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말

그래도함께 있다.

by 아무개




지금 그가.

바람 같았던,

가느다란... 바람 같던 그가

84분 후 훈련소로 들어가 버린다.

20년을 살아온 그가.

이제...

낯선 여행지가 아니라 낯선 통제 구역으로 들어간다.

착잡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다는 감정을 찾아서

내게 설명해 줄 날이 올까.


당분간 내 너의 살을 만질 수 없지만 너의 베개에서 체취를 찾겠다.


사랑한다.







57분 전 그가 검은 모자에 검은 점퍼와 검은 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고 멀어졌다.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수천 명의 긴장과 눈물과 한숨과 격려와 다급한 호루라기와 재촉하는 병사들의 소리가 뒤섞여 난무하는 추억의 입대 현장. 따뜻함이나 차분한 배웅이 아니라 그 원시적인 어떨결에를 간직한, 점수 미달의 인사들. 기분 참... 지랄 맞다.


그의 눈빛이 인장으로 가슴에 박혔다. 검고 깊은 동공의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그 불안과 긴장은 내 다리를 휘젓고 떨리게 했다. 그래도 아빠는 씩씩해야 한다. 잡은 손은 여리고 땀으로 식어있었지만 그래도 아빠는 담담해야 한다. 아빠라는 그 강박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와서 무너지면 안 된다. 나는 강하고 씩씩하다. 적어도 네 앞에서 만큼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가 입대를 한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입대한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그의 침대와 책상과 잠잘 때 언제나 손에 쥐고 있던 오래된 베갯잇과 주식을 사달라며 내게 맡기고 간 삼백삼십일만 원이 있고 그가 가장 사랑한 고양이 '미로'가 잠을 자고 첫 아르바이트비로 선물한 무선 이어폰이 놓여있는, 그가 당분간은 잠을 자지 않을 집으로 간다. 그의 방은 열려 있을 것이다. 닫고 올 걸 그랬나... 비어있는 방을 보는 일이 나를 씩씩하지 못하게 만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계속 씩씩해야 한다. 내가 그를 지켜 준다고 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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