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정채봉

by 샹송

바다보다 넓게 내리는 눈.


『스님은 그 거지 남매와 포구에서 만났다.

수만 마리의 하얀 나비들이 나는 듯 눈발로 가득한 바다를 보고 있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누나, 눈이 바다보다 넓게 내린다."』


옆을 돌아보니 대여섯 살로 보이는 사내아이와 장님 소녀가 소나무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작은 나무 그릇을 든 것을 보니 얻어먹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동생의 말소리에 누나가 묻습니다.


『"누구니?"

"스님이야. 머리에 머리카락 씨만 뿌려져 있는 사람이야."』


그 말을 듣던 스님은 입가에 초승달 같은 웃음을 물리었습니다.


『"누나, 오늘 하늘이 저 스님이 입은 옷색깔 하고 같아. 저런 색을 뭐라 하더라?"

"재색이라고 하지."

스님이 대답하였다.

"우리 누나는 그런 말 못 알아들어. 맞아, 생각났다. 맛없는 국 색깔이야."』


스님은 나무 그릇에 돈을 놓았고, 한참 가다 보니 남매는 눈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닿았는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집 없는 아이들이 길가의 짚가리 속에서 잠을 자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돌아서서 걷던 스님은 얼음이 서리는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길을 돌립니다. 아이들이 얼어 죽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절로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따듯한 방과 밥이 있단 말에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길손이야. 누나 이름은 감이구."

......

"감이라는 뜻은 무엇인데?

"아이, 스님도 답답하다. 감이는 그냥 감이라는 뜻이야. 눈을 감았으니까. 그래서 감이야."

"허허, 고 녀석 참."』



바람의 손자국, 발자국


세 사람은 절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이 시작됩니다. 길손이는 누나를 위해 절의 풍경을 자세하고 생동감 있게 말해 줍니다. 누나의 질문에도 늘 성심껏 대답을 해줍니다. 그 말솜씨가 탁월합니다.


『"내가 누나의 댕기를 잡아당긴 게 아니야. 바람이었어. 바람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아유 답답하다, 답답해. 바람은 우리 눈에 안 보여. 비, 눈, 서리는 보이지. 그러나 바람은 안 보인단 말이야. 바람의 손자국, 발자국만 보여. 굴러가는 낙엽,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이 짚고 다니는 손자국 발자국만 보인단 말이야...."』


이제 스님은 마등령 중턱에 있는 관음암으로 공부를 하러 가려합니다. 그 암자로 가는 길은 산이 험합니다. 그곳에 길손이를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감이는 부엌일도 제법 거들고 밥값을 하는데 길손이는 날마다 말썽을 피워서 다른 스님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봄까지 그곳에 머물기로 하고 두 사람은 길을 떠납니다.


물초롱 속에 구름을 넣어서


『길손이는 한사코 작은 물초롱을 들고 나섰다.

"거기에도 좋은 샘이 있다니까 그러는구나."

"스님 바보야. 내가 물 가져가는 것 같아?"

"그럼 물이 아니고 무엇이냐?"

"흰구름을 넣어 가지고 가는 거야. 요 앞날 개울에서 건져 왔거든."

"고 녀석 참"

"스님, 저기 저 안개구름 속에서 우뚝 솟은 산봉우리 이름은 무어야?"

"귀떼기청봉이다."

"귀떼기청봉? 그럼 코떼기청봉도 있겠네."

길손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길손이와 스님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암자에 도착했습니다.



입김으로 피운 꽃


겨울잠에 빠져 있던 암자는 길손이의 소리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벌집이며 다람쥐 굴을 파헤집니다. 솜다리를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누나, 꽃이 피었다. 겨울인데 말이야. 바위틈 얼음 속에 발을 묻고 피었어. 누나, 병아리의 가슴털을 만져 본 적이 있지? 그래. 그처럼 꽃이 아주아주 보송보송해. 저기 저 돌부처님이 입김으로 키우셨나 봐."』


길손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나에게 그렇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곁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길손이는 스님에게 놀아달라고 조르기도 했지만 스님은 공부를 하느라 바쁩니다. 그래서 길손이는 암자 구석진 곳을 뒤지는 것으로 재미를 삼았습니다.




정채봉 선생님의 창작 동화인 오세암입니다. 오세암의 설화를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입니다. 긴 것 같아 나눠 적겠습니다.



오세암은 설악산에 있는 오래된 절로, 본래 이름은 관음암이었습니다. 암자를 중건한 설정 스님에 의해 전해지는 설화가 있는데요. 다섯 살 된 아이가 폭설 속에서 부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오세암'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동화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길이 험해 실제로도 가기 힘든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님이 매번 고 녀석 참, 이라며 길손이의 말솜씨에 감탄을 합니다. 문장을 꼬박꼬박 따라가다 보면 감이의 감은 눈앞처럼 풍경이 살아납니다. 길손이의 순수하고 어여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누나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눈이 되어야 했을 길손이의 고심이 엿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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