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되지 않은 서랍장의 글감들을 버리지는 못하고 슬며시 내어 놓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커피가 겨울보다 따뜻한 시간들.
창을 열자 차가워진 바깥바람이 조금씩 서서히 스며들었는데, 그러나 그 바람을 맞이 하는 사람은, 게으르고 미세한 감촉이 코의 점막에 닿는 순간이 갑작스럽다. 창문은 부드럽게 열리지만 스며든 가을은 준비하지 못한 심장에 맑고 서늘한 바람의 칼을 꽂는다.
가슴이 배꼽에 있어 본 적 있는가. 가을은 그렇다. 가슴이 가슴에 있지 못한다. 가을은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다. 좋은 날 안에서 웅크리는 사람들은 상관없다. 가을은 모른다. 빛의 상쾌함에 가벼워 보이는 표정과 찬바람 안에서 침착하게 가라앉은 이성의 코끝이 사실은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늘 그렇게 느리지만 당혹스러운 계절이, 아침도 아닌 지겨운 오후에 습기가 맺히듯, 어느 여름의 커튼에서 나른하게 나부끼다가 슬며시 숨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가을이 왔고 그것은 내가 가을에 심장을 찔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