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당하는 아이의 그림

기린 목은 왜 잘렸을까?

by atree

편애당하는 아이의 그림



찬혁이는 초등학교 1학년, 찬민이는 여섯 살이었다. 똘똘한 형제였다. 찬혁이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뭘 시키든지 다 잘 해낸다고 했다. 미술학원에서도 꾀부리는 법 없이 그림도 아주 성실히 잘 그렸다. 1학년 아이치고는 대화도 제법 통했다. 또래보다 의젓한 아이였다. 동생 찬민이, 동그란 볼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목소리가 작고 얌전한 아이였다. 찬민이는 놀이 미술 시간을 자신 없어 했는데 가위질이든 뭐든 선뜻 자신 있게 하질 못했다. 뭘 하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손이 데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놓아버리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저는 못해요, 저는 아무것도 못 해요”


“아니야, 찬민이는 이제 여섯 살인데 어떻게 형과 누나들처럼 할 수 있겠어, 괜찮아. 찬민이가 아직 어린아이라 키가 다 크지 않은 것처럼 손도 아직 마음대로 안 움직이거든. 다른 친구들도 그래. 괜찮아. 다시 해 보면 되지!”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예요….”


죄라도 지은 냥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고개를 떨군 채 천천히 도리질하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찬민이의 작은 등을 쓰다듬으며 아무리 안심을 시켜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안쓰러웠다. 이 아이가 왜 이렇게 위축됐는지를 알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 형제의 어머님과 상담할 때 알게 된 사실은 엄마가 형제를 심하게 편애한다는 것이었다. 형을 예뻐하고 동생에게는 애정이 없음을 당당히 밝혔다. 상담 후 나는 찬민이가 반복해서 그리던 그림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그린 이유가 있었어. 이 아이는 또 앞으로 얼마나 공허하고 마음 고단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깊은 한숨이 났다.




관심을 두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각자의 스케치북을 다 쓰면 처음부터 한 장씩 보면서 그림 제목을 다시 쓰고 사진을 찍은 뒤 집으로 보내는데 찬민이의 스케치북은 몇 권이 쌓이도록 안 찾아갔다. 엄마가 관심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찬민이는 마음껏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유도했다. 또 스케치북을 찾아가지 않아서 지금 내 옆에 두고 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찬민이는 주로 깎아 쓰는 색연필(다른 재료에 비해 발색이 흐리다)과 물감으로 그렸는데 처음엔 뭘 그린 건지 못 알아봤다.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 작은 아이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분노가 차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찬민이는 반복되는 주제로 비슷한 그림을 아주 여러 장씩 그렸다. 연필로만 그린 것도 여러 장이다. 누가 보면 이 아이는 왜 비슷비슷한 그림만 반복해서 그리느냐고 했을 것이다. 나는 찬민이의 그림에 분노가 숨어있다는 걸 눈치채고 나서는 그림마다 설명을 자세히 듣고 작은 글씨로 기록해 두었다. 찬민이 그림은 작은 부분 하나라도 의미 없이 그려놓은 것이 없었다. 찬민이는 그림에 관해서 물어보면 처음엔 신이 나서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스케치북 두 권을 다 채우도록 반복되자 아무래도 좀 이상했던 모양이다. 자기 마음을 들키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영특한 녀석…. 이렇게 똑똑한 아이가 엄마로부터 넌 형보다 못하다고, 넌 형에 비해서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고, 넌 대체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고 그 유명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다. 내 모친께서 너 유별난 것은 네가 내 뱃속에 들어있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하셨던 게 문득 생각난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안 넣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 시 삭제합니다)





위의 그림은 A4의 두 배 크기인 A3 지에 그린 것이다. 아이들이 보통 학교에서 사용하는 스케치북의 두 배 정도 크기이다. 위의 그림이 뭘 그린 것 같은가? 보면 위아래로 세모난 형태가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세모난 것은 상어 이빨이다. 찬민이가 이 그림을 그렸던 당시 반복해서 그리는 주제 중의 하나가 상어 이빨이었다. 종이 크기를 생각하면 화지 전면을 위아래로 채운 이빨이 상당히 큰 크기임을 알 수 있다. 연필로만 그린 흑백의 다른 그림에는 화지 상단 양쪽으로 커다란 잇몸이 있고 위아래 이빨 사이 화지의 가운데 부분을 가로로 길게 가득 채운 혀를 그려 놓기도 했다. 왼쪽 그림의 하단에 빨간색은 피인데 상어 이빨 사이에 잡아 먹힌 동물의 흔적이다. 찬민이는 상어 이빨이나 사슴벌레의 뿔을 그릴 때 뾰족함의 각도를 아주 신중하게 그렸다. 찬민이의 스케치북 그림 옆에 적어 놓은 설명만 나열해 보자면




-차가운 비(그림에서 비는 스트레스로 해석)가 와요/ 두 개의 꽃(형과 자기를 그린 듯)이 나란히 심겨 있고 비가 오는 그림.


-밤에 바람이 쌩쌩 부는데 새들이 추워서 집에 빨리 들어가려고 해요/그림 상단엔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용의 불꽃(무서운 공격)이라고 함.


-장수풍뎅이랑 싸우다가 다리가 부러진 사슴벌레


-가다가 벽에 박아서 엔진이 고장 난 자동차,


-형은 방패를 쓸 수 있는데 동생 방패는 작아서 안 보이는 그림


-물의 용의 불꽃 발사해서 어떤 아줌마 칼이 부서졌어요/기다란 칼의 상중하를 거친 선으로 나눠놨음


-칼로 찔러서 박살 난 지우개


-연을 샀던 사람인데 너무 놀라서(연이 회오리나라로 날아가서) 목이 찢어졌어요


-기린 몸통이 찢어졌어요/ 목만 있는 기린 옆에 기린보다 큰 괴물 발자국


-혓바닥이 쭉 빠진 강아지 그림/ 먹이인 줄 모르고 불을 확 뿌렸어요, 불로 태웠어요


-땅꼬마, 죽으려고 작전을 짜요. 바다에 멀리 가서 깊숙이 빠져서 상어한테 잡아 먹혀 죽었어요. 가족이 좋아해요. (여기서 왜 상어이빨을 화지가 모자라도록 크게, 반복해서 그렸는지 앎)/ 화지 중앙에 사람인지 동물인지 모를 작은 것에 화살 세 개가 꽂혀 있는 그림. 화지 전체에 다른 그림은 없고 이것만 그려져 있음


-상어 이빨에 기린이 들어갔어요. 상어 뱃속 구경하려고/화지 위아래 거대한 이빨 그림


-기린이 상어 이빨로 모르고 들어갔어요. 몸은 그리기 싫어요/ 반복적으로 나오는 목까지만 있는 기린이 상어 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그림


-사냥꾼이 기린 목을 잘랐어요


-키우던 두더지가 악어한테 물려서 찢어지고 발톱을 물에 담갔어요. 이유는 몰라요. 발톱은 썩을 것 같아요, 깨끗해질 것 같아요.


-거인의 손이 작은 자동차에 치였어요. 자동차는 가버렸어요.


-세 마리 곤충이 싸워요/ 양쪽 뿔을 가진 세 마리 곤충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그림. 그중엔 꼭 힘이 가장 센 곤충 한 마리가 있고 한 마리는 방어막으로 둘러싸여 있음


-부러진 상어 앞니, 힘이 제일 센 곤충이 부러진 상어 이빨을 구경하고 있는 그림


-곤충 네 마리(4인 가족을 의미)가 거미줄에 묶였어요. 평생 그렇게 사는 거죠(다시 한번 말하자면 찬민이는 여섯 살이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저(힘센 놈)만 끊어줬어요


-날개를 폈는데 몸이 낡았어요, 옆에 벌레는 멀쩡히 보고 있어요 /뿔이 크고 뾰족한 두 마리의 장수벌레


-눈에서 피가 나요/커다란 돌고래 밑에 있는 작은 물고기 눈에서 빨간 피가 나는 그림


-접시에 놔뒀다가 썩은 사과/썩은 이유는 칼로 사과를 찍어서


-날개 빠지고 귀도 빠진 독수리


-손도 없고 발도 없는 얼굴만 있는 사람. 벌써 죽었어요. 엄마가 아기를 치이라고(?)


-잠자리가 날다가 날개가 꼬였어요


-귀, 다리만 빠진 독수리, 못 듣고 다리 없어서 추락. 작은 새들이 좋아함.


-전부 다 있는 독수리/독수리 귀를 강조해서 그림


-(늙어서) 자살하는 독수리


-날아가는 독수리. 꼬리가 박살 났어요


-뿔을 지웠어요. 등껍질만 있는 거 보게요. 아무것도 못 보고 싸움도 못 해요/ 거대한 사슴벌레 그림




그림 그릴 때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주제 목록에 있는 제목은 단 하나도 없다. 찬민이에게 자유 그림을 그리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내용으로 그린 찬민이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찬민이 그림에 등장하는 기린이나 낙타는 모두 몸통은 없는 채 목만 있는 상태로 그려졌고 잘리거나 찢어졌다고 했다. 화지 전체를 사용해서 그릴 줄 아는 아이가 그 잘린 목만 덩그러니 그려 놓은 그림도 몇 장 있다. 마음이 찢어진 걸 그림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세 마리 곤충(엄마, 형, 본인)이 등장하는 그림에서는 ‘가장 힘이 센 놈’이 있는 게 그건 자기 자신이다. 현실과 달리 그림에서는 자신을 힘이 센 놈으로 표현했다. 또 어떤 그림에서는 한 곤충의 주변을 보호막으로 둘러싸 놓기도 했다. 공격당하지 않도록. 위의 내용 중에 ‘평생 그렇게 사는 거죠’라는 말에서는 이게 여섯 살짜리가 한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상처가 크고, 그 짧은 인생에 반복되었을 체념이 느껴진다. 이 아이의 마음속 분노는 체격이 엄마만큼 커지고 말로도 힘으로도 엄마에게 대항할 수 있을 때까지 체급을 키워갈 것이다. 부모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무의식적으로 날을 벼르다가 사춘기에 이르러 게임에 빠진다든지,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다든지 등교 거부를 하는지의 다양한 형태로 발현하게 된다. 복수를 하면서도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자책과 자괴하게 되고 이는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본인이 왜 이러는지에 대한 자각은 없다. 복수는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미술치료 공부할 때 그렇게 배웠다.




교습소를 하다 보면 이 형제처럼 형제자매 혹은 남매끼리 오는 경우가 흔히 있고 때로는 편애로 상처받은 어느 한쪽이 있는 경우가 있다. 아주 놀라운 점은 아이들의 어머님이 편애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밝힌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 중 한 분은 수업 시간에 당시 6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첫째를 낳자마자 또 임신해서 낳게 된 둘째 아이를 원망하듯 말씀하기도 했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수업 중에 태동이 느껴진다든가 태교 음악으로 클래식을 듣고 있다든가 하는 등 임신의 기쁨을 전하셨다. 곧 나올 아기에 대한 기대를 얘기를 화사한 얼굴로 했던 반면 연년생으로 생긴 둘째는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인한 짜증과 피곤함만 내비치셨다.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이 선생님네 둘째가 불쌍하다고 수군거렸던 건 모르셨겠지만. 여태 살면서 많지도 않은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편애하는 부모는 숱하게 많이 보았다. 이렇게 편애에 대한 얘기는 직접 들을 때마다 놀라운데 이는 이 형제의 경우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우리 집 포함이다.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100호 집에 살 때 부모님은 취미로 특이한 닭들을 키우셨다. 당닭, 오골계 이런 평범하지 않은 닭들 두세 종류였는데 이 닭 중의 하나가 하루는 첫 알을 낳았다. 초란이라 그랬는지 온전하게 딱딱한 껍데기가 아니라 불투명하면서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부드러운 상태로 알을 낳았다. 첫 알이라 신기하기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여서 그 알을 먹지 않기로 하셨다. 나는 젊었던 엄마가 그 알을 그릇에 담아 부엌 찬장에 올려 두는 것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그 알을 어떻게 할지가 궁금했다. 뒤뜰로 난 주방 문 도어를 양손으로 잡고 문짝을 다리 사이에 끼워 개구리처럼 매달린 채로 물었다.


“엄마, 그거 어떻게 할 거야?”


“OO이 시집갈 때 주지~”


OO 이는 내 동생 이름이다. 내 이름이 아니다. 왠지 기분 좋아 보이는 엄마를 보며 땅에 발을 딛고 서는 순간 내 심장에 아주 크고 매운 재가 천천히 들어와 박혔다. 매운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아니라 동생을 준다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 동생. 이 아이만 없었다면 엄마가 분명히 저 초란을 날 준다고 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동생의 존재가 문제였다. 원망스러웠다. 저 아이만 없었으면 엄마가 틀림없이 내가 시집갈 때 준다고 했을 거야. 분명히 날 준다고 했을 텐데 동생한테 뺏겼어.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만 들었었다.




그로부터 이 십오 년쯤 지나, 동생이 결혼할 사람이 생겨 날짜를 잡고 나서의 어느 날이었다. 물속에서 힘껏 누르고 있던 공이 두 손을 빠져나가며 잡을 틈도 없이 물 위로 솟구치는 것처럼 그날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동시에 나는 그 순간, 차원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어린 시절 뒤뜰로 난 주방문에 매달려 있었다. 동생이 원망스럽던 그 감정과 재가 심장에 쏘옥 들어와 박히던 순간의 느낌이 물리적으로 생생하게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가슴 한가운데가 매워졌다. 놀라웠던 건 나는 그날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이 기억을 떠올렸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의 결혼이 확정되자 엄마가 OO이 시집갈 때 줄 거라고 했던 그날의 기억이 소환됐다. 그 사건이 그때까지의 내 일생 내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가 정말로 동생이 시집가게 되자 의식의 수면 위로 튀어 오른 거였다.




나는 미술치료 공부를 하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해 배울 때만 해도 무의식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정말 무의식의 세계를 제대로 알아버렸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해리성 기억상실’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기억을 상실하는 증상을 말한다.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무의식으로 밀어 넣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자신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에 대한 기억을 차단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이 역시 ‘불안’에서 기인한 병증이다. 엄마 말씀대로 내가 좀 유별난 아이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따뜻한 봄날 집으로 가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연둣빛 계절의 감각에 취한 채 한껏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제 내리려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문득


‘이상하다, 난 내 동생을 참 사랑하는데....’


이런 생각이 난데없이 드는 거였다. 그러고는 또 금방 잊었다. 왜 이런 생각이 불쑥 든 것인지 깊이 생각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그 후로 사이가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초란 사건 이후 난 동생이 분명히 미웠을 것이다. 그전엔 그래도 내가 언니라고 사탕이라도 하나 챙겨줄 마음이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동생은 나에게 성가신 존재에 불과했다.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은 언니인 내 말도 안 들었다. 어느 맏이가 말도 안 들어먹는 동생을 다정하고 살뜰하게 살피랴. 오히려 동생한테 못되게 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것도 동생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나 가능했다. 여느 자매들처럼 친하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성장하는 내내 각자 외로웠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갑자기 내가 사실은 동생을 사랑하는데 왜 그동안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지? 하는 자기 고백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편애를 당했다고 하면 대부분 콩쥐팥쥐의 불쌍한 콩쥐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내가 팥쥐다. 그동안 차별로 쌓인 게 있어서 항상 마음이 편치 않으니, 마음이 곱게 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별다른 차별이 없으나 동생과 대립할 일이 생기면 그땐 편애 구도가 확실해진다. 엄마는 여지없이 동생 편에서 갑옷 입은 호위무사가 된다. 내가 맨손으로 속절없이 공격당하는 동안 동생은 엄마 뒤에서 입 한 번 뗄 필요 없이 눈만 깜박이며 서 있으면 그만이다. 부당하다. 억울하다. 앞뒤는 묻지도 않고 동생 편을 드는 엄마가 야속하다. 엄마가 나와 마주 선 채 앞을 가로막고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뒤로는 동생을 감췄다. 사나운 옆집 아줌마처럼 네까짓 게 뭔데 내 딸을 괴롭히는 거냐고, 감히 내 딸을 건드리지 말라는 듯 고함을 치신다. 엄마는 우리 자매에게 상소리 한마디를 안 하고 키우셨다. 그런데 자매가 대립하는 순간만큼은 사납고 목소리가 큰 억센 아줌마가 되고 만다. 이때만큼은 ‘우리’ 엄마가 아니다. 세 모녀의 주변엔 암담한 공기만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엄마 없는 서러운 애가 되곤 했다.




내가 옆집 아줌마한테 이 꼴을 당하는 동안 내 엄마는 어디 계신 걸까. 냉혹한 야생의 들판에서 무리와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동물의 심경이 되어 내 엄마는 어디 있지, 나는 어떻게 하지, 당혹스럽게 홀로 서 있다가 사람으로 정신이 되돌아와서는 이성을 잃고 만다. 나도 악을 쓴다. 내가 억울한 이유를 나열하지만, 옆집 아줌마의 귀에 내 아이를 못살게 구는 못된 아이의 성가신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일련의 이 과정은 씨치프스의 바위처럼 계속 계속 반복됐다. 인류의 탄생 이래 최장이자 최대 비극은 바로 사랑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데 있다. 에덴동산에서 생긴 인간의 원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창조한 인간이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을 배신한 데서 생기지 않았던가. 마땅히 나를 사랑해 줘야 할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사랑할 때 오는 실망과 원망과 분노, 시기, 질투.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뻔한 이유들이다. 결핍은 일생을 지속적으로 공허하게 만든다.




서른이 좀 넘었을 때였나, 엄마한테 여쭸다. 왜 동생 편만 드시냐고. 모친 왈, 동생이 언니한테 당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다고. 하하하, 어이없는 헛웃음이 났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고집으로도 말싸움으로도 언니인 나를 이겨 먹고야 말던 인물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고정관념은 무쇠보다 강하고 철자작나무만큼이나 견고하다. 세상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정 기간 학원을 다니다가 그만둔 찬혁이를 학원 상가의 긴 복도에서 마주쳤다. 이 아이는 무엇에 화가 났는지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인사도 없이 빠르게 나를 스쳐 갔다. 안녕, 잘 지내니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평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편애를 받는 쪽이든 당하는 쪽이든 어느 쪽도 마음이 안녕할 수는 없다. 그런 채로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애가 좋은 동기간이 있을 것이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동기가 있을 것이다. 부모가 장남, 장녀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맏이들이 동생들을 챙기지 않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차별하고 편애하는 건 서로 원수가 되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것과 다름없는데 왜 너희들은 사이좋게 지낼 줄을 모르냐고 탓을 한다. 많지도 않은 자식 둘이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냐, 하시며 한숨을 쉬신다.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으시다고. 정작 많지도 않은 자식 둘을 두고 차별해 놓고선. 학원에서 사이좋은 자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사이좋은 건 다 부모님 덕이라고 말하곤 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거라고. 감사하게 여기라고.




글을 쓰다가 든 처음 든 생각인데, 만약 엄마가 문제의 그 초란을 내 동생 준다고 하지 않고 날 준다고 하셨으면 내 인생은, 자매 간의 우애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단 동생을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그 사건 이전처럼 잘 챙겨줬을 테고 그런 나를 엄마는 동생을 괴롭히는 언니로 인식할 일이 없었을 수 있겠다. 사업에 바쁜 부모님의 빈자리를 둘이 서로 의지해서 외롭지 않게 성장했을 테고 서로 친구처럼 나이 들 수 있었겠지.




내가 작업실 생활을 할 때 엄마는 내 친구들한테 ‘천사표 엄마’라 불리셨다. 시집갈 나이의 딸이 작업실에서 친구들과 논다고 하면 안줏거리를 그릇그릇 챙겨주셨다. 친구들은 너희 엄마 같은 분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대학교 때는 남자선배들과 클럽에 놀러 갔다가 심야에 택시를 못 잡고 엄마한테 도움을 청해 데리러 오신 적도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중학생 때부터 애 안 낳겠다고 노래 부르는 걸 오랫동안 들었다.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 정서적 트라우마 같은 거라도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 집에 와서 내 부모님을 뵙고는 ‘네가 문제였네, 네가 문제였어’라고 했다. 나도 가끔 헷갈렸다.




나는 왜 어렸을 때부터 내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까. 날 사랑하는 부모가 악의 없이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창이 되어 내 폐부에 와서 꽂힐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그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인정하기 싫었는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그 상처가 일생을 얼마나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알아 버려서. 나 역시도 내 자식한테 이런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받아들이기도 인정하기도 싫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을 하면서 편애로 멍들고 병든 마음을 가진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겹칠 때 마음 한편으로 안도하기도 했다. 그래, 역시 부모 자식이라는 인연을 만들지 않기를 잘했어.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




나는 아직도 엄마 옆에 붙어서 살고 있다. 문제의 그날, 엄마가 그 초란을 동생이 아닌 날 준다고 하셨으면 나와 내 동생은 사이좋은 자매가 됐겠지만 어쨌든 결국 엄마는 시집도 못 간 내가 차지했다. 애정결핍의 피해 및 폐해가 이렇다. 내가 내 동생의 존재가 원망스럽기 시작한 즈음에 그림을 그렸더라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네모난 찬장을 그리고 그릇 속에 동그란 달걀을 하나 그려 넣었으려나. 얼핏 보기에는 얼마나 하찮고 단순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그림인가. 그 안에 얼마나 아프고 긴 이야기가 들어있는 줄은 아무도 모를 테지. 부모님이 며칠간 함께 여행 가시고 집에 동생과 둘만 남았을 때 오히려 사이가 좋았었다는 건 엄마는 모르셨다. 영원히 모르시겠지. 앞으로도 한숨만 크게 쉬시겠지. 그 정도 벌은 받으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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