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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Oct 26. 2020

브런치의 추억, 플리퍼스 Flipper’s

진한 밀크티와 폭신한 수플레 팬케이크


갓 회사 입사했을 무렵 동기들이랑 일요일마다 브런치 먹으러 다니는 게 낙이었던 때가 있었다. 친한 동기들끼리 삼삼오오 가로수길, 로데오를 누비며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니던. 사회 초년생들  나름의 시X 비용이었나 보다.


가끔 회사 외근 나와 돌아다니다 보면 어쩜 그렇게 지하철, 쇼핑몰마다 사람들이 가득한지. 나만 일하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평일 점심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고 있는 젊은 엄마들.


구내식당에서 팀장님 수저 밑에  휴지 깔아드리며 리액션도 업무의 연장 선상이었던 내 평일 점심시간과 달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한없이 경쾌했던 그들의 브런치.


그때는 몰랐다.


부럽기만 했던 그들이 아이 픽업 시간이면 땡 하고 달려가야 하는 신데렐라였다는 것, 내가 본 잠깐의 브런치가 그들에겐 하루 중 유일하게 숨통 트이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 하루 종일 아이와 이야기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성인 여자들과의 대화였을 거라는 것.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 다 부질없구나. 누구나 저마다의 고충이 있구나. 나이 들면서 좋은 점은 경험이 쌓이면서 이해의 폭이 커진다는 것이다. 나 자신아 엄마 말 잘 듣자. 나이 꽁으로 먹는 거 아니다.


그 시절 향수로 종종 찾는 브런치 팬케이크 전문점
플리퍼스 Flipper's

플리퍼스 Flipper's는 일본에서 온 체인점으로 우리나라에도 갤러리아 백화점 고메, 종로 익선동에 있다고 한다.  홍콩에서 17년도인가 처음 오픈했을 때는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입장 가능했는데 역시 브랜뉴에 유독 열광하는 홍콩 사람들 답게 몇 개월 지나자 오픈초 인기는 금방 식더라.


카우룬 쪽에도 매장이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코즈웨이베이 하이산 플레이스 지점 딱 하나 남은 듯 보였고 구글에는 11시 오픈이라 했지만 12시 오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투명 칸막이가 테이블마다 설치되어 있었지만 눈가리고 아웅 하는 느낌. 정부에서 하라니까 하지만 옛다 설치했다 이런 느낌

그래도 기본 발열체크는 철저히 하고 있었고 직원이 좀 준 듯 하지만 상당히 친절했다. 열한 시 오픈이냐고 묻는 질문에 "Twelve"라고 대답하는데 "체어"라고 들려 같이 한바탕 웃기도.


이렇게 포장손님은 15% 할인혜택이 주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메뉴판도 찍어보고
KISEKI PANCAKE 119HKD

수플레 팬케이크 맛집이니 수플레는 기본으로 시켜보지만. 폭신하긴 하다. 식사보다는 디저트에 어울리는 수플레 케이크. 폭신한 촉감에 한 입 물면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근데 아쉽게도 달걀 비린 맛이 살짝 거슬린다. 이번에는 다를까 싶어 또 시켜보지만 매번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내가 고기 누린내에 예민해서 그런 걸 수도. 몇 번 먹다 말지만 이상하게 시키지 않으면 서운한 메뉴.


Salmon & Avocado Pancake 129 HKD

그냥 식사대용으로 나온 요 팬케이크가 훨씬 맛있다. 연어가 팬케이크랑 먹기엔 맛이 너무 튀지만 내 사랑 아보카도가 있어 거의 이 메뉴는 매 번 갈 때마다 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집 밀크티 맛집일세! 팬케이크 전문점이라기보다 밀크티 전문점 하자 그냥.


홍콩 매거진 "LACRUCCI"에 따르면 홍콩 플리퍼스가 일본 본점보다 무려 53%나 가격을 올려 책정했다고 한다. (거 너무한 거 아니오!) 팬케이크 하나당 99~139 HKD 하며 버블 밀크티는 26 HKD 정도이다. 양을 말하자면.... 팬케이크는 간식 아입니까! 인당 하나는 시켜야 그나마 뭐 좀 먹었다 싶다.


그래도 아직까지 존재해주어 감사하다. (망하지 마세요. 계속 생각날 거 같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주세요ㅠ)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홍콩 식당업계는 그야말로 줄줄이 도산이다. 얼마 전에는 장국영이 사랑했던 딤섬집으로 유명한 "예만방(Dim Sum The Art of  Chinese Tit Bits)"도 폐업했다고. 구글링 해보니 "Permanently Closed"라고 뜬다.


어떻게 보면 한 개인의 사업일 뿐이지만 잘 키운 식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문화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거창한가.


유명 배우의 흔적이 남아있고 관광객들에게는 추억의 맛집이며 현지 사람들에겐 특별한 순간을 나눴던 장소가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 생각하니 기억 저편이 잘려나간 듯 허전하고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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