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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Sep 30. 2021

망설임.

"신중하되 망설이지 말아라"


별드림에게.

'신중하되 망설이지 말아라'


엽서인지 편지인지 모를 그 짧은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그 짧은 글에 대한 긴 변명.







나는 어떤 망설임의 지대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해로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망설임은 최대한 짧아야 한다.  


망설임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망설임은 비난을 받는다. 나의 망설임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나는 이익을 위해 긴 시간을 망설인다. 그들은 재촉하고 비난한다. 나는 소신이 없고 나약한 사람이 된다. 결과가 좋으면 이기적이고, 나쁘면 부족한 인간이 된다. 그러나 망설이는 사람은 후회할 일이 적다. 망설임은 신중한 펜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망설임의 시간은 욕망이 드러나는, 드러난 욕망이 자연스러워지는 시간이다. 나의 결정은 욕망의 크기가 지성을 압도하기에 결국 지성은 그 결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에만 유용하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보다 더 많은 망설임의 시간을 갖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한다. 나는 그들도 망설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단지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세상은 점점 망설임들의 시간을 추월해 나아간다. 망설임은 단지 마우스와 키보드의 엔터 버튼에서만 살아있다. 나의 손가락 몇 개에게 허락된 망설임은 반쯤은 불안함으로 퇴화되었다. 이미 망설임이 아니다. 오타를 수정하기 위한 시간일 뿐. 






'결정+장애'라는 이상한 조합어로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일상은 더 이상 코미디도 아니다. 망설임은 사람의 지적 능력과 경험이 작용한다. 상황과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다. 결과를 예측을 해보려는 수준 높은 형태의 지적 행동 양식이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긴장이 동반되며 심리적 갈등과 불안도 따른다. 이런 사람에게 비난을 하며 빨리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원시적이다. 망설임의 시간이 많을 수록 드러나는 욕망은 부드럽게 다듬어져 거부감이 없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빠르고 과감한 선택이 얼마나 거칠고 원초적인지.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서 망설인다. 결정된 태도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과 품격을 갖추고 인정을 한다. 누구의 어떤 태도든 그 개별성과 구체적 의식을 수용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인정하지 않는다. 비난이나 야유를 받으며 고심한 망설임의 시간은 외면당한다. 결과만이 다름에 대한 존중을 받는다.


지루한 시간들을 인정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귀중한 고민들의 시간이다. 표면적 가치와 내면의 욕구가 충돌한다. 망설임은 기계적, 중립적 가치 선택과는 다르다. 갈등에 시달리는 시간이 융화되지 못하게 압박하는 것은 정서적 탄압이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뜻과 같도록 강제하는 수단과 함께 더 나은 선택을 방해하려는 비열함도 숨어있다. 



                                                    망설임의 지대에서 머물다.



망설임은 그다음의 망설임으로 이어지는 삶이라는 시간적 행로에 가장 많은 것을 통찰 할 수 있는 깨어있는 순간이 된다. 관성에서 벗어나 관계의 그물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생기 넘치는 떨림을 느끼는 시간이다.  


자 이제 망설이는 것을 더 이상 망설이지 말자.


'망설임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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