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엄마가 있었다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나는 가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술에 취하면
“나 이래 봬도 강남 대치동 출신이야”
라고 떠들어댈 때가 있다. 다음 날이면 남편은
“어디 강남 출신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뭘 그리 떠들어대?”
라고 핀잔을 준다.
나도 술을 깨고 나면 출신 지역을 자랑하는 촌스러운 짓을 내가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나름대로는 억울함의 토로라고 변명도 한다. 주변 사람 아무도 나를 강남 출신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 맨날 돈 없다고 전전긍긍하고 비싼 그릇 하나 살 줄 몰라 벌벌 떨며 좋은 옷을 한 벌 사느니 차라리 소주 한 병에 회를 한 접시 사서 사람들과 나눠 먹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우아하고 세련되어야 할 것 같은' 강남 출신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강남 스타일’이 아닌 것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4명의 딸은 모두 초등학교만 다녔다. 공부는 아들 4명의 몫이었다. 엄마를 비롯한 딸들은 공부를 일찍 마치고 장사를 배웠던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보따리 장사, 양품점, 새벽 도매시장 장사를 거치며 결혼 10년 만에 돈을 꽤 번 엄마와 아버지는 우리를 이끌고 부천, 종로 등지에서 살다가 결국 강남구 그것도 대치동으로 이사를 해서 정착했는데 그게 오빠가 초등 4학년, 내가 1학년 때였다.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돈을 벌어 정착한 엄마의 장사 수완이 신기할 때가 있었는데 알고 보면 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은 결과였다.
그런 엄마가 우리의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른바 ‘공부 잘 시키는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막상 대치동 학부모로 사는 일은 초졸 엄마에게 쉽지 않았던 듯하다. 엄마, 아버지는 그야말로 ‘근검절약’의 대명사였고 명품의 'ㅁ' 자도 몰랐으며, 아이 학원을 알아보고 다닐 생각도 전혀 할 줄 몰랐다. 그저 오빠와 나를 대치동에 툭, 떨어뜨려 놓았을 뿐이다.
매년 학교에서 작성 해오라 했던 ‘가정환경조사서’에 항상 ‘고졸’이라고 적던 엄마의 속사정을 나는 전혀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검정고시 학원을 다닌다고 책을 사 들고 오기 전까지는.
“엄마, 고등학교 졸업했으면서 왜 또 중학교 공부를 다시 해요?”
눈치 없이 질문하는 나를 엄마는 가늘게 쳐다봤다. 영문을 모르던 나도 서서히 눈치를 채고 엄마의 공부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야, 엄마가 공부를 해보니, 너희들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어려운 공부를 하니? 근데, 이건 비밀인데, 네 오빠가 가르쳐주면 하나도 못 알아듣던 내용이, 네가 알려주면 귀에 쏙쏙 들어와. 공부가 재밌어.”
엄마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문제는 그 당시 오빠가 고 2~3학년이었다는 것. 지금처럼 컴퓨터가 상용화되지 않던 시대, 오빠는 거실에 있는 TV로 교육방송 강의를 듣곤 했는데 거실 한편에서 중얼중얼 교과서를 외우던 엄마의 공부는 오빠를 꽤나 방해했을 것이다. 고3 아들의 공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가 더 열심히 공부하던 거실의 풍경. 오빠가 편한 마음으로 엄마를 가르쳐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국 '진짜 고졸’이 된 엄마였건만, 어느 날 먼 친척 이모와 함께 나누는 대화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딸내미야 뭐, 적당히 공부해서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고 시집 잘 가면 되지만 아들은 공부 좀 해야 할 텐데, 걱정돼.”
왜 부모님이 떨어지는 오빠 성적에는 그렇게도 안달하다가 내가 성적표를 집에 들고 오면 그리도 무신경했었는지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다. 형제들에게 밀려 공부를 못한 엄마, 결혼하고도 아버지 대신 생활 전선에 나갔던 엄마조차 이런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겪은 차별에 대한 억울함보다 인생을 살며 직접 체험한 세상의 현실이 엄마의 식견에 더 큰 벽을 쌓았던 걸까.
그래도 엄마가 실질적인 교육에서 나를 크게 차별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외국어 전공자라는 이유로 오빠는 가지 못했던 언어 연수까지 다녀왔으니 엄마의 생각과는 다르게 딸로서 나는 참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란 셈이다. 지금은 그저 그때 엄마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내미만큼은 힘든 공부를 시키고 싶지 않았던’ 걸로,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다. 이제 부모에 대한 억울함이 실제 사실이었는지 내가 조작한 기억인지 헷갈릴 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