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라는 이상형

by 샹송
앤은 무릎을 꿇고 창가에 기대어 6월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았다. 앤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아,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밖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가지가 창에 부딪혀 톡톡 소리를 낼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자라고 있었고, 꽃이 어찌나 가득 피었는지 잎이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집 양옆에 있는 큰 과수원에서도 사과나무와 벚나무가 하얗게 꽃잎을 흩날리고, 나무 밑 풀밭에는 노란 민들레가 지천이었다. 정원에 핀 자줏빛 라일락꽃이 풍기는 아찔하게 달콤한 향기가 아침 바람을 타고 창으로 흘러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앤은 그 모든 풍경을 빨아들이기라도 할 듯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가엾게도 앤은 지금까지 아름답지 않은 곳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이곳은 앤이 언젠가 꿈꾸던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이런 아침에는 세상이 온통 사랑스럽지 않나요? 시냇물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와요. 시냇물이 얼마나 유쾌한지 아세요? 언제나 웃고 있어요."

-빨간 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중-


글로만 봐도 초록색 지붕에서의 아침은 매일 설렘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고아원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런 아침을 다시 맞이할 수 없을 텐데도, 앤은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감동을 만끽합니다. 소녀는 현실에서 부족한 것들을 상상으로 채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상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앤에게 자연만은 완벽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때로 초록색 지붕에서 첫 아침을 맞이하던 앤의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게도 자연만큼 완전한 만족을 준 것은 없었습니다. 날씨와 풍경을 선택하거나 만들 수는 없지만, 바로 그 이유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 사람이나 물건에게 기대했던 이상형은 이제 자연에게만 남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자연이라는 조건의 이상형이지만요.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대자연의 풍경도 좋지만 소박한 풍경은 늘 곁에서 보고 즐길 수 있기에 좋습니다. 반짝이는 강, 찔레꽃과 아카시아 향기가 나는 길목, 신선한 풀 내음, 다람쥐가 오가는 숲길. 지붕 위에 앉은 작은 새들, 데이지꽃이 핀 들판. 제가 사는 곳의 풍경들입니다.


몇 번의 봄이 더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는 것은 아닐까, 동심이 자연스레 없어지듯 지금의 마음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해본 일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살고 있든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딜 가나 자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위안입니다. 또 다른 풍경을 분명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변한다 하여도 괜찮아졌습니다.




<만화 빨간 머리 앤 속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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