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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ree Nov 08. 2024

그림은 몇 살 때 시작하는 게 좋을까?

네 살? 다섯 살? 아니면 취학 전 일곱 살?




보통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그림은 몇 살 때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미술학원 원장에게 한다면 그 의미는 보통 ‘미술 활동이 많은 저학년 과정에 대비해’라는 전제가 깔린 경우가 많다. 실제로 꽤 들었다. 대다수의 학부모는 초등학교 입학하면 미술 활동이 많으니 일곱 살 때 일 년을 준비기간으로 생각하고 미술학원엘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동미술 지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르치던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정말 떡잎부터 남달랐다. 그 어머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네 살 때(한국 나이로) 이미 인물의 얼굴 특징을 잡아서 그릴 줄 알았다고 한다. 이마가 넓은 사람은 이마가 넓게, 인중이 긴 사람은 인중을 길게, 눈이 짝눈인 사람은 그렇게 그리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재능 있는 아이가 네 살 밖에 안 됐으니 아직은 미술을 할 떄가 아니라고 내내 손 놓고 있었다면, 7살에 학교 가기 전에 준비한다고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어린아이들 특유의 주관적인 세계관으로 그린 그림을 그릴 시기의 단계를 건너뛴 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그림부터 그리게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이 정도 수준의 아이라면 연필을 서투르게나마 쥐면서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아무 종이에라도 뭔가를 그려내기 시작했을 확률 또한 높다.





재능이 뛰어난 아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어린아이는 뭔가를 그리고 싶어 한다. 자신이 팔을 움직이는 대로 생기는 흔적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리는 것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이리저리 그리기를 시도해 본다. 그래서 벽지 위에 낙서용으로 빈 도화지를 붙여 놓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그리는 그림을 난화(難畵)라고 하고 이 시기가 지나면 머리에 팔다리를 붙여 놓는 두족화(頭足畵) 단계로 들어간다. 미술치료 테스트를 할 때 이렇게 단순한 두족화 그림으로도 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아이가 태어나고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부모는 내 아이는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한 번씩 하게 되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아이들의 기발한 발상에 따른 표현이나 아이들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을 때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아낌없이 웃는다. 또 그 내용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눈다. 아이의 서투르지만 새로운 표현에 대해


 "너 말을 왜 그렇게 하니, 발음은 또 왜 그래, 똑바로 해야지!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란 말이야.”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말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만약 양육자의 반응이 이렇다면 아이는 입을 다물어 버린 채 선택적 농인이 되지 않을까? 아직 어려서 말과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그림으로 표현의 도구로 쓰는 것인데 그림을 아이답게 그리는 것은 애석하게도 말을 배울 때만큼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어른들은 아이였을 때의 천진함과 자유로운 표현을 모두 잊었다. 혹은 그림으로 표현해 본 경험이 없거나 있어도 기억 못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하듯이 아이들을 그림 표현의 농인으으로 만들면 곤란하다.





나는 유치부 수업도 했었는데 유치부 수업은 손도 많이 가고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해서 아무래도 신경을 더 써야 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말도 예쁘게 해야 하고 혹시 가위질하다가 다치지 않나 지켜봐야 하는 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유치부 수업을 좋아했던 것은 바로 그 아이들만의 순수한 표현, 귀엽고 재미있는 발상을 그림언어로 만났을 때의 즐거움 때문이었다. 아이가 자신만의 언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걸 지켜보는 기쁨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데 있어 비타민 같은 역할을 했다. 





인지가 빠른 아이들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일찍 객관화된다.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지만, 손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사물에 대한 객관화가 일찍 이루어져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자기가 그려 놓은 이미지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려면 거부감이 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기 쉽다. 여기에 더해서 사소한 실패조차 두려워하거나 시작이 어렵고 완벽주의 성향에 자존심까지 강하다면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엔 그림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뭣 모를 때. 책상이 네 다리를 펼친 채 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는 게 아니라 똑바로 서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싶은 생각이 아직 들지 않을 때. 공을 던지느라 쭉 뻗은 팔을 가제트 팔처럼 길게 그려놨어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눈치채지 못할 때 시작해야 자기중심적인 표현, 즉 아이들만의 자유롭고 재미있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자기 위주로 해석해서 그리는 이 시기가 어떤 아이는 네 살일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7살일 수도 있고 드물게는 1학년일 수도 있다.





아이가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할 때, 감흥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바로 표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기를 놓치거나 간섭, 통제당하거나 한다면 자유로운 표현과는 일찌감치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단계로 접어들면 2학년 가을 사생대회의 나처럼(제6화 참고) 그림에 손도 못 대보고는,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구나 하고 자신감을 잃는 불행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에 자신이 없는 아이 중에는 엄마나 선생님께 이거 그려달라 저거 그려달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엄마나 선생님이 그려주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림에 자신 없고 의존적인 아이에게는 엄마나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이 표본과 기준이 될 수 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도전하고 시도해 보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그림이 되는 셈이다. 살살 달래서 본인이 직접 그려보게 하는 것이 좋다. 제6화 ‘소풍과 사생대회와 엄마’ 에서 예시로 든 방법을 참고하면 어떨까 싶다.





내년에 학교에 입학하니 그 전에 선행을 시키는 차원에서 미술을 시켜보겠다는 생각도 좋지만 아이가 끄적거리기 시작하면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미술 활동에 있어서 어느 발달 단계쯤 와 있는지를 지켜 보고 그것에 맞게 지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만의 아이답고 자유로운 표현의 시기, 그 길지 않은 시기를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점이다. 피카소는 아동미술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쳤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인데 문제는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갔을 때 본 그림 중에는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들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피카소 화집에도 없을 것 같은 작품들이었다. 피카소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린 그림이었는데 정말 아이가 그렸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했다. 피카소의 노년에 어린애 장난처럼 그린 그림 이전에는 이런 그림의 시대가 있었구나, 정말 라파엘로처럼 그리는데 4년 밖에 안 걸릴만 하다, 누가 봐도 놀랄 것이다. 위의 피카소가 한 말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같은 맥락일 거로 생각한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아이들이라 가능한 천진한 표현은 어른이 노력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때는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고 놓치면 아까운 시기다. 이 과정을 즐긴 아이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아이가 커서 어느 매체로든 자기표현을 하는 데 있어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궁금하다. 





내 경우엔 작업할 당시 표현이 자유롭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걸 깰 수가 없어서 참 힘들어했던 경험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있어 표현이 꽉 막혀 있었다.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니 작업하는 내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럴 때면 바로 그 2학년 때의 사생대회가 떠오르곤 했다. 그림에 손도 못 댔던 그때 느낀 꽉 막히고 답답한 느낌과 비슷한 답답함이었다. 내가 나중에 아동미술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별렀고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림은 몇 살 때 시작하는 게 좋을까? 미술학원은 몇 살 때 보내는 게 딱 좋을까? 역시나 그런 건 없다. 몇 살 때 시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리고 싶을 때 마음껏 그릴 수 있는 환경과 자유가 보장되느냐, 지지와 존중을 받느냐, 그래서 아이가 꺼내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풀어낼 수 있는 자유함이 가능하느냐이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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