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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Dec 07. 2020

프리랜서에서 N잡러로 (계기/과정/결과)

프리랜서로 살게 된 계기

대학시절 토익점수를 만들지 않았다. 우리 과 친구들은 토익은 기본, 모두 금융3종세트라 불리는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하는 등 착실하게 스펙을 쌓았다. 친구들이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은행, 증권사 인턴을 할 때도, 내게도 그런 것들을 준비하라고 할 때도 소 귀에 경 읽듯 흘려들었다. 모두가 '고학점'을 향해 달릴 때도 학점을 잘 주는 강의보다 국문학과, 언론정보학과, 미술학과를 기웃거리며 남의 전공수업을 교양수업 삼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괴짜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한량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잘 알았다. 한 회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란 걸. 이미 아르바이트도, 매번 다른 장소로 일하러 가는 나레이터모델이나 어쩌다 한 번씩 일하면 됐던 피팅모델을 했는데, 9 to 6가 당연한 회사원을 내가 한다고? 말도 안되지.


일하는 시간에 비해 적다고 느껴지는 월급도 납득할 수 없었다. 스무 살 때 최저임금은 시급 4000원이었다. 하루 5시간을 일해도 손에 20000원 밖에 쥘 수 없다니. 그래서 여대생이라면 한 번쯤 해보는 카페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대신 시급 20000원의 나레이터모델은 스무 살부터 이십 대 후반까지 꽤 오래 했다. 일하는 '공간의 자유'가 있었고 '높은 시급'이 너무너무 만족스러웠으니까. 이력서에는 적을 수 없는 경력이었지만 나레이터모델을 하면서 판촉활동도 많이 다녔기에 나는 '판매하기'를 잘 한다. 재미있기도 하고.


프리랜서에서 N잡러로 변태하기

나레이터모델과 병행해서 오래 해 온 일은 논술과외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거만해 보일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을 쓰고 있노라면 명상을 한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냥 글을 읽으면 무얼 첨삭해야 하는지가 보인다.(그래서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럼 명상은커녕 스트레스가 되고 계속 다시 쓰는 일만 남을 테니)


프리랜서의 시작: 논술강사

프리랜서의 시작은 논술강사다. 한 곳에서 전임강사로 일하는 것보다 이곳 저곳 특강강사로 가는 게 '일하는 공간의 자유'를 얻을 수 있고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었다.


프리랜서 논술강사에서 강사로

주로 고3을 가르치기 때문에 평일 저녁 7시 이후와 주말에 수업이 몰려있었다. 이럴 때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사람은 오후 시간마저 꽉 채우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오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하는 일이 강의이다 보니 관련된 일들만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게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이다.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은 오후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모든 일이 끝난다. 월요일에 A학교에 가고 화요일에 B학교에 가는 식으로 월-금을 다 채우면 총 5개의 학교를 갈 수 있었다.


오전 시간의 활용: 여성회관 강의

프리랜서가 워커홀릭이면 이게 진짜 문제다. 자꾸 일을 채워 넣고 또 채워 넣는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오전시간 9시-12시에 여성회관에서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초등수학지도사 과정 수업을 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을 맡아서 강의 시간을 오전으로 짰으며, 가끔은 재수생 과외를 오전에 하기도 했다.


오후 시간을 100% 채우기

두둥, 어느 날 오후 3시-오후 7시까지 하는 중학교 수업 공고가 떴다. 당연히 지원했고 합격했다. 면접 당시 중학교에 미리 이야기해서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논술과 수시대비 강사만 하던 프리랜서는 하루를 수업으로 꽉 채우기 위해, 초등학교에서는 창의수학 3D프린터 보드게임을 가르쳤고 중학교에서는 코딩 수업을 하며 N강사가 됐다. 그리고 그 후에도 점점 영역을 넓혔다.

수업이 3개인 날의 짐 / 3D프린터로 출력하면서 글쓰기



이제 완전한 N잡러

프리랜서의 불안은 이런 거다. 지금은 미친 듯이 일감이 밀려드는데, 언제 썰물처럼 빠져나갈지 알 수 없다. 일이 이미 많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프리랜서들이 꾸역꾸역 새로운 일을 받는 이유가 이거다. 이번에 거절하면 다음에 날 찾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지금은 일이 많지만 이게 영원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 그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 불안은 강사에 한정되어 있던 나를 세상에 꺼내놨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업을 하게 되었으며 플리마켓에 주구장창 나가도록 했다.


N잡러의 평일: 마케터, 에디터

지금의 나는 평일에는 마케터이자 에디터이다.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글쓰기가 가미된 공식채널 관리에 힘쓴다. 글쓰기가 다인 보도기사 작성을 하거나. 그리고 스타트업을 하면서 전방위로 조금씩 경험한 덕에 스타트업 마케팅도 하고 있다.

N잡러의 주말: 플리마켓 셀러

주말에는 플리마켓에서 악세사리 셀러로 일한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데 왜 플리마켓에 나가서 그 고생을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일이 재미있는데 어쩌나. 나도 사람인지라 아주 더운 8월, 아주 추운 1월에는 몸을 사린다. 그때에는 플리마켓에 쏟는 시간을 다른 무언가에 쏟는다. 8월에는 그 테마가 '교육'이어서 각종 교육을 듣고 수료증을 쌓아뒀다. 비수기를 보내는 방법


N잡러의 사이드 프로젝트: 강의

가끔 강의를 한다.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그중에서 호기심이 생기는 것만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브랜딩 강의'에 관심 뿜뿜이다.


플리마켓 셀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딩

작은 업체들에게도 브랜딩과 마케팅이 필요하다

온앤오프 셀러 강의


이런 강의들을 비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프리랜서 N잡러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돈을 버는 프리랜서들이 나타났다. 프리랜서 시대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몇 명이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그럴 수 있을 거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 잘 되고 있는 프리랜서마저 불안이란 감정을 떨칠 수 없다. 그 감정을 잘 해소하고 동력으로 잘 다듬을 수 있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내가 프리랜서임을, 내가 어떤 일을 잘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나도 그러지 못했다. 상업적으로 비취지는 게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 자체가 브랜딩이다. 퍼스널 브랜딩은 스스로 해야 한다.

내 경우, '글쓰는 마케터'라고 명함을 만들고 그러한 일을 한다고 말하고 다니니 진짜 그런 일들만 들어오고 있다. 이전에는 온갖 마케팅 일감을 다 받아서 했는데 이제 내가 좋아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만 받고 있다.



나는 00 때문에 프리랜서 N잡러를 꿈꾼다

이 00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일한 만큼 보상을 받고 싶어서 프리랜서와 N잡러를 꿈꾸고, 누군가는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도 일할 수 있다길래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어떤 이유 때문에 프리랜서나 N잡러가 되고 싶은지 신중하게 생각해서 그 이유가 그저 허상인지, 아니면 내 성격상 그게 맞는지. 이런 것들을 가려내면 좋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걸 싫어해서 프리랜서로의 삶을 선택했다.

나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고 해도 주체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금이 좋다.

나는 불안 때문에 점점 N잡러가 되어가고 한때는 그게 전문성이 없어 보일까 봐 고민했지만,(N잡러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 크게 보면 그 전부가 내가 좋아하는 영역 안의 것들이라 N잡러로의 삶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원하는 '글쓰기'가 들어간 마케팅 일들을 많이 하고 있고, 다른 일들이라고 해도 마케팅과 브랜딩의 범위 안에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여전히 바쁘지만 여유롭게 일하려고 하고,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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