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분실하다
2020년 1월 15일.
“여보세요?”
“보호자님, 지금 바로 오셔야겠어요!”
“네? 왜요?”
"저기, 저..."
보호사 팀장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곧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듯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 어머님이, 떡을 드시고 숨이 막혀서, 쓰려지셨고요, 그래서, 구급차가 왔는데, 지금, 그러니까, 심폐 소생하고 있어요. 잠깐, 여기 구급대원 좀 바꿔드릴게요. (구급대원) 여보세요? 보호자님! 어머님, 어떤 지병 있으시죠? 어떤 상태 신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10년 전에 뇌경색이 있었고, 그리고 2년쯤 후에 뇌출혈이 있었고, 그 후로 계속 치매셨고, 당뇨가 있었고, 최근엔 저혈당이 있다고 했고요….”
“어머님 지금 심정지 상태신데요, 심폐소생 계속하면 되나요?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 안 쓰셨어요?”
“네네, 없어요, 그런 거. 계속해주세요. 심폐소생이요.”
처음 요양보호사 팀장에게서 전화를 받고 사고가 났다는 첫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스프링처럼 의자에서 튀어 올라 전화기를 스피커 모드로 돌려 손을 자유롭게 하고 통화를 계속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 통화가 일단락되자 아이들에게 둘이 집에 잘 있으라고 당부하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탔다. 당황스러운 가운데서도 전화를 받은 지 단 10분 만에 물 흐르듯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탄 것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전부터 무슨 불길한 예감이라도 있었던 걸까? 내 민첩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택시 안에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렸다. 오빠에게 소식을 전해 달려오라고 했고 남편에게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에게 미처 알릴 사이도 없이 내 전화기가 다시 울렸다.
“구급대원입니다. 지금 요양원에서 나왔고요, OO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심폐소생술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병원 쪽으로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가고 있어요. 엄마는 어떤가요?”
“계속 심정지 상태세요. 어서 빨리 오세요.”
한 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가야 했건만, 택시는 자꾸 신호에 걸렸다. 나이가 지긋한 택시 기사님에게 다른 길이 더 빠르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기사는 “아니에요, 이렇게 가면 금방이에요.”라고 말했다. 게다가 내가 오빠와 남편에게 전화하는 내용을 들은 기사는
“아, 어머님이 편찮으신가 보네요. 저 아는 노인도 떡을 먹다가 한 번 큰일 날 뻔 한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라며 눈치 없는 알은 체를 했다. 가슴이 계속 쿵쾅대고, 입술이 바짝 말라가는 긴장감을 감당해내는데 급급하여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반응이 시원찮은 것을 느낀 기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구급대원에게서 한 번 더 전화가 왔다.
“보호자님 어디세요?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환자는 계속 심정지 상태고요, 병원에 거의 다 왔어요.”
“아, 네, 근데 엄마가 많이 안 좋은 거죠? 제가, 저희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하는데….”
“그러면 더 늦어지잖아요. 병원에서 보호자님이 오셔야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있을 테니 한 분이라도 어서 빨리 오셔야 해요.”
나는 구급대원과 내가 똑같이 하나의 단어를 염두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의 ‘임종.’ 하지만 우리 둘 다, 그 단어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벌써 1시간째 심정지라고 했다. 혹시 가망을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그다음 할 일은 빨리 온 식구가 모이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오빠, 내가 한 명이라도 임종을 놓친다는 것은 정말 있으면 안 될 일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차도 없었고, 아버지집 주변 환경은 택시를 잡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애매했다. 나는 문득, 친정과 가까이 사는 이모가 생각나 전화를 했다. 나는 이모에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와 주십사 부탁했다. 이모는 “이게 웬일 이래니”라고 다급해하며 서둘러 와준다고 말했다.
식구 중 가장 먼저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응급실 한편에서 산소 호흡기를 매단 채 의식 없이 누워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
하지만 응급실 의사가 다가오는 바람에, 나오던 눈물을 금세 수습해야 했다.
“환자가 떡을 드셨다길래 병원에 오자마자 목을 열어서 흰 떡 덩어리를 제거했어요. 곧바로 산소 호흡기를 장착하니 심장은 뛰었습니다.”
‘심장은 뛴다’는 말에 뭘 알지도 못하면서 주책맞게 일어난 가슴 속 희망의 불씨가 다시 꺼지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의사는 ‘거의 없다’도 아니고 그냥 ‘없다’고 말했다. 난 믿어지지 않아서 “전혀 없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가혹하게도, “네”라고 대답했다.
“환자가 한 시간 가까이 심정지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산소공급이 오랫동안 끊겨 뇌가 사망한 상태고, 분명히 다른 장기에도 손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호흡만 이어가고 있지만 얼마나 버티실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설명한 의사는 나에게 몇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1. 지금 바로 연명치료를 끝내고(이 때는 연명치료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임종을 지켜볼지
2. 일단 이 병원의 중환자실로 옮겨볼지
3. 더 큰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서 더 적극적인 치료를 시도해볼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의사는 한 시간 안에는 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가족이 오면 금방 결정해서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중환자실로 옮기자고 할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빠와의 전화를 끊고, 중환자실로 엄마를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사는 다시, 예상외의 말을 했다.
“저희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시려면요, 일단 연명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쓰셔야 해요.”
알고 보니 이 병원에서 말하는 연명치료에는
1) 혈압이 떨어지면 승압제(혈압을 올려주는 약) 투여
2) 다시 심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술 실시
의 내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보호자가 연명치료를 포기한다면 일단 이 두 가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산소호흡기를 바로 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가 호흡을 못하는 환자에게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 그것이야 말로 생명을 뺏는 행위, 즉 병원에서 의사는 절대 하면 하는 절차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대신 회생 희망이 거의 없는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산소호흡기 그 이상의, 추가적인 연명치료는 하지 않을 것을 보호자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내가 설명을 들으면서도 멍해져 있을 때, 이모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 들어왔다. 의사는 한 번 더 상황을 설명했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못하셨다. 뒤이어 오빠가 도착했고 의사는 인내심 있게 한 번 더, 오빠를 보고도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엄마의 상태를 보고 좌절한 아버지는
“그동안 뉴스에서 이런 상황을 가끔 봤는데, 별로 희망이 없더라….”
며 체념의 말씀을 하셨다. 나 또한 어떤 부분에서 희망을 가져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만은 달랐다.
“승압제를 안 넣는 것은 그렇다 쳐도, 다시 심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아?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병원에서 더 치료를 해볼 수 있다면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보다 더 적극적인 치료를 해보고 싶어 하는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게 엄마 상태에게 맞는 것인지는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또다시 차를 태워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 괜찮은 것인지 감이 안 잡혔다. 그렇다고 바로 연명치료 포기를 해야 하는 1번과 2번 안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와 오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다면 선택지에서 남은 것은 더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의 전원 밖에 없었다. 병원에 그런 의사를 밝히니 현재 환자를 받아줄 자리가 있는, 전원 가능한 상급종합병원이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몇 분 뒤, 서울과 수도권에 그런 병원을 찾기 힘들다는 통보를 해왔다. 그리고 범위를 충청도 등지의 병원까지도 확대할 것인지 물었다. 오빠는 그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듯했다. 나는 오빠에게 엄마의 임종이 얼마 안 남았다면, 그런 지방으로까지 이송을 하면 급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달려가겠느냐고 물었다. 오빠는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듯했지만 쉽게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오빠가 고민하는 모습은 사실 지금의 현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부정일 뿐, 명쾌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이제 세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의견은 다시 설득할 엄두를 전혀 못 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너무 안쓰러웠다. 최대한 서로의 상태를 살피며, 의견을 존중하며 최선의 결정을 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결국, 엄마를 지금 있는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단, 다른 상급병원에 자리가 나면 전원을 시키겠다는 전제하에서였다. 보호자의 그런 의사를 밝히니, 그럼 중환자실에 입원하더라도 연명치료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시키기까지 환자를 살려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의 이동을 준비하는 동안 이모는 우리 식구보다도 더 흥분하여 안절부절못했고, 엄마를 보려 드나들면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나는 일단 입원을 결정했으니 이모는 집에 가시라고, 이모마저 쓰러지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워낙 마음이 약한 이모까지 흥분하게 되면 나는 돌볼 자신이 없었다. 지금 뭐가 뭔지 모를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병원의 끊임없는 제안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그런 와중에 내 정신을 제대로 부여잡고 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이모는 입원을 확정했다는 말을 듣고 일단 집에 가셨다.
우리 가족은 엄마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의사와 간단히 상담을 한 뒤, 제한된 저녁 면회시간에 들어가서 엄마를 한 번 더 보고 나와 지친 심신을 이끌고 일단 병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