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상담 시 ‘애가 저를 닮아서’까지 나오면 나는 얼른 눈짓으로 고개를 짧고 빠르게 가로로 흔들면서 ‘그런 얘기는 지금 하지 마세요’ 사인을 보낸다. 맙소사. 당사자인 아이를 옆에 앉혀 놓고 그런 말씀들을 하신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이미 그림을 못 그릴만한 아이로 확정당했다. 그림을 못 그려도 되는 일종의 면죄부를 이미 발부해 놓고 나중에 그림 못 그렸다고 하면 아이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다. 학원을 오래 다녔는데 그림이 늘지 않았다고 치자. 엄마가, ‘학원에 다녔는데도 그림이 안 느네’ 했을 때 아이가 ‘엄마 닮았잖아요. 소질이 없어서 해도 안 되는데 어떡해요’ 한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무엇보다 애초에 가능성의 싹을 잘라 버리는 발언이다. 일찌감치 이런 판결을 당한 아이들이 어떤 자신감과 의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아이 중에는 소질은 있는데 단지 다른데 관심이 쏠려 있어서 현재는 그림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또 정말 정말 소질이 없어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이 경우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보다도 더 드물었다. 혹은 지능이 낮아서일 수도 있다. 소 근육 미발달 상태라 제 나이보다 어린아이들처럼 삐뚤빼뚤 그릴 수도 있다. 인지가 빠른 아이인 경우엔 사물에 대한 객관화가 일찍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 없어 하는 경우도 있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자기가 그려 놓은 이미지의 갭이 너무 큰 걸 눈으로 확인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안 그려보면 못 그릴 수밖에 없다. 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표현이 막혀 있을 수도 있다. 흔히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이렇듯 흔히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할 수 있는 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이 중 어떤 경우일지도 모르는 채로 싸잡아 소질이 없어 못 그린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소질은 갈고 닦으면 잘 할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재능에 대한 내 개인적인 기준은, 따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경우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재능은 진흙 속의 진주처럼 발굴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초등학교 동창 중에 그림을 무척 잘 그렸던 친구 S가 있는데 이 친구가 당시 앙케이트(당시 우리 학교 유행이었다)에 그려 놓은 그림을 지금 미술 선생님 입장에서 본다면 재능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주제가 있는 그림이 아니라 앙케이트 노트에 제 맘대로 그려놓은 무슨 공룡 같은 상상의 괴물들로 어떻게 보면 낙서에 불과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연령의 아이 중에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그만큼의 드로잉을 하는 아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이 친구, S의 그림은 따로 배운 적도 없이 혼자 그렸을 뿐인데 선이 얼마나 노련한지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드로잉이다. 그만큼 연습량이 많았다는 얘기다. 본인은 연습 개념이 아니라 그리면서 놀았던 것이겠지만. S의 옆집에 살던 다른 동창의 증언에 의하면 커다란 달력 뒷장이 다 채워지도록 빽빽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며 놀았었다고 한다.
나이 서른 넘어 동창회에서 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앙케이트에 그린 그림 얘기를 하니 기억에 없다는 듯, 내가? 그랬었나?? 하는 정도의 별 감흥 없는 반응을 보였다. 나보고는 왜 피아노 전공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음악 시간에 내가 반주를 맡았던 걸 기억한 것인데 이 작은 손과 짧은 손가락으로 무슨 피아노 전공을 한단 말인가. S가 본인의 그림 놀이를 잊고 산 것처럼 나도 어린 시절 스트레스 해소 방편이었던 피아노를 잊고 살았다. 중학교 때,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니 피아노가 사라지고 없었다. 모친께서 까닭 없이 갖다 버린 것이었다.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가끔 무슨 병이 도지기라도 하듯 내 물건을 묻지도 않고 버리셨다. 덕분에 이 친구가 피아노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내 머리에서 피아노는 완전히 잊혔었다. 이 친구 역시 대학 전공도 직업도 취미도 그림과는 담쌓고 산 듯했다. S가 나보다 훨씬 더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금의 내 지식으로 본다면 학년마다 반장을 했던 S는 아마도 영재였을 것이다.
영재. 내가 가르쳤던 아이 중에도 있었다. 유치부 때 만나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그림을 가르쳤었다. 이 아이들 역시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몰입도가 높았다. 둘 다 남자아이였는데 차 종류에 관심이 많았다. 한 명은 탈 것 종류에 관심이 많았고 다른 한 명은 탱크로리 한 가지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버스, 지하철, 비행기를 잘 그리던 아이는 다른 그림도 다양하게 그렸지만, 탱크로리를 그리던 아이는 늘 그것만 그렸다. 몇 달 동안 아니 몇 달이 뭔가, 내가 가르치는 내내 일 년이 넘도록 탱크로리만 그려댔다. 아이가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리도록 지지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조차도 아이어머니의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어머니는 아이의 특성을 알고 있는 터라 답답은 해도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영재의 어머니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작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다른 걸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매번 같은 것만 그려도 그렇게나 그림으로 할 말이 많았다. 그리고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번 같은 걸 그리는 것 같지만 또 매번 다른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이렇게 자세히 그릴 수 있다는 건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자세히 관찰했다는 얘기고 관찰 이전에 호기심이 있다는 얘기다. 평소에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집요하게 관찰했던 대상에 몰입해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진을 보지 않고 그린 그림/ 7~8세 /색연필 드로잉
나는 학부 졸업 후 화살표 시리즈로 작업을 했었는데 동기 중 한 명은 내 그림을 보고 무슨 벽지 그리는 거냐고 핀잔을 줬었다. 너는 맨날 화살표만 줄지어 나란히 그려 대냐고. 그런데 나는 화살표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았는걸. 그래서 이 아이들이 같은 걸 계속 그렸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버스에 몰입하던 아이는 중학교 때 그림 관련 카페를 만들었다고 하고 탱크로리에 몰입하던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중에서도 더 잘하는 아이들이 간다는 영재고인가 과학고인가를 갔다고 전해 들었다. 전문가가 봤을 때, 영재는 향후 더 나은 성취를 보여줄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아이들이란 면에서 보자면 이 아이들은 영재가 맞았을 것 같다. 소질이 있는 아이는 많지만, 영재성을 가진 아이는 드물다.
카이스트 영재교육 센터 센터장인 이성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영재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몰입’이라고 한다.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몰입도가 굉장히 높고 자신이 관심 있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끝장을 보려는 기질이 있고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또 전 멘사 회장이자 영재교육 컨설턴트를 하고 있는 지형범 선생님은, 영재들은 다루기 까다롭고 고집이 세고 감수성이 예민한 그래서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며 역시 ‘과도성’과 (예측하기 어려운)’몰입’을 꼽는다. 여기에 더해서 영재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렌줄리 박사의 세반고리 모형에서는 ‘창의성’과 ‘과제 집착력’, 이 두 가지를 더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같이 보일 때 영재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성. 나는 재미있고 정형화되지 않은 공간에서 창의적 욕구 및 사고가 자극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시대의 주거 형태가 대부분 아파트이고 아파트가 아닌 빌라나 다가구주택 등도 실내 구조가 대동소이하다. 틀에 박힌 구조에서의 성장환경이 대한민국의 창의성을 저해하지 않을까 하는, 좀 오지랖 성 우려가 있다. 오래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을 했었는데 이 여행은 순전히 가우디의 건축을 보기 위해서였다. 가우디 건축 중 ‘까사 바트요’의 인어 비늘을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지붕은 정말 아름다웠다. 실내에 들어가 보니 이 집에 살던 아이들은 미적 감각에 어떤 영향을 분명히 받았을 것 같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 감각의 직무 유기 아닐까 하는 좀 억지스러운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지형범 선생님은 또 IQ가 높은 아이들은 말을 빨리 시작하고 언어의 어휘 수준이 높다고 말씀하신다. 영재 아이들의 인생은 다양하게 전개된다고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경우, 자기 잠재력과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 채 외롭고 비참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영재는 높은 IQ를 가지고 성취가 높은 삶을 살고 어떤 영재는 그 반대의 삶을 사는가의 여부에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영재일수록 또래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정서적인 안정의 토대와 교우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보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과 이해다. 아무리 좋은 지능을 타고났어도 부모의 관심과 지지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유일하게 온라인상에 가끔 글을 올렸던 곳이 지금은 잊혀진 알럽스쿨이었는데 동창 S가 내 글을 읽고 에세이 써도 되겠다고 댓글을 달았었다. 이 친구의 전공은 문예 창작이다. 오래전 동창회에서 만났을 때는 대기업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퇴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 쪽 일로 사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검색해 보니 그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떤 한 가지에 꽂히면 끝장을 보려는 영재의 기질이 결국 이렇게 발현된 건가 싶다. 각자 엇갈린 방향으로 전공을 했고 엇갈린 취미를 갖게 됐다. 취미를 넘어서 그 친구는 직업이 됐고 나도 이제 직업이 됐으면 하고 있다. 쓰고 보니 재미있는 일이다. 그림을 잘 그리던 S야, 나 지금 브런치에서 글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