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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Oct 28. 2020

언더브리지 스파이시 크랩에서  마늘을 논하다

냄새는 선입견일까

완차이의 유명 레스토랑 “언더브리지 스파이시 크랩”


한갓진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점심을 먹으러 간 언더브릿지 스파이시 크랩.

칠리 갈릭 미디엄 스파이시의 미디엄 사이즈 크랩을 앞에 두고 남편이 말했다.


 우리한테만 마늘 냄새난다고 난리야?”

수북이 쌓인 마늘칩을 뒤적거리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크랩을 하나 찾아들고는 또 한마디 하는 남편,


"지네도 이렇게 많이 먹으면서"

그렇네.
 우리한테만 마늘 냄새난다 그랬던 걸까?

처음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만들어  말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나라 관련한 거라면 뭐든 비하했으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미국인들이  질색하는구나 마늘냄새.

어릴   어느 드라마에서 미국인 바이어와  미팅이 있는 남편에게 아침을 미역국으로 끓였다고 타박받는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디엄 사이즈 미디엄 스파이시 크랩(680 hkd_약 10만원)


이탈리아도 마늘 냄새로 욕먹고 있다고?”

그래서 찾아보니 우리 민족만 욕먹고 있는   아니었다.  서유럽에서 가장 경제 수준이 떨어지던 이탈리아. 같은 유럽 사람들에게조차 마늘 냄새난다고 욕먹었다고.

미국 이주 이후엔  심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식당 근처에만 가면 마늘 냄새난다고 놀림받던 이탈리아 사람들. 마피아 등장 이후로 그런 욕이 줄었다는 웃픈 이야기도 있었다.

근데 웃긴  그런 이탈리아의 연간 마늘 소비량이 우리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2004 우리나라 인당 마늘 소비량은 6.73kg, 이탈리아는 0.74kg으로 1킬로도  된다. 그나마 중국이 2위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고 일본은 저만치 아래인  0.21kg 수준.


조개 관자(1개당 48 hkd, 288 hkd_43천원)


정말 우리에게 날까 마늘냄새?”


관련 주제로 한 너튜브 영상 채널도 여러 개 보고 왔다. 결론은 한국인의 체취가 다른 나라에 비해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다는 믿을 수 없겠더라. 한국인 채널에 한국어로 한국인을 욕할 수는 없었으니 좋은 말만 해주었겠지.

홍콩에 와서 처음  개월간 힘들었던  특유의 안남쌀  짓는 냄새. 레스토랑이건 가정집이건 저녁 무렵 흘러나오는 밥 짓는 냄새에 홍콩 자체가 싫어질 정도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느 순간 그 냄새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냄새는 여전하겠지만 익숙해졌는지  냄새 자체가 나질 않는다.

중동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처음 몇 달은 괜찮았는데 1년 지날 무렵이었던가.    바게트 빵에서 중동인 특유의 체취가 느껴졌다. 그 후론 크루아상을 사 먹어도 맨밥을 사 먹어도 그들의 체취가 코 끝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유럽에서 살았던 스튜디오에서는 그렇게 베란다만 나가면 암내가 진동했다. 청소도 해보고 방향제도 뿌려보았지만 이사 나갈 때까지 그 암내는 없어지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그럴  같다.

우린 모르지만 이미 10세기 무렵부터 1년에 무려 228개나 되는 마늘을 먹어 온 민족이니 그 냄새가 아예  나지 않기는 힘들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대답을 해 주었던 너튜브 속 외국인들은 이미 자연스럽게 먹은 한식 덕분에 익숙해진 게 아닐까 한다.


언더브리지 스파이시 크랩 내부


마늘이 좋다!”


어느 해 여름 방학 엄마가 가져가라며 주었던 의성 햇마늘. 잘게 다져 냉동실에서 하루 얼린 덕분에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했다.

시판 다진 마늘만 사용해오다  직접 간 마늘을 넣은 요리는 신세계였다. 묘하게 감칠맛이 달랐다. 초딩 입맛이지만 확연히 그 차이가 느껴졌다. 그 후 엄마의 마늘은 다 떨어졌지만 여전히 생마늘 사다 직접 까고 다져 요리에 넣고 있다.

지난 사스(SARS) 때 한국인의 마늘과 김치에 누구보다도 주목한 홍콩인들. 그때 이후 김치가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했다고. 코로나에도 역시 한국 김치는 인기이다. 직접 만든 김치만 파는 SNS 계정의 주요 고객은 놀랍게도 거의 다 홍콩인들. 왜 내가 다 뿌듯한지.

@teamvoyas/unsplash.com


홍콩 사람들도 누가 놀러 오면 꼭 데려가는,

언더브리지 스파이시 크랩



이쯤에서 각설하고 다시 스파이시 크랩에 집중했다.  딱딱하고 뜨거운 껍질 발라내는 게 귀찮아 남편에게 모든 수고를 맡겼지만 사실 크랩은 크래미가 제맛 아닌가. 크랩은 제쳐두고 알싸하고 짠맛의 마늘칩 한 숟가락 가득 떠 맨밥과 함께 비벼 먹어 주었다.

저녁이 아니라 점심에 와서 그런가. 해산물의 싱싱함보다는 마늘과 당면의 양에 승부를 보는 것 같았던 언더 브리지 스파이시 크랩(Underbridge Spicy Crab).


더 이상 엄마 아빠를 이유 없이 따라다니지 않으려 하는 사춘기 초입의 아이가 해산물 식당에서 굳이 탕수육 시키는 클라스. 우리나라 감자탕 집에 어린이들을 위한 돈까스 메뉴가 있듯 홍콩 해산물 식당에도 다행히 초딩을 위한 탕수육이 있었다. 브라보!

탕수육(78hkd_11천원)


냄새는 선입견일까?”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재미난 실험 결과로 냄새는 선입견임을 입증했다.

뚱뚱한 그룹과 날씬한 그룹 사진을 보여주며 똑같은 로션 냄새를 맡게 했더니 전자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로션 냄새가 불쾌하다고 한 반면 후자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쾌적하고 상쾌한 냄새라 대답했다고.

음식 역시, 출신 나라의 경제 수준이 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시도 처음 서양에 소개되었을 땐 비리고 역하다며 무시와 경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며 스시 역시 고급 음식으로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60년대 미얀마보다도 못 살던 시절엔 한국인만 떠올려도 마늘냄새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90년대였나. 해외가수들이 내한공연 올 때마다 요리사를 대동하고 이고 지고 온 생수만 봐도 그랬다.

그러나 이젠 우리가 먹어도 하루 종일 마늘 냄새에 괴로운 명동 교자에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이 줄 서 있다.  

그야말로 마늘에 미친 민족이 만든 매드포갈릭은 홍콩에 까지 진출했고 마늘에 젓갈까지 들어간 김치는 홍콩 시골 슈퍼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도 선입견이었을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빨리 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향수의 반작용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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