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

by 샹송

봄, 여름, 가을의 흔적들이 빛바랜 듯 놓인 축축한 숲길을 걷는다. 선 계절에서 느꼈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울창하고 한없이 푸르던 숲은 허전해졌지만 겨울만이 가지는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차가운 분위기가 그리워질 때가 올 것이기에 나중을 위해 찬찬히 눈에 담아본다.


시선이 하늘을 향해 있을 때 햇살을 받는 키 큰 나무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보니 속이 텅 비고 반쯤은 형태가 사라진 도토리였다. 잠시 뒤에 도토리 한 알이 또 떨어지더니 뒤이어 이파리 하나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무가 따스한 새봄을 기다리며 단장을 하는 것일까. 수많은 시간 동안 서서 어떤 것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비가 온 뒤라 작은 골짜기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넓은 바다나 강과는 다른 소박한 멋이 있기에 숲 속의 물 풍경을 참으로 좋아한다. 겨울답게 차갑지만 투명한 물은 눈부시게 맑았고 귓속을 채우는 청량한 소리는 숲이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잘 흐르는 물과 달리 고여 있는 물도 있었는데, 막대기로 물길을 막은 낙엽과 풀을 치워주자 금세 유연하게 흘러내렸다. '탁' 하고 답답함에서 벗어난 물을 보자 마음이 시원해졌다. 게 모르게 우리 삶에서도 누군가는 분명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역할자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응달 아래 고이 간직된 하얀 눈 위로 발자국이 있었다. 토끼의 흔적이면 했는데, 모양과 크기를 봐서는 어떤 동물인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산 아래 있으면서 눈이 온 날은 몇 번이나 토끼가 다녀가지 않았을까, 한가로이 숲을 뛰어다니는 동화를 자주 상상하고는 했다.

아쉽게 토끼의 흔적은 없었지만, 새들은 역시나 숲에서도 가장 활기를 띄었다. 유독 고요한 겨울을 숲의 주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들처럼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으로 땅을 깨우고 가만히 보고 들으며 잔잔한 기운으로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를. 돌보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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