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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r 17. 2021

받지마 절대.



불행한 시간은,

그것을 견디어 낸 스스로가 위로받을 만큼만 갖고 있어야 한다.

많이 가지면 마음이, 삶이.

무거워진다.






죽은 친구가 있다. 좋은 친구였다. 불알친구였다. 결혼을 하고 예쁜 딸도 낳았다. 아내와 딸보다는 친구들을 더 찾았다. 1998년 외환 위기 때 퇴사를 했다. 술과 친해졌다. 친구의 아내에게는 문제의 남편이 되었다. 결국 아침부터 술을 찾았다. 갈등 끝에 몇 차례 강제 입원을 당했다. 그리고 재활에 성공했다. 친구는 그가 치료를 받은 요양원에 취업을 했다. 그곳은 지방이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10년이 지났을까. 아니면 그 보다 짧거나 길었을 수도 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정리해고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몇 개월간 말하지 않고 퇴직금으로 월급을 대신했다. 그리고 술과 다시 재회했다. 떨어져 있던 시간을 만회라도 하듯 쉼 없이 마셨다.


결국 이혼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고 친구가 말했다. 그래야 정부의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술만이 친구를 위로해 주었다. 간 경화 진단을 받았다. 친구를 만났다. 기차역에 마중을 나온 그는 나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년의 얼굴로 눈에 띄게 변해버린 서로를 보았다. 옛 기억과 너무 다른 모습은 상대를 욕지거리로 비난하기에 충분했었다.


우리는 술잔을 나누었다. 이후로 친구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나는 휴대폰이 없었다. 친구는 항상 술에 취해 전화를 했다. 내가 없을 때 딸이 친구의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이상하다고 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딸은 친구의 전화번호를 '받지 마 절대'라고 입력 해 놓았다. 친구가 전화를 하면 전화기에 '받지 마 절대'라고 나타났다. 받지 마 절대의 전화를 받게 되면 나는 서너 시간을 그와 놀았다. 수집한 음악 앨범을 크게 틀어놓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주었다. 함께 듣고 지내 온 추억의 노래들이었다. 전화기에서는 황홀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원하는 노래는 파일로 만들어 메일로 보내 주었다. 


나는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죽으라고 자주 말했다. 내 죽음을  떠넘기듯 죽어버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죽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다.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어했다. 친구는 내게 술에 취해 그린 그림을 한 점 주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꿈은 화가였었다. 물감을 손으로 찍어 그려낸 그림이었는데 그가 말하길 핑거페인팅 기법으로 그린 것이라 했다. 추상화 같았다.


집으로 계속 전화를 했다. 귀찮아졌다. 음악을 틀어 놓고 십 분에 한 번씩 확인만 했다. 그리고 언제 죽을 예정인지 묻기도 했다. 친구는 5월이라고 말했다. 조금 더 일찍 죽을 수는 없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나와 친구는 예정된 죽음을 가지고 희롱하며 실컷 놀았다. 그리고 친구는 얼마 후 혼자서 죽었다. 그의 엄마가 교회에 갔던 일요일 오전이었다. 5월이 훨씬 지난 후의 가을이었다. 몇 개월을 더 살았다. 어쨌든 죽었다. 나는 살아있다.


친구의 아내는 불속으로 그의 몸이 들어갈 때 통곡을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뜨거워 죽겠는데. 죽었는데. 그리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이제, 그녀는 불행의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갖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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