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에 쌓아 올렸던 얇디얇은 내 자존감
만약 누군가 앞으로 평생 단 하나의 홍콩 레스토랑만 갈 수 있다면 그럼 넌 어디를 택할래?라고 물어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선택할 것 같다 Mott 32라고.
그만큼 Mott32는 참 많이도 갔다. 블로그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포스팅한 맛집도 Mott32였다.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을 제일 먼저 데려가는 곳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홍콩 친구들과 조용히 식사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다.
Mott32가 왜 좋을까?
Mott32가 왜 좋을까 난? 우선 기본적으로 맛있다. 모든 메뉴를 먹어보진 못했으니 다 맛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메뉴는 전부 맛있다. 다음으로 친절하다. 예약 명단을 확인해 주는 모델 포스 직원부터 테이블 담당 서버까지 여느 5성급 호텔 못지않은 친절함을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건 이곳만의 분위기와 인테리어. 홍콩스러우나 홍콩스럽지 않은 바이브.
지하 금고로 쓰였던 곳을 어쩜 이렇게 멋스럽게 재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Joyce Wang은 Mott32로 2014년 그 해의 세계 인테리어(World Interior of the year 2014) 상을 받기도 했다니 역시 잘 키운 디자이너 한 명 열 몫을 하는구나.
이래서 Mott32가 좋다. 홍콩을 알고 글로벌 트렌드를 이해하며 기본에 충실하다. 지피지기 하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누군가 그랬다. 스스로를 제대로 알면 나의 장단점이 명확히 구분되어 자존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장점은 내세우고 단점은 인정하니 사람들도 당연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물었다. 자존감이 높은 건 어떻게 아냐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그건 너무 진부하잖아요.
누가 그걸 모를까요?
난 나를 사랑하고 자존감도 높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땐 정말 그런 건지 하나도 모르겠던데요.
명함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몇 년 전 홍콩으로 처음 왔을 때 XX 엄마로 불리는 게 너무 쑥스러웠다. 어른인 줄 몰랐는데 어른인 걸 강제 인증당하는 기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왔으니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어느 날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학교 선배들 저녁 모임에 나갔다. 명함이 어디 있더라. 어딘가에 모아두긴 했는데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나 보다. 없다. 그냥 이러저러해서 홍콩에 오게 되었다며 내 소개를 마쳤다. 오고 가는 이야기 속 그 어디에도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작아졌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었는데 명함도 직장도 없던 나는 그렇게 쪼그라들어갔다.
그러다 교회에도 나갔다. 이번에도 역시 언제 홍콩에 왔는지 어디에 사는지 아이 학교는 어디인지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며 내 소개를 마쳤다.
또 어느 날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별일 없는지 묻는다. 별일은 무슨... 다만 아이가 학교를 옮겼는데 선생님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문득 그 어디에도 나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쭈그러진 마음이 한 데 뭉쳐져 구겨져버린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게 일을 안 해서 그런 건가 싶어 다시 일이 하고 싶어 졌다. 명함이 없어 그런가 싶어 번듯한 명함에 새겨질 직업을 다시 갖고 싶었다.
명함 위에 쌓아 올렸던 얄팍한 자존감이란
그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Mott32에서. 어디에 서 있어도 불안하다고. 무슨 대학을 나오고 어떤 일을 하고 어디서 일하는지 한 줄 명함 없이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나로서 보여주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했다.
뭐지? 이 분 나를 잘 모르시나? 나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고 자기애 쩐다고 친구들이 그랬는데 분명. 그러자 다시 지금의 너를 사랑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제야 아. 지금의 나,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나는 그다지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자존감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보다 남들 눈에 보이는 자랑스러운 엄마 딸, 무슨 일을 하는 누구였던 거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자존감이 아니었다. 그 누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 직업과 명함으로 한 겹 포장한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명함이 없어지자 포장도 벗겨졌다. 포장이 벗겨지자 순전히 나 그 자체만을 딛고 일어서 맺어야 하는 인간관계가 어려워졌다. 그 어떤 일을 해도 나는 나이고 그 누군가를 만나도 나여야 했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나만 생각하다 보니 정작 그곳에 나는 없었다.
예전 이효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한 자존감이 기억난다. 본인 남편 이상순 왈 자존감이란 의자를 만들 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히 처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만족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거라고. 자기가 제일 잘 알지 않냐고 자기가 그 의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 이 말이 뭐라고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Mott32도 그랬다. 가장 보이지 않는 화장실에서 Mott32만의 인테리어 정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
나를 나로서 보여주며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구로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물론 홍콩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과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계급장 떼고 차포 떼고 그냥 나를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 계급장과 차포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건 너무 어렵고 먼 길이라 나를 듣고 적기 시작하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
무슨 일을 하는 누구, 어떤 겉모습의 누구가 아닌, 내가 보고 느끼는 무언가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 안의 구석구석 모든 것을 언젠가는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어서. 십이지장 췌장까지도: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