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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ree Oct 25. 2024

아동 미술 교육자에게  미술 치료 공부는 필수

그림으로 화풀이하는  방법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때론 실기 지도만으로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은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도를 마련해야 했던 가운데 미술치료를 처음 접하게 됐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 미술 치료가 알려지기 시작한 무렵이다.




처음엔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했으나 과정이 수월치 않았다. 당시엔 서울에서는 배울 수 없었고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는 대구에 있었다. 대구에서 2주간 지내며 기본 과정을 듣고 거기에 더해서 임상 수련, 워크숍, 학술대회 등으로 시간과 비용이 꽤 들어갔다.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바로 취득하려면 석사 과정을 거치면 됐는데 또 대학원을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학회를 통해 취득하자니 어차피 대학원을 졸업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담 분야는 허들이 많고 높은 데 비용도 많이 든다. 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중간 과정 정도까지 하고 하차했다.




자격증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그때 공부한 덕에 아동미술 지도를 하는 데 있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더 나은 방향과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동미술 교육자는 다양한 실기 지도 능력 외에도 미술치료 공부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유치부와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의 경우 어떤 미술학원엘 보내야 할지 고민이라면 미술치료를 공부한 선생님에게 배우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미술치료 공부를 했을 경우 아이들의 그림을 이해하는 폭과 시각이 더 크고 넓어진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기 때문이다. 미술 치료 공부는 미술 교육자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학원에 신입 아동이 등록하면 한 보름동안은, 이 아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일단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면 미술치료 테스트 그림을 그려보게 했다. 동적 가족화, 학교 생활화, 스트레스 진단화, 이렇게 세 가지 테스트를 했다. 나는 미술 치료사가 아니므로 테스트 결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보이더라도 미술 치료를 진행할 수는 없다. 단지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파악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데 참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다면 일반적인 스케줄을 진행하면 된다. 표현의 어려움이 있을 경우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그림 수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다. 그림 표현이 안 될 경우 단순히 그림을 많이 그려보지 않아서 생긴 자신감 부족인지 아니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돼 표현이 막힌 건지 등을 체크한다. 문제점이 보인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부모님과 상담을 통해 개선이 가능한 사안인지, 혹은 정말 소질이 부족한 건지 등을 파악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수업을 할지 가늠할 수 있는 과정이다.




세 가지 테스트 중 ‘동적 가족화’는 가족 간의 역동성을 ‘학교 생활화’는 선생님과 교우들과의 관계를 ‘스트레스 진단화’는 스트레스 정도와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테스트를 하고 나면 아이의 마음 상태이니만큼 부모님(주로 어머님과 상담할 때가 대부분이다)과 공유하기 위해서 상담을 진행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동의를 구하고 지도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가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표현이 막혀 있으면 당분간은 당장의 결과물보다 좀 지켜봐 주셔야 한다는 등의 양해를 구했다. 이런 경우엔 미술치료 테스트를 해 보면 어떤 상황인지, 생활면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이 된다. 정서적이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으면 그림에서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 쉽게 말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다는 얘기다.









2학년 진호는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다고 했다. 하교해서 미술학원에 오는 동안에도 내내 심통이 났던 모양이다. 학원에 와서도 기분은 풀어지지 않았고 스케치북을 펴도 그림 그릴 기분이 전혀 나질 않았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도 사납고 거칠게 반응했다. 이대로는 오늘 수업을 제대로 하고 갈 수 없게 생겼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정한데 차분히 집중해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진호가 오늘 친구랑 싸워서 기분이 안 좋구나. 기분도 별론데 그림 그리지 말고 오늘은 그냥 놀까?”


“진짜요?”


평소 그리던 걸 계속 그리게 하지 않고 일단 스케치북은 덮게 했다. 항상 제 자리에 비치된 A3 용지(297mm x 420mm)를 한 장 가져오라고 했다.


“오늘 친구하고 싸울 때 마음이 어땠어?


“때려 주고 싶었어요!”


“지금도 때려 주고 싶어?”


“네”


“그런데 친구를 때리면 안 되잖아. 폭력은 안 되는 거야. 대신 좋은 방법이 있어”


“뭔데요?”


“이 종이에 화풀이하는 거야. 색연필을 양손 가득 쥘 수 있는 만큼 가득 쥐어 보자, 그리고 마음대로 막 그려봐. 동그라미를 점점 크게 그려보기도 하고 그냥 직선을 죽죽 그어도 되고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그어도 돼. 그 위에다 겹쳐서 돼.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려 봐. 친구랑 싸우고 화가 난 마음을 여기다 쏟아 버리는 거야. 아마 이렇게 막 그려본 적은 없을걸? ”




진호의 부루퉁했던 표정은 벌써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양손에 한가득 색연필을 쥐고 팔을 크게 움직이면서 북북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렸다고 할 수 없이 형태도 없는 아무렇게나 생긴 낙서에 가깝다. 이렇게도 그렸다 저렇게도 그렸다 하는 동안 얼굴에 이젠 웃음기마저 돌기 시작했다.



“이야아~~ 맞아라~ 막 그린다~”


“이것 좀 봐, 선하고 색깔이 섞이니까 재미있는데? 이 위에 더 진하게 그려봐도 되겠다. 이번엔 그 위에다 매직으로 그려볼래?”


진호는 진한 색깔 매직을 골라 또 마구마구 선을 그렸고 이제 종이가 거의 빈틈없이 채워졌다.


“어때, 신나지?”


“네!”


“자, 이번엔 아까 친구를 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둥근 모양이었을까 뾰족한 모양이었을까. 생각나는 모양을 여러 개로 오려 보자.”


“다 오렸어요”


“이제 스케치북에 그 오린 마음을 붙여 볼까. 재미있는 그림이 될 것 같은데? ”




진호가 오린 모양을 스케치북에 배치해서 다 붙이고 났을 때는 이미 화가 다 풀려 있었다.


 “이야, 멋진 작품이 나왔네! 기분 나쁜 일, 화 나는 일이 있을 땐 이렇게 그림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할 수 있어. 어때, 괜찮은 방법이지?”


“네!”




그날 진호는 학원에 들어서던 모습과 달리 깡충거리면서 돌아갔다. 아이도 기분이 좋았고 나도 좋았다. 미술치료 공부는 경우에 따라 이런 식으로도 수업에 활용되었다. 진호는 지금쯤 성인이 됐을 것이고 마음이 힘들어지는 때가 언제고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싸웠던 날, 미술학원에서의 수업 경험이 진호가 살아가면서 ‘승화’라는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데 보탬이 됐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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