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인 아침은 꼭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포근한 기분에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어김없이 하얀 세상입니다. 네모난 지붕 위에는 카스텔라처럼 동그란 장독대 위로는 달달한 생크림 케이크처럼 소나무 위에는 동그란 솜뭉치가 내려앉은 것 같은 귀여운 모습입니다.
밤새 조용히 내려 차곡차곡 쌓인 눈의 성실함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햇살과 바람도 눈과 같이 쌓인다면 어떨지,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어 '눈'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들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계절이면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날이 찾아오고는 했습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캄캄한 새벽녘인데도 힘들지 않게 눈을 뜹니다.
한참 잠이 많은 나이, 첫차를 타기 위해 여섯 시면 일어나야 하기에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은 가장 힘든 계절입니다. 일요일과 방학이 너무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눈 쌓인 새벽녘. 아직 바깥도 집안도 고요한 가운데 요란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에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슬며시 미소를 지어봅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던 엄마가 전화를 받고 나서 제게 와 말합니다. "눈이 많이 와서 오늘 학교 안 와도 된데."
눈이 많이 온 덕에 일요일이 하루 더 주어졌습니다. 물론 버스를 타지 않고 등교를 하는 친구들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나가야겠지만요. 적어도 한 시간은 더 잠을 잘 수도 있고 버스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뛰지 않아도 되기에 평소에는 걸어서 등교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반대 입장이 됩니다.
안 그래도 많지 않은데 친구들이 몇 명 나오지 않으니 평소보다 허전한 교실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끼나 다람쥐 얼굴을 한 털실내화를 신고 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꽁꽁 언 운동장에 굴하지 않고 눈싸움을 하는 것도 좋지만 흔치 않게 찾아오는 이런 날이 싫을 리가 없습니다.
같은 입장의 친구들 역시 전화 소리에 설렘과 기대를 안고 눈을 떴겠죠. 실컷 늦잠을 자도 좋겠지만 이미 번쩍 하고 정신이 들었는데 다시 잠이 올리가 없습니다. 일찍 밥 먹고 바깥에 나가 부지런히 놀며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들을 톡톡히 누리고 싶습니다.
아직 새하얀 동네 길에 제일 먼저 발자국도 내보고 언덕배기에 올라 썰매를 타고 놉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지만 그 아침을 맞이했던 저는 정말로 행복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