민하는 것을
가능하면 짧게 끝내거나 최소화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상황, 이 순간이 즐거우면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무얼 더 바라겠는가. 지금 이렇게 좋은데,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에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라는 마법으로 그동안 잘 눌러 앉혀 왔는데
더운 여름날, 난데없는 바람이 슬쩍 불어오듯이
내 마음이 어처구니없게도 가끔 살짝살짝 눕는 것이었다.
왜, 그러지? 나이 탓인가? 갱년기인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도 모르게,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바람에 몸을 맡긴 풀처럼 누워버린다는 것이다.
온몸에 힘도 같이 빠지는 것 같다.
뚫린 작은 구멍으로 바람이 휙 하고 지나가는 것 같다.
오래 머물지 않기 위해 난 그 순간을 알아차리려고 한다.
내가 왜 이럴까?
무슨 이유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는 것인지 살펴본다.
뚜렷이 생각나는 이유는 없다.
그냥 나이 탓으로 돌리고 만다.
나는 현재를 사는 인간이라 너무 오랫동안 그 문제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그러면 또 금세 우울증이 언제 왔냐 싶게 사라지고 만다.
난 또 금방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됐다. 또 바람처럼 불어오겠지만 그땐 그때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어쩌면 손님처럼 올지도 모르겠다. 오면 너무 냉정하게 박대하지 말고
반겨주지는 못할지라도 그냥 왔다 가도록 두어야겠다.
오래 머문다면 병이 되겠지만 잠깐 머물다 가면 삶이 들뜨지 않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