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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Apr 06. 2020

엄마 옷 정리

https://brunch.co.kr/@atoi02/78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며칠 후 요양원에 다시 찾아갔었다. 

CCTV를 보러 간 날 바닥을 뒹굴며 오열했던 것과 다르게 나는 아주 '우아하려고' 애썼다. 


오빠와 나는 지난번엔 너무 경황이 없었다며, 요양원 원장과 요양보호사 팀장에게 사건 당일의 자초지종에 관한 여러 질문을 했다. 원장과 요양보호사가 새로 왔는데 왜 바뀌었는지, 새로 온 요양보호사들은 엄마의 식탐에 대해 전혀 몰랐는지, 대표는 왜 지금 없는지, 도대체 대표란 사람은 평소에 요양원 관리를 제대로 하기나 한 건지 조근조근 묻고 그들의 대답을 조용히, 녹음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일어서는 우리에게 요양보호사 팀장은 엄마가 쓰던 물건들을 챙겨주었다. 엄마의 옷만 쇼핑백으로 두 더미다. 간호사는 어색한 듯 내 눈치를 살피며 엄마가 먹던 약과 당뇨 측정기 등을 챙겨주었다. 엄마의 기침 가래 물약을 한 아름 싸주며 이거 다른 가족이라도 기침할 때 먹으면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됐다고, 거절했다. 


요양원을 나오는 길에 원장이 말한다.  


"어머님 옷은 가서 태우시는 거예요, 아시죠?"

풋. 오지랖이라니. 그렇게 살뜰하게 우리 엄마나 챙기지 그랬어요,라고 하고 싶은 걸 나는 

"알아서 할게요." 

라고 말하고 나왔다. 




옷을 들고 친정에 갔다. 요양원에서 가져온 옷들과 집에 있던 것을 함께 정리하던 중 옷 더미 사이에서 비닐에 싸인 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아, 이건....'

사건 당일 병원에 실려간 엄마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힌 뒤 간호사가 내게 챙겨 준 엄마 옷이다. 엄마의 마지막 일상복. 


열어보았다. 아, 상의가 갈가리 찢겨있다. 다급한 응급처치의 흔적. 가녀리고 마른 몸에 충격이 컸을 심폐소생술의 잔재. 요양원의 다른 노인들의 것과 섞이지 않도록 내복 등판에 크게 적은 엄마 이름 세 글자. 내가 직접 보지도 않은 사고 당일 요양원에서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갑자기 영어 단어 하나가 되뇌어졌다. 


suffocated. 숨 막히는. 질식하는 듯한.     


영화 <알라딘>의 여주인공이 부르는 'speechless'라는 노래에 이 단어가 나온다. 지난 해 영화를 본 후 아이들이 자주 불러 뇌리에 박혀있던 단어다. 


가위로 싹둑싹둑 잘린 듯한, 무참히 찢긴 옷을 보는 순간 그 단어가 생각났다. 엄마의 숨 막히는 고통은 다시 한번 내 온몸에 파고들어 체화되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눈에 맺힌 눈물은 흐를 새 없이 재빠르게 닦아냈다. 나는 엄마를 기억할 때 보고 싶을 것 같은 옷 몇 벌만 남겨두고 모두 다 갖다 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요양원에 챙겨다 주러 친정 장롱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했던 엄마의 옷 정리, 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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