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려는 나에게 저항하며, 7km

라운더스 러닝클럽

by Attitude

프롤로그

달리기를 또,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진짜다. 미사리부터 여의도까지 40킬로를 수다 떨며 달려서 국밥 먹은 썰인 즉, 풀코스에 끼니를 때웠는데도 12시가 되지 않은 알찬 주말, 코스 내내 자연 풍경이 근사한 춘천 마라톤 이야기, 러닝 크루들 특유의 에너지와 친근함이 탐나서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매번 중간에 멈췄다. 커피챗에서 시작해서 등산 글쓰기 등 다양한 취미 모임도 여는 라운더스에서 러닝 벙개가 열러서 신청했다.


아침에 날 침대에 눕힌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죄로, 아니 어떻게든 오늘 한 번은 달리겠다는 의지로 일단 오긴 왔는데, 막상 여의나루역에 오고 나니 ‘아 무리에서 안 떨어져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벌써 올라왔다. 명색이 대한민국 군필남자가 가지는 체력 기댓값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나, 낙오되는 상황에서의 쪽팔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행여나 멈춰야 하면, 어떤 구실을 만들지까지도 궁리했다.


이렇게 걱정이 앞섰던 이유는, 여의도공원에서의 달리기 전적이 좋지 않아서다. 한 바퀴도 완주해보지 못했다. 예전에 런린이 클래스를 여의도 공원에서 한적 있는데, 클래스 이름만 런린이지 나 빼고는 다들 10킬로 내지 하프까지 뛰는 사람들이어서, 훈련 후 공원을 달랄 때 내가 감당할 페이스로 달리지 않았다.


출발은 국룰 장소 비행장 부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여기로 오는 건데, 복장이 애매하게 바지가 평상복이었다. 벙개다보니 퇴근 후 즉흥적으로 온 탓에 운동할 때 입을 옷은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여하튼 오늘 달리은 P(파키-호스트), O(오구리-닉), S(초면+ 운동 잘하시는 분), C(S의 찬구분), 나까지 다섯이 여러 러닝크루들 따라 원을 그리듯이 둘러서서 몸을 풀었다.


~0.5km

두 줄로 섰다. 처음에는 내가 중간에 섰다. 원래 페이스 제일 느린 사람이 앞에서는 거지만 크게 상관없겠거니 했다. 한 바퀴도 버거웠던 기억으로 머릿속에서 그렸을 때 두 바퀴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쪼갰다. 일단 코너까지. 비행장에서 코너는 금방이었다. 코너를 지나니 본격적인 시련이 왔다. 이제 직선으로 멀리 쭉 가야 한다. 다음 코너가 어딜까? 옆에 더 현대 서울 등 건물들이 보였다. 더 현대가 얼마큼 가까워야 코너를 돌까? 지나야 나오나? 고작 1킬로 거리가지소 코웃음 나올 이야기지만, 나한테는 끝 모를 어둠이었다. 밤이어서 어둡기도 했지만... 달리면서 나지막이 앞의 말소리가 들린다. '지금 페이스 7분 30?' 어? 8분보다 빠른데? 나는 어떡해?


0.5km~1.5km

내 뒤에 있던 S와 C님이 슬슬 앞으로 나오셨다. 맨뒤는 원래 페이스 제일 좋은 사람이 있는 건데? 항의는 불가한다. 적절히 거리 유지하면서 달릴 생각만 했다. 실시간으로 가까운 목적지를 찾는 대신 완주 걱정이나 숨찬 걱정으로부터 한눈팔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거리를 마냥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건너는 지점에서는 거리가 좀 벌어진 나머지 내가 일행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교차하는 길에서 앞서 넷이 통과하면 사람들이 건너서 엉거주춤을 몇 번 했다. 안돼 페이스가 중요해 페이스. 숨 찾아. 숨. 쓰-흡 후 후 후. 쓰- 읍 후후후


1.5km~2.4km

어느새 두 번째 코너를 돌고 있다. 이제 1바퀴가 머지않았다. 아니다! 2바퀴까지는 반도 안 왔다니. 그래도 일단 달렸다. 미켈레커피가 있는 건물이 보인다. 주황색 형광등을 각지게 장착한 건물. 아까 걸어갈 때 출발지가 저 건물 앞이었던 거 같다. 그래! 저 건물만 보고 달리자. 다른 분들은 중간에 달이나 열기구를 찍곤 했는데 나는 달에도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앞서 달려 나가 사진을 찍어도 포즈는커녕 시선을 돌려줄 여유도 없었다. 일종의 몰입이라면 몰입?


2.5km~3km.. 4km.. 5km??

1바퀴를 지나자 다들 박수를 친다. 나도 덩달아 친다. 그 순간만 마치 1바퀴 돌았다 신난다고 기분만 내는 척했다.


지금 생각하면 2바퀴째 돌던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왜지? 1바퀴 돌 때 비슷한 기분과 걱정이 코스마다 1단계 더 심했을 법도한데. 어쩌면 그때 러너스 하이 비슷한 걸 느꼈나? 쾌감 까지는 아니었는데, 다리에 근육통 오는 거 같다가 무뎌지는 거 같았고, 숨도 그럭저럭 잡히는 듯했다. 코너를 돌 때 O님이 내 상태를 살피러 오셨다. 동네 크루에게서 들은 호흡법을 알려주셨다. 유레카! 따라 하는 척했지만 떠나시고 나서 바로 호흡이 바뀌었다.


어쨌든 2바퀴가 가까워 오는데 P님이 추가로 뛸 사람 더 뛰고, 나는 1킬로만 더 뛰자고 한다. 사실 두 바퀴째 오기 전에 '휴, 2바퀴는 할 수 있겠다. 다다르면 무조건 쉬어야지' 했는데 더 뛰어? 손사래를 쳤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안보였나? 다들 추가로 달리는 분위기다. P님이 거의 어르고 달래듯이 권하는 것이 마치 '이걸 못해? 아니잖아, 실망스러울 건데?' 그런 무의식적 압박이 왔다.


5km~~~~6km.... 7km!!

못 이기는 척 더 달린다. 정말 움직이는 다리에 몸이 실리는 느낌이었다. P님이 그래도 페이스를 8분 넘게 낮춰주셨다. 전신이 괜찮아졌다. 쉬고 싶게 만들었던 통증과 가쁜 호흡은 주렁주렁 매단 채로.


'아놔 이 파알크(P)…'하면서도 어라 근데 나 아직도 달리고 있네? 페이스메이커의 감사함도 있었다. 그렇게 양가적인 느낌을 안고 달리던 찰나 오른쪽 종아리에 쥐 날 느낌이 왔다. 한발 더 착 내딛으면 쥐가 올라올 예감에 몸이 재빠르게 반응해서 멈춰 섰다. 거기서부터 나는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중간중간 허벅지를 주물르며 걸었다. 반대편길을 가는데 마저 뛰는 S와 C님이 지나간다. 예전에 쓰던 꼼수 - 옆에서 달리기 시작해서 마치 계속 뒤에서 달려온 거처럼 보이기- 를 부려볼까 했는데 쥐 나기 직전의 다리가 한사코 말렸다.

그래도 뛴 거리가 6킬로, 뽀짝뽀짝 걸어온 거리가 도합 7킬로 되었다. 최소한 원래 목표 2바퀴는 완주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연패 뒤 첫승의 기쁨이 이런 건가 싶었다.

에필로그

여성분들, 나보다 나이 많은 호스트 다들 나보다 잘 달렸지만, 부끄럽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저 계속 달려서 더 잘 달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땀나게 운동하고 난 뒤 먹는 양식-써브웨이는 든든하고 맛있었다. 출근 전후 시간을 쪼개가며 쓰는 요즘 퇴근 후 잠자기까지의 시간이 거의 지나갔지만 하루하루 알차게 채우려고 꾀했던 이상으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사진: Unsplashlucas Fa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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