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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Oct 29. 2020

혼자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

엘리펀트 그라운즈(Elephant Grounds Roastery)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 가사가 아니더라도 우린 다 알고 있다. 커피 한 잔의 여유. 다만 그 여유를 즐기러 가기까지 수많은 Yes or No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인가?

✔️저녁거리 반찬은 충분한가?

✔️긴급한 업무는 다 끝냈는가?

✔️오늘 비 소식은 없는가?

✔️또 다른 미팅은 없는지

✔️당장 널어야 할 빨래는 없는지

✔️밀린 설거지는 없는지

✔️적어도 몇 시까진 돌아와야 하는지


이 모든 질문에 올 YES라고 대답한 당신, 떠나라!

바다도 아니고 산도 아닌

그저 동네 카페일지라도 말이다.

혼자여도 좋다. 아니 혼자일수록 좋다.


편하게 입고 핸드폰, 노트북, 지갑만 챙겨

나 혼자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게 얼마만인지. 이것저것 따지다 늘 다시 집 책상 의자에 주저앉았던 엉덩이. 무겁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오늘 힘겹게 떼는 데 성공했다.


가기로 했으니 가보기로 한다.


임대료 세기로 유명한 홍콩.

그래서인지 내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넓고 광활한 카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먹으면 먹는 즉시 접시를 가져가는 통에

스벅에서조차 빈 테이블 위 몇 시간 앉아있는 건

눈치 보이므로 아껴 먹거나 끊임없이 계속 주문해야 한다.

아니면 테이블을 치우는 하얀 장갑 낀 손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메이”를 다급하게 외치든가.


셩완역에 내려 구글맵을 켜보았더니 10분 정도 걸린다고. 아뿔싸 근데 그 10분 여정이 오르막일 줄이야!


오래간만에 올라가 보는  .

가쁜 숨을 몰아쉬고 오른쪽으로 돌았더니

멀리서도 보이는 "Elephant Grounds".


입구에서 한 5분쯤 기다렸을까. 손님이 빠지자 들어오라 한다. 입구 쪽 QR코드를 찍으라길래 무슨 이벤트 하나 했더니 간단한 코로나 관련 설문조사였고 주문은 다행히 앉은자리에서 받아주었다.


오래간만에 누리는 나만의 시간을 더욱 반짝반짝 빛내줄 무화과 리코타 치즈 토스트와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무화과 리코타 치즈 토스트 100 hkd & 플랫화이트 40 hkd


다만 딱딱한 빵 껍질이 잘 썰리지 않아 예쁘게 먹는 건 포기해야 했지만 아무렴 어떨까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인데!


플랫 화이트는 진하지 않아 좋았다.

홍콩에선 에스프레소 투 샷이 기본. 알코올에 이어 카페인에도 취약한 내 위장은 소량의 카페인에도 뒤집히곤 했는데 여기선 괜찮았다.



자, 이제 할 일을 해야지.

주변을 둘러봐도 저마다의 일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어 보였고 나 역시 시선이 향한 데 마음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을 마치니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짐을 다 가져가자니 자리를 치울 거 같아 걱정되고, 놓고 가자니 여긴 한국이 아니고. 결국 소심하게 참았다는.


남은 커피 한 모금 마무리하고 일어섰다. 애써 가져 간 노트북은 켜지도 못했네. 그러고 보니 다 맥북이다.


한 때는 그래, 나도 맥북 갖고 싶었다. 근데 이젠 내 체력에 맥북은 너무나 무겁고 안 되는 게 무지 많다. 더 이상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갑자기 나 자신에게 흐뭇해지고.


그때 들려오던 John Mayer의 "Gravity".

그 선율을 글로 적을 수만 있다면.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기며 나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

목과 어깨에 뭉쳐있던 스트레스가 노곤하게 풀려왔다.


“Gravity”가 그래비티가 되어,

떠나려는 날 그렇게 한참을 더 붙들었다.

선곡 센스 누구냐 정말.


그렇게 두 시간 동안 행복했던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끝이 났다. 테이블에 늘어놓았던 짐을 정리한 후 집을 향해 나섰다.


아직 "Gravity"의 바이브가 남아서일까.

뭐라도 사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집으로 가는 길.

그냥 뻔한 평범한 식빵 말고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조각 케이크를 하나 사고 싶었다.


가족에게도 나의 행복한 기운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었나 보다 특별한 무언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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