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왕따일까? 학교 생활화

by atree


나는 5학년 때, 자다가 소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친구 A로 인한 학교생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한때는 A와 어울리기도 하고 집에도 놀러 가는 사이였는데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무리의 중심에서 나를 겨냥해 따돌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를 힘들게 했었다. 요즘 시대에 말하는 왕따까지는 아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이야 그랬었다는 사실만 생각날 정도로 희미한 기억이지만 당시엔 자다가 오줌을 쌀 정도였으니 마음고생을 꽤 했었던 건 사실이다.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알럽스쿨’이 뜨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생겼는데 그 모임에서 만난 다른 친구도 A한테 따돌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A는 누구 한 명을 표적 삼고 그 대상을 바꿔가면서 친구들을 괴롭혔다. 주변을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아이들이든 성인이든 어느 연령층 어느 집단에서나 무리를 짓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아이에게 '학교 생활화'를 그려보게 하면 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 무리를 주도하는 처지인지 아니면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인지 눈치챌 수 있다. 선생님과 관계가 어떤지, 선생님은 무서운 편인지 친근한 편인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편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편하게 대하는 편인지 보인다. 전자의 경우는 선생님을 크게 그리고 화지 중앙에 위치시킨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친하게 지내는 아이는 몇 명 정도 되는지 그중에서도 누구랑 친한지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린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부적응 상태인지, 선생님께 칭찬받았는지 야단을 맞았는지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편인지 아니면 친한 친구 없이 소외돼 있는지도 그림으로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과 자신의 처한 상태와 마음을 그림으로 다 보여준다.




'학교 생활화' 테스트는 ‘선생님과 친구 두 명이 뭘 하고 있는 걸 그려라. 친구는 두 명보다 더 많이 그려도 좋다. 너도 포함해서 그려라.’라고 제시어를 준다. '학교 생활화'도 기본적인 해석이 동적 가족화와 같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안 좋은 아이들은 선생님을 빼고 그린다. 선생님은 왜 안 계시냐고 물으면 교무실 가셨다든지 뭘 가지러 가셨다든지 하는 이유를 댄다. 또 어떤 아이는 선생님하고 본인만 그리기도 한다. 선생님과의 관계는 괜찮은데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된다. 친한 친구는 본인과 가깝게 그린다. 꺼리는 친구는 자기로부터 (위장된) 줄을 긋거나 구역을 달리해 놓거나 뒷모습으로 그려놓는다.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요소가 있는 가족화에서 흔히 보이는 ‘구분’과 ‘포위’ 형태가 '학교 생활화'에서도 흔히 보인다. ‘구분’은 인물 간의 정서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데 노골적으로 선을 그어 경계를 짓기도 한다. 또는 구분하는 선은 없지만 인물이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만 활동을 하는 것으로 뚜렷한 구분을 보이기도 한다. 혹은 아예 자로 줄을 그어 칸을 나눠 놓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람 수에 해당하도록 종이를 접어서 접힌 칸마다 인물을 따로 그리기도 한다. ‘포위’는 그 인물에 대한 방어적 개념으로 그 인물을 선으로 둘러싸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줄넘기하고 있는 모습, ‘ㄱ’ 자 싱크대(싱크대에 둘러싸이게 된다)에서 설거지하는 엄마, 신문 보는 아빠 등이다. 학교에서는 흔히 책상과 의자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가족화와 달리 '학교 생활화'에서는 아무래도 경쟁 구도가 많이 보인다. 경쟁은 주로 달리기 하는 모습이나 줄넘기하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등산하는 그림으로도 그리는데 학교에서는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산을 오르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선생님과 친구 모두 정면으로 웃는 얼굴을 그렸지만, 선생님은 유독 그렸다 지웠다 흔적이 많이 남은 그림은 선생님에 대한 갈등이 많은 것이다.




가족화에서 서열 순서대로 인물을 그리듯이 학교 생활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을 제일 먼저 그리지만 어떤 아이는 어떤 친구를 제일 먼저 그린다. 이 아이에게는 선생님보다 그 친구가 더 존재감이 있는 것이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무섭지 않고 편한 선생님일 확률이 높다. 선생님만 정면으로 그려 놓고 친구들은 전부 뒷모습으로 그린 그림도 있다. 선생님만 긍정적 감정을 갖고 있고 친구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제일 먼저 그린 친구는 뒷모습의 머리고 몸이고 간에 까맣게 칠해 놓았다. 그 친구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다. 역시 책상과 의자 사이에 앉아 있게 그린 포위 형식이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학교 생활화를 그렸다면 본인을 가장 작게 그리거나 가장 나중 순서로 그릴 것이다. 또는 아예 그리기를 거부하거나 할 확률이 높다. 친구들이 한 명도 안 그려질 수도 있다. 그리더라도 본인과는 거리를 두고 그렸을 것이다. 서로 비슷한 크기로 적당한 거리로 웃는 얼굴을 정면으로 상호작용이 있는 형태로 그리지는 않는다.




한 1학년 남자아이는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을 선생님이 ‘야’라고 크게 소리치는 말풍선과 함께 선생님의 거대한 손이 자신을 향해 뻗어 있고 ‘퍽’ 소리가 나는 말풍선을 그렸다. 그 바람에 자신의 혼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손은 능력, 권능 정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선생님은 상체와 팔만 그렸는데도 화지의 삼 분의 이를 차지한다. 이 아이가 느끼기에는 학급에서 그만큼 선생님의 통제와 힘이 강한 것이다. 선생님의 크기에 비해서 본인을 포함한 다른 아이의 크기는 손가락 하나의 크기보다도 작다. 한 마디로 선생님이 반 분위기와 학생들을 장악한 형태의 그림이다.





반에서 가장 힘 있는 친구는 가장 크게 첫 번째로 그리고 중앙에 위치시킨다. 자신과 친한 친구라면 그 친구와 가까이에 자신을 그리고 아니라면 자신은 화지의 변방에 작게 그려 놓는다. 또 다른 1학년 남자아이는 선생님과 친구 한 명을 그렸는데 모두 의자 위에 올라가 서 있는 모습이다. 한 줄로 그린 의자 다리의 길이는 작게 그린 사람 길이의 2~4배가량이다.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 상태의 그림이다. 선생님의 손을 마치 긴 칼이나 매를 들고 있는 것처럼 길게 그렸는데 새까맣게 칠해 놓았다. 이 아이의 학교생활이 아주 불안하고 편치 않아 보인다.




유치부 일곱 살 남자아이는 자신을 포함한 세 친구가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는데 각자 가위, 바위, 보를 낸 그림을 그렸다. 어느 누구 이기거나 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세 인물의 크기도 비슷하게 그려놓은 모두 웃고 있는 이 그림은, 세 친구가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 없이 비슷한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 친구가 삼각구도로 있는데 그중 자신을 제일 먼저 그렸고 두 번째 그린 친구를 살짝 자신과 가깝게 그려 놓았다. 두 번째 그린 친구를 조금 더 가깝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세 친구 간의 거리와 인물의 크기와 힘의 균형이 잘 맞아서 서로 잘 지내는 관계로 보인다. 인물 간의 적당한 거리는 건강한 관계를 의미한다. 인물끼리 너무 밀착돼 있거나 겹쳐있는 그림은 유착된 관계로 건강한 관계로 보지 않는다. 가족화에서도 인물 간의 너무 먼 거리는 유리된 관계로 보는데 이 또한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일곱 살 때부터 학원에 다니다가 1학년이 된 가원이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자기랑은 안 놀아주고 놀리기만 한다고 했다. 자기 가슴께 옷을 부여잡으며 하는 말이 그럴 때면 자기 심장이 깨지는 것 같다고 했다. 가원이는 가끔 쉬는 날에도 나에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종알거리던 아이였다. 아이답게 순수하고 맑은 아이가 고작 여덟 살인 아이가 울상이 되어 심장이 '깨진다’는 표현을 쓴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나는 가원이에게 반 친구들이 놀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뭐라고 받아쳐야 하는지 가르쳐 줬다. 못된 친구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이렇게 말해라, 자신 있게 또박또박 말하는 거야, 알았지? 가원이는 발음이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놀리면 너는 어떻게 말해야 한다고? 선생님한테 말해 봐. 옳지. 그렇게 말해줘야 해. 크게 소리치지 말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야 해. 단단히 일러두었다.




가원이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가원이와 한 살 어린 준호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두 아이 앞에서 고개를 숙여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준호가 가원이에게 괜히 심통을 부리다가 욕을 한 마디 했다. 가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상황이 금방 접수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아니, 방금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깜짝 놀라서 그런 나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누가 누나한테 이런 욕을 하냐고 얼른 사과하라고 했다. 준호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사과했다. 사과를 받아 준 가원이는 잠시 뒤 내 뒤로 와서 아무 말도 없이 어깨를 몇 번 주물러 주고는 돌아가서 다시 그림을 그렸다. 준호는 아마도 말썽 피우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선생님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으면 선생님이 미워서 더 심술 맞게 굴 법도 한데 준호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학원에 있다가도 틈이 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미술학원에 괜히 들러서 들여다보고는 내가 말 몇 마디 붙이기도 전에 또 후다닥 가버렸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아무 제재를 하지 않으면 어른의 권위, 가르치는 선생님의 건강한 권위를 포기하고 외면하는 것과 같다. 수업 중에 어떤 아이가 공분을 사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에게로 와서 꽂힌다. 과연 선생님이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떤 처분을 내릴지 냉정하게 지켜보는 것이다. 이때 모두가 인정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은 선생님을 우습게 보기 시작할 것이다. 마땅한 처분이 내려졌다고 판단되면 아이들의 매와 같은 시선은 거둬지고 선생님과 어른으로서의 신뢰는 지켜진다.




가원이는 그다음 해에 미술학원은 그만두었지만, 피아노학원은 계속해서 다녔다. 피아노학원 원장님께 가원이가 달라져서 아주 뭐 이제는 똑소리가 난다고 전해 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기세가 올랐다는 얘기였다.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가원이가 따돌림당할 때 '학교 생활화'와 자기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적응해서 기세가 올랐을 때의 '학교 생활화'는 전혀 다른 내용일 것이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너무 큰 걱정을 하지 않을 필요가 여기에 있다. 건강하지 않은, 유치원이나 학교 생활화,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당하는 것 같은 내용의 '학교 생활화'를 그렸더라도 또 이렇게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을 오랫동안 하면서 본 바로는 타고나길 이기적이고 좀 못된 아이들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런 유형이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변화되지 않으면 또 옆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되긴 할 테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일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주변의 관심에, 친절함과 다정함에 서로 감염되어 가며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아이가 어려움 당했을 때 관심 가져주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내 편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든 왕따를 당하는 아이든 간에. 알고 보면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들도 당연히 관심이 필요하고 내 편이 필요하고 그 아이에게 중요한 인물의 지지가 당연히 필요하다. 학교에서 친구를, 직장에서 동료를 따돌리는 행위도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 서로 다정해지고 관심 가져주고 내 편이 되어주면 왕따가 생기는 일은 없을 텐데. 다 큰 애가 자다가 소변 실수 하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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