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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ree Nov 15. 2024

저는 아빠가 없어요

응, 너만 그런거 아니야



“저는, 아빠가 없어요.”


민지가 첫 수업 때 건넨 첫마디이다. 새로 들어온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였다.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가 등록을 시켰다. 이 말을 나에게 건네기 전까지는 새침하고 뾰로통한 얼굴로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때문에 맥락 없이 아빠의 부재를 갑자기 고백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사였다. 자신이 한 부모 가정의 아이인 게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여기는 듯한 태도였고 선생님은 이런 나를 어떻게 대할 거야? 이렇게 묻는 것처럼 보였다.


“으응, 너만 그런 거 아냐. 꽤 있지 뭐”


나는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흩어진 색연필들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는지 눈치가 흔들렸다. 이때만 해도 이 아이가 툭 던진 한 문장이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아빠가 없어서 비뚤어져도 되는 처지니 앞으로 난 좀 삐딱할 예정이야, 선생님은 고생 좀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한 셈이었다.






그날 이후로 고난은 시작되었다. 민지는 못된 시어머니한테 구박만 당하다가 죽은 며느리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내가 하는 말마다 토를 달았다. 정말 아이들을 가르친 지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처음 겪는 말대꾸의 최고봉이었다. 그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 이 아이는 그림을 그리러 오는 게 아니라 나한테 말대꾸하는 재미로 오는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내 자식을 안 낳으려고 결혼도 안 하고 사는 대가를 얘한테 치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내 자식이면 팰 수나 있지.


“민지야, 너는 선생님한테 말대꾸하는 걸 굉장히 재미있어하는 것 같은데?”


“맞아요”


"네가 자꾸 그러면 다른 아이들한테 방해되니까 그만해"


"어쩌라고요"


“자꾸 그러면 선생님 힘들어”


“알아요”


“이제 그마안!”


“싫어요”






그렇게 버릇없는 말로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를 아무리 논리적(의외겠지만 아이들한테 논리로 접근하면 꽤 잘 먹힌다)으로 해도 최대한 얄미운 표정으로 입술을 한쪽으로 삐죽이면서 ‘흥!’ 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말꼬리를 잡고 토를 다는 말대꾸는 반복됐다. 그림을 그리기 싫어서 그런 건 또 아니었다. 할 건 다 하면서 말대꾸만 그렇게 수업 시간 내내 지치지도 않고 해댔다. 엄한 목소리로 경고도 해 보고 목소리 깔고 화도 내봤지만, 이 아이의 버섯돌이 같은 표정과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오늘은 말대꾸를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싶으면 끝나고 갈 때 모습은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힘들게 하다가 학원 스케줄상 그만두게 되었는데 나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민지는 5학년 때 다시 등장했다. 2차전을 예상했으나 이번엔 뜻밖에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끝없는 말대꾸가 사라지고 멀쩡해진 것이다. 사춘기를 일찍 맞이한 아이들 중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빠르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춘기가 오는 아이들이 간혹 있다. 민지는 부모님이 헤어지고 사는 지역도 달라져 전학도 하고 여러 환경이 바뀌면서 이른 사춘기를 맞이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저학년 아이가 선생님한테 버릇없이 구는 걸 조용히 지켜보다가 한다는 말이


“히히히, 나도 그랬었는데”


“아이고, 알긴 아네!. 알기는 알아! 얘들아, 이 언니가 아주 말대꾸 대마왕이었단다”


버섯돌이가 니나로 변신이라도 한 듯 자기 얘기를 과거형으로 말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서 물었다.


“민지야, 너 기억 나니? 선생님 힘들게 했었던 거”


“네. 기억나요.”


“그땐 왜 그랬었니?”


“선생님한테 관심받으려고요”


민지는 의외로 순순히, 눈길을 스케치북에 두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마치 첫 수업 때 자기는 아빠가 없다는 말에 내가, 선생님은 네가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별 관심 없다는 듯 반응했던 것처럼. 버릇없이 굴던 저학년 아이의 입이 꼭 닫히면서 얌전해졌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나도 애꿎은 피아노 선생님을 힘들게 한 적이 있었다. 3학년 봄에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바로 옆집이 피아노집이었다. 옛날엔 간판 달린 학원이 거의 없었고 피아노나 미술 선생님 집으로 가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피아노 치기 싫어서 딴청을 했다. 전학 와서 친구도 없고 그래서 피아노도 치기 싫고 뭐, 이런 식으로 징징댔다. 무섭고 딱딱한 원장 선생님께는 통하지 않을 게 뻔했지만 젊고 상냥한 선생님은 내 얘기에 맞장구도 쳐주고 나를 달래도 주셨다. 아, 이렇게 하면 선생님이 나한테 신경을 써 준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렇게 해서 받게 된 관심이 좀 괜찮았다. 그래, 나도 그랬었구나. 그 선생님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힘드셨겠구나.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중이구나. 교습소를 하는 동안, 이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아이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서연이라는 1학년 아이가 그랬다. 수업 중에 좋게 들리지 않는 노랫말이나 유행어를 누가 꺼내면 하지 말라고 제지한다. 정작 유행어를 꺼낸 아이는 더 이상 안 하는데 서연이는 그 순간부터 그 유행어를 계속 떠들어 댔다. 그래야 선생님이 자기를 신경 쓰니까.  ‘그만하자~’ 말하고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서연이는 아까보다 말은 점점 빨라지고 계속 선생님을 옆눈으로 주시하면서 보이는 그 히스테릭한 목소리와 초조해하는 표정과 행동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행태였다. 미술치료 테스트를 했다. 서연이가 그린 동적 가족화에는 남자 어른 한 명만 덜렁 그려져 있었다. 이 남자는 아빠냐고 물었더니 작은 목소리로 아니라고 한다. 그럼, 누구냐 물으니, 눈을 내리깔고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쓸쓸한 표정이었다. 가족화에 혼자 있는 남자 어른이 누군지 짐작이 갔다. 서연이 어머님께 상담 요청을 했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서연이 동생을 앞으로 매고 온 서연이 어머님은 젊고 아름다웠다. 그동안 학원에서의 서연이 행동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림을 보고 나서는 울상이 됐다. ‘아우, 어떡하죠, 내 새끼 불쌍해서,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지’를 반복했다. 서연이 가족화에 있는 남자 어른은 아마도 생부인 것 같다고 하자 서연이 어머님은 그마저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부정하지도 않았다. 서연이는 엄마의 새 가족에 자신이 낄 자리가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림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후로 서연이는 눈에 띄게 문제 행동이 좋아졌고 엄마가 얼마나 세심하게 아이를 챙겼는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은 아이들도 할 줄 안다. 어떤 선생님한테 응석을 부려도 되는지, 버릇없이 굴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마음을 터놓아도 되는지 안다. 필요하다면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인지 아닌지 간파한다. 처음 학원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할 때 시쳇말로 간을 보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그릴 수 있는 만큼만 그려도 되는지 어떤지 나를 떠보며 기싸움을 하려 드는 것이다. 다섯 살짜리 여아 다경이, 한동안 요 깜찍한 아가씨와 신경전을 했다. 기싸움이 펼쳐진 것이다. 다섯 살짜리가 어른과 기싸움이 가능하다고? 놀랍지만 가능하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표현이 막혀 있다면 그림을 지도해주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생겨야 표현도 가능해진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그 표현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그러다가 어느 한 시점에 그 표현이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이 스르륵 뚫리는 순간이 있다. 알을 깨는 순간. 새끼 새가 알껍데기 안에서 웅크린 채 열심히 쪼는 과정이 밖에서는 안 보이다가 균열이 생기면서 껍데기가 뚫리면 그때부터 날개를 펴고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표현에 자유가 생긴다. 이런 과정의 현장,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은 정말 굉장하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일 것이다. 그냥 그저 그런 어린아이의 그림일 뿐이겠지만 나는 안다. 아이가 그 그림을 그릴 때 어느 순간에 손끝이 별 가루를 날리는 요술 봉이 와 닿으며 뾰로롱 변신했는지를. 설명하기도 힘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 하지만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 이런 부분에 이해를 구하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하고 호응하고 동조하던 엄마들도 나중에 딴소리할 때가 있다. 아동에게 미술 활동이 중요한 줄을 알아서 학원에는 보내지만 왜 어떻게 중요한지를 알기보다는 학교에서 상 타는 것이 당장 더 중요한 경우가 한 예고 또 다른 예 중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다경이 어머님은 후자였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초반에 영민하면서 까다롭고 선생님을 컨트롤하려 드는 다섯 살짜리 꼬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경이 어머님은 그동안 내 지도 방향과 방법을 완전히 지지해 주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럴만한 아무 이벤트도 없었는데 예고 없이 학원에 방문해서는 그림도 금방 늘지 않는 것 같고 이렇게 학원에 보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숱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태도를 바꿔 듣기 불편한 말을 굳이 면전에 한다니 좀 이상했다. 더 기이한 것은 ‘오늘은 집에 행사가 있어서 좀 일찍 데리고 가겠습니다’ 양해를 구할 때 정도의 편안한 표정이었다. 전에 알던 사람과 다른 사람 같았다.






그리고 이제 여섯 살이 된 다경이는 그만두었다. 그제야 그 어린아이가 선생님과 기싸움을 해가며 상대를 떠봤는지 알 것 같았다. 주 양육자인 엄마가 호떡 뒤집듯이 다른 소리를 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유형이라 아이가 타인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된 건 아닐까 추정했다. 말하는 사람의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을 하려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될 테니까. 언제 말을 바꿔 딴소리를 할지 모르니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 이리저리 떠 봐야 하지 않았을까. 다경이의 미술치료 테스트 중 동적 가족화에서 본인을 제외한 다른 식구들은 보이지 않았었다. 엄마도 동생도 그림에서 보이지 않고 본인만 아주 작은 크기로 그렸다. 아빠가 있는 방에 가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실제로는 복층이 아닌 아파트였다) 그림이었는데 다섯 살짜리가 혼자 그 많은 계단을 오르려면 얼마나 힘들까. 외로운 그림이었다. 이 꼬마 아가씨는 처음 만났을 때 나와 기싸움을 벌이던 모습은 얄밉도록 똑 부러진 깍쟁이 같았지만, 자신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든지 지지해 준다는 것.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의 달라진 모습을 번갈아 생각하자니 씁쓸했다.






민지는 같이 사는 아빠가 없었고 같이 사는 아빠가 있는 다경이는 그림 속에 아빠가 없었다. 서연이는 엄마의 남편인 아빠 말고 내가 인정하는 아빠를 그림 속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림 속에서는 같이 있을 수 있는데도 아빠와 같이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그리지 않았다. 같이 사는 아빠가 없으면서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사는 아빠가 있으면서 마음에는 없는 것, 쉽게 어느 편이 더 낫다든지 나쁘다든지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마음을 그린다는 것, 그림으로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볼 수 있다. 외로운 것, 쓸쓸한 것, 행복한 것, 화난 것, 슬픈 것, 기쁜 것, 우울한 것들이 모두 보인다. 누구랑 친한지 누굴 미워하는지 누굴 좋아하는지 그림으로 알 수 있다. 그림은 그렇다. 그런데도 일곱 살이나 저학년 아이들을 학교 생활에 필요해서거나 상 타는 것만을 목표로 미술을 시키고자 학원에 보낸다면 좀 그렇지 않나? 옆집 아이가 내 아이보다 색깔을 좀 더 다양하게 쓸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신경 쓰이나? 적어도 취학 전 아이들의 그림은 편하게 그릴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림으로 마음을 풀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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