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에 의지하는 당신에게.
3.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무릎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릎 만을 보았고, 더 정확히는 무릎만 보였으며, 그 보다 더 정확히는 무릎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주위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때문에 보았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으며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볼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잠에서 깨어났다고? 나는 잠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깨어날 수도 없다. 어쩌면 내가 눈을 뜨고 잠이 들었거나, 눈만 감은채 잠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가능성조차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무릎만이 기억에 남았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거나 오해일 수도 있는데,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윤회나 부활을 믿는 편이 자신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기억이라는 현상을 믿는 것이 스스로 불확실한 것들에게 덜 시달리는 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현재를 기억이라고 믿게 되었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둠에서는 이 모순됨이 너무도 이상할 게 없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어둠은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곳'이라 말해서는 안되었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규정된 것이 없는 곳이지만, 무엇이든 규정할 수도 있었다.
나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의심은 나를 모든 것, 그러니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본래 혼란스러운 것이며, 그 혼란은 모든 것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나지 않는 혼란은 결국 질서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의심은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확인을 요청하고 난 뒤 -나 밖에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확인은 나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우주 질서와 같은 완벽한 하나의 혼돈을 진리로 발표하려 했다. 나는 시공간의 개념을 그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는데, 그것은 가장 멍청하지만 그만큼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시간과 공간에 이르려하면, 말하자면 기억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떠올리려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체념하려 돌아서면 기억이라고 믿는 현재에 대해서 확신이 서는 것이었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없는 확신에서 온 것이었다.
4.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다시 말하면 의식이라고 하는 세계로 다시 내가 돌아왔을 때, 나는 무언가 확신에 차있었는데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 정체를 말하려면 기억이 필요했는데 그 기억은 항상 기억의 뒤편으로 멀어졌다. 기억의 작은 조각 하나라도 붙잡으려 하면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분명한 것들은 불분명 해졌고 막연했던 것들은 더욱 분명한 사실이 되곤 했지만, 그마저도 더 확실히 해두려 하면 언제나 완전히 잊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었다. 처음부터 변하지 않은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으며, 모든 것을 보았고,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었으며 그것이 나와 무릎이었다. 눈을 떴을 때, 아니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무릎을 알아차렸을 때, 내 머리맡에는 검은 무릎이 접힌 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릎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거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시커먼 안도감과 함께 내 머리맡에 있는 무릎을 알게 되었다. 무릎은 낡고 헤져 있었다. 무릎은 형체가 없었다. 그래도 낡고 헤진 무릎을 내 정수리보다 약간은 오른쪽 방향에서, 만약 내가 고개를 돌리면 이마나 머리카락이 무릎의 굳은살에 스칠 만큼 바짝 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이 무릎이었고 낡고 헤지고 굳은살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내가 보았다는 사실은 기억에 없었다. 형체와 질감의 기억만 선명할 뿐이었다. 무릎에 대한 다른 것들을 알려고 하면 이내 내가 무엇을 알려고 하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무릎은 내게 요구하는 것 없이 거리를 좁히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무릎은 '본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치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어서 말하지 않듯이, 접혀 있는 것이 무릎의 본질인 것처럼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펴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접혀 있었기 때문에 '접혀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무릎은 그 뜻에 따라 단 한 번도 펴진 적이 없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피곤해졌고 다시 어디론가 조용히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5.
마침내 나는 빛의 세계로, 시간과 공간이 서로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곳으로 당도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기억하는 사실들- 하나 같이 작은 의심의 씨앗이 자라나서 완전한 믿음에 불편함을 주었는데, 나는 그 불편함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기억은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고 있으면 점점 따뜻해진다는 말을 듣고는 그 사실만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껴안고 있으면 따뜻해진다는 사실보다는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만을 기억하는 것이 보다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으로 기억하는 것만큼 우울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 보다 더 우울한 일은 선명한 기억을 믿지 않는 일이다. 내가 아는 한 기억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이성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시켜 사용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경험의 기억을 믿는 것보다는, 자신의 현재 경험이 실제인지를 먼저 판단하려고 한다. 그들은 기쁨의 순간을 느끼기보다는 분석에 시간을 사용하느라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정말 중요한 건 바로 이거죠. 지금 우리의 대화 경험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며, 나는 이 상황을 기억하는 한 사실로 믿는다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