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르수테스의 침대
앞서 ‘나만의 스윙인 한에서 모든 스윙은 옳다’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저는 완벽한 스윙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더불어 그 완벽한 스윙을 방해한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강박 또한 가지고 있지요. 시작은 이렇습니다. 골프 레슨을 처음 받기 시작해서 8개월 즈음이 지나 드디어 레슨 프로에게 하산을 신고하는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그동안 저를 가르쳐준 프로가 마지막 조언을 남깁니다. “앞으로 골프를 치다가 공이 잘 안 맞을 때에는 얼리 코킹, 리버스 피벗, 오버스윙 이 셋을 꼭 체크하세요. 갖고 계신 고유의 문제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아직 ‘고유의 스윙’도 제대로 찾지 못한 제게 ‘고유의 문제’가 먼저 찾아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이 말입니다. 이 세 가지가 주적으로 호명되자마자 이들은 스멀스멀 공격을 시도하며 다가오지는 않아도 어느샌가 진지를 구축하며 기나긴 진지전을 예고합니다. 이제 어떻게든 이들을 무찔러야 더 나은 스윙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완벽한 스윙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만일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가정은 앞서 말한 '나만의 스윙론'과 모순되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체형, 근력, 유연성 등 신체조건이 상이한 각각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스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각 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개인의 제반 조건 안에서 제안될 수 있는 각자의 완벽한 스윙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저는 모두에게 맞는 스윙이란 없다고 믿었으되, 내게 주어진 신체의 조건 안에서 나에게만큼은 엄격히 적용되는 일종의 스윙 이상형이 있다고, 아무런 모순감 없이 믿어왔지요.
잠깐! 오래전 친구 한 명이 '프로크르수테스의 침대'라는 다소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프로크르수테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의 머리를 자른 괴물로,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손님들을 침대에 눕혀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답니다. 침대에 누운 손님들을 자신의 침대에 맞춰서 침대를 삐져나가는 부분은 자르고, 침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은 침대에 맞춰 잡아 늘려 죽여버렸다는 것입니다. 친구는 덧붙였지요. "너라면, 잘라지는 게 좋아? 찢어지는 게 좋아?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무시무시한 이 상상력이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전해졌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었습니다만, 그날 이후로부터 침대 위에 드러누워 보내는 심심한 밤이면 눕혀져 잘라지고 늘려져 종국에 찢어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답도 없는 질문에 시달렸죠. "잘라지는 게 나을까? 찢어지는 게 나을까?"
침대 모양으로 납작한 직사각형이 되어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는 그 엽기적인 두 선택지 사이에서 그 무엇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둘 다 무척 매우 많이 아플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스윙에 관해서라면, 그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운 선택지 사이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가려 들볶는 그 강박적 괴물이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우리의 몸이라는 것이 환상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덩어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수백억 개의 원자들이 오가는 과정, 어떤 것은 새로 도착하고 어떤 것은 영원히 떠나가버리는 과정이었다. 마치 우리 각자가 커다란 기차역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인간은 그보다도 못한 무엇, 매일 서커스 공연장이 세워졌다 다시 허물어지는 공터와 비슷했다.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모든 것이 바뀌고, 똑같은 공연은 한 번도 없는 그런 곳 (니콜 크라우스, 김현우 역, 위대한 집, 문학동네, 2020).
스미소니언 협회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는 37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마음은 차치하고라도 몸이 이렇게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그 세포들이 매분 매초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나라고 인지하고 믿는 존재도 매 순간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존재에게 걸맞은 완벽한 스윙이라는 것도 항상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다면 계속 변화하며 새로워지는 나라는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단일한 하나의 완벽한 스윙이라는 것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요? 과거 어느 순간 나를 한번 찾아왔을지도 모르는 그 완벽하다 할 스윙에 지금의 나를 끼워 맞추려는 것은 포로크르수테스와 같은 괴물이 할법한 짓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