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생활통지표에 담임 선생님께서 남겨 주신 말씀으로 ‘노작 활동’을 즐긴다는 내용이 있었다. 실과 시간에 나무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면서 망치질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내가 즐기는 걸 보셨던 모양이다.
6학년 겨울방학 때 눈이 많이 왔던 날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 공사장에 눈이 쌓여 아이들이 포대로 미끄럼 타는 놀이에 열중했었다. 여자는 나밖에 없었다. 남자아이들이 포대를 차지하고 노는데 얻어 타자니 기분 좋게 빌려주지도 않는 데다가 그사이 해가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공사장 주변에서 나무토막과 판자를 구했다. 망치질해서 엉성하나마 포대를 대신할 썰매 비슷한 것을 만들어 차례를 기다릴 필요 없이 신나게 놀았다. 또 신발주머니를 만드는 수업 땐 바느질을 배웠는데 내가 만든 것을 보고 당시 잠깐 동안 같이 살던 친척분이 깜짝 놀라셨다. 뚝딱거리며 썰매 같은 걸 만들어 선머슴처럼 놀던 아이가 바느질을 야무지게 한 건 의외였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어렸을 때 외모가 좀 중성적이었는지 남자아이로 종종 오해를 샀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바느질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손이 빠르고 손재주가 있어야 하는 건 대부분 잘하는 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기보다는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쪽이 더 강했다.
아이 중에도 그리기보다는 놀이 미술에 강한 아이들이 있다. 놀이 미술을 즐기다 보면 그 흥미와 관심이 그리기로 전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굳이 힘들게 일주일에 한 번씩 놀이 미술 수업을 병행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는 아이 중에는 본인이 원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흔히 엄마 손에 이끌려 오게 된다면 처음엔 수업에 재미를 붙이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경우 놀이 미술로 인해 그리기로 재미가 전이되는 건 선생님 입장에서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미술 활동이 그리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건 다행스럽다. 또 나처럼 그리기보다 손을 움직여서 하는 활동에 더 강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처음 교습소를 시작할 무렵만 해도 대부분의 미술학원에서는 그리기 위주로 수업했었다. '놀이 미술'이란 용어도 당시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창의 미술', 심지어 요즘은 '융합 미술'로 진화하게 된 시초인 ‘만들기 수업'은 그리기 수업에 비하면 낮은 비중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끔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놀이 미술 수업 프로그램은 일단 학교 미술 교과 과정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에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할 만한 내용으로 짰다. 공예, 염색, 디자인, 판화 등에서 또 세부적으로 나눴다. 나는 '놀이 미술'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차츰 '창의 미술'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헀다. 내 기억으로는 '놀이 미술'이 내가 만든 용어가 아니었을까 싶다(확신할 수는 없다).
일주일의 하루는 놀이 미술 시간인데 아이들은 신이 나고 죽고 나는 힘들어서 죽는 날이다. 놀이 미술은 만들기 포함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으로 아이들은 이 시간을 몹시 기다리고 즐거워했다.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표현을 달리해 보기도 한다. 한 아이의 어머님은 아이가 말하길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수업을 할지 너무너무 기대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힘들어도 일주일에 한 번을 지켜야 했다.
초등부, 유치부가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하더라도 유치부는 난이도를 낮춰 연령에 맞는 수준의 결과물을 내게 한다. 수업 중에 가위, 조각칼, 글루건이나 스테플러 등을 자주 쓰게 되므로 선생님 입장에서는 놀이 미술이라고 흥분한 아이들이 혹시라도 다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유치부 아이들은 아직 소 근육 발달이 덜 된 상태다 보니 하나하나 봐줘야 하고 속도가 더디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직접 해보려는 욕구까지 덜 한 것은 아니라서, 유치부의 경우 글루건을 사용할 때는 선생님이 글루건을 잡고 있으면서 이건 여기다 붙이고 저건 저기다 붙여야 하는 등의 세세한 아이들 각자의 요구를 지원해 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그렇게 아이들 나름의 디자인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기 마련이므로 마땅히 존중해 줘야 한다.
놀이 미술 프로그램 몇 가지를 소개한다.
놀이 미술 수업이 시작되면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먼저 하게 한 뒤 구체적인 계획이 서면 시작하게 했다.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흙으로 만들고 초벌 한 뒤 칠하고 전기 가마에 구운 비누 받침대/ceramic
아이들마다 다른 수박 이미지의 재해석/플라스틱 접시에 매직으로 그림
붓을 동글동글 돌려가며 이미지를 만든 재미있는 시도 (7세)/MDF판에 아크릴 물감
협동 작품/그림자 그림으로 이야기 만들기/우드락에 아크릴 물감
고무판화
마블링
핑계 김에 단 것을 먹을 수 있었던 미니케잌 데코레이션(맨 왼쪽 사진의 바닥에 있는 그림은 아이디어 스케치)
부직포 인형 만들기
부직포 가방 디자인
샌들 디자인 & 만들기
풍선을 이용한 털실 오브제 만들기
부활절 계란 꾸미기
크레파스 녹여 그리기
크리스마스 모자와 양초 만들기
손수건 홀치기 염색
사포화/ 거친 사포에 크레파스 겹쳐 칠하기
나의 놀이미술/ 초벌된 기물에 그림 그려서 구워 낸 핸드페인팅
브런치 스토리 프로필의 나무 이미지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개인 작업실을 정리하고 나서 공동 작업실을 할 때 나중에 합류한 언니의 남편은 우리 학교 디자인과 교수였다. 이 언니도 미술로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아서인지 그룹을 만들어 아이의 미술 지도를 나에게 맡겼다. 다섯 살 때부터 한 이년 간 수업을 했는데 이때도 그리기와 놀이 미술을 병행했다. 미술 활동은 특히나 유치부 시기에 이 두 가지가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니의 아이는 7살이 됐을 때 영재 판정을 받았다. 부모가 테스트 과정을 볼 수 있었는데 보아하니 놀이 미술을 해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놀이 미술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재료를 접해 보고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테스트에 임할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리기와 놀이미술을 병행해야 한다는 내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또 그 후로 정색을 하고는 똑같은 얘기를 한두 번 더 했을 때는 그냥 인사차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리고 느꼈다. 나로서는 그곳이 어떤 영재원인지 얼마나 똑똑해야 영재로 판정받을 수 있는지보다 그 점이 중요했다. 놀이미술이 창의성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여기고 인지하는 것. 나는 놀이미술에도 비중울 두고 그리기와 병행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고무됐다. 놀이 미술에서 접하는 다양한 재료들과 여러 가지 활동이 아이들의 창의성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 더욱 확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놀이 미술. 다 좋았는데 문제는 수업을 진행하는 내가 너무나 힘들다는 거였다. 보조 선생님은 말 그대로 보조 선생님이었고 교습소는 수업은 진행하지 않는 보조 선생님까지만 허용되었다. 모든 걸 준비하고 진행하는 건 내 몫이었다. 놀이 미술 수업이 있던 날 퇴근하고 나서의 그 해방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그래도 일 주일에 한 번을 고수했다. 만약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이 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으로 바꾼다면 아이들의 실망은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놀이 미술 하는 날은 학원 가는 길에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는데, 놀이 미술 할 생각으로 학원 들어설 때 기대에 찬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 마음을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나와 함께 했던 놀이 미술이 아이들에게 즐겁고 재미있던 유년의 기억으로 남아 있길, 또 그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데 내 수고의 지분이 일정량 차지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