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거대한 덤프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 휘청거린다. 안전을 위해 차량의 진행방향과는 반대로 마주 보며 걷는다. 등 뒤에서 달려드는 차량들을 믿을 수 없다. 운전자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이며 가속페달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고 가는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자동차를 마주 보고 걷는다. 대신 나는 자신과 함께 같은 곳을 보고 간다.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스팔트 포장의 가장자리가 흰색 선으로 칠해져 있다. 보행로는 없다. 가장자리 풀섶이 전부다. 흙이 조금 드러난 가장자리 부분도 그나마 거친 풀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발을 놓는 것이 조심스럽다. 거대한 25톤 트럭의 탕 뛰기 경쟁 속도에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어깨를 스칠 듯 지나가면 공기의 흐름에 순간 빨려 들어갈 듯 온몸이 휘청인다. 머리에 전기가 통한 듯 찌릿하다. 부실한 하체보다는 막강한 괴물을 조종하는 운전자에게 원망을 보낸다. 길 밖으로 밀려나 배수로의 경사면에 발을 딛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초록의 풀잎들을 두 손으로 쥐고 버틴다. 차량이 지나가면 버둥거리며 다시 올라와 걸어야 한다. 1분에 한 번씩.
멀리 채석장이 보인다. 그 괴물들이 줄지어 달리는 이유를 알겠다. 산 등성이 두 개가 반쯤 깎여 허연 살들을 들어내고 있었다. 산이 입은 상처는 얼핏 보아도 중상이다.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도 완전한 회복을 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 하겠다. 대략 전치 103년 이상의 진단서는 나올 것이다. 산을 통째로 깎아내는 사람들의 위대함이 자연현상에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궁금하다. 그걸 확인해 보려면 최소 백오십 년은 살아야 한다. 딸이 싫어할 것이다.
나는 한 때 -이런 단어가 요즘은 녹슬어 보인다. '라떼는'이라는 색 바랜 느낌의 단어인 것 같아서다.- 일명 난닝구 또는 메리야쓰라는 흰색의 속옷 상의를 입고 검은 색안경을 쓰고 저 높은 운전석에 앉아 모든 자동차들을 내려다 보며 달리는 꿈을 갖기도 했다. 얼마나 멋진가. 한쪽 팔꿈치를 차창에 걸치고 뜨거운 바람과 햇빛을 온 몸 아니 온 팔뚝으로 받아 들이며 검붉게 그을린 무표정한 얼굴로 핸들을 성의없이 잡은 모습이. 영화 아비정전의 장국영은 난닝구의 이미지를 맘보춤과 함께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랬을까. 생각은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생겨난다. 갑자기. 장국영.
산기슭을 휘감아 도는 구름이 참 멋지다. 는 생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제법 장맛비처럼 내리기 시작한다. 비옷을 입었다. 빗방울들은 내 두피와 어깨를 깨물듯 오독오독 귀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발걸음은 게으름에서 깨어나 조금 부지런을 떤다. 그래도 조급하지는 않다. 산을 오른다. 한 시간 정도 구부정한 길들을 따라 올라갔다.
문제가 생겼다. 큰 일이다. 생리현상. 성미가 급한 놈이다. 재촉이 심하고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간청하는 듯하더니 급기야 거칠게 밀어 부치며 공갈과 협박도 모자라 고문을 시작한다. 다리가 꼬이기 시작하고 걸음을 떼기가 힘들어진다. 만나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소용없다. 나도 만나고 싶다. 간절하게. 미팅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눈을 번득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거친 숨소리에는 신음 소리도 섞여 나온다. 장소가 없다. 오른쪽은 수직에 가까운 벽이고 왼쪽은 가파른 낭떠러지인 산 허리를 깎아 만든 도로다. 아... 미쳐 버리겠다. 어린시절 집에 오는 길에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걸으면서 모든 근심과 적정을 흘려 보낸 기억이 있다. 그 꺼끌하며 찐득이던 불쾌함은 잊을 수 없다. 또다시 그럴 수는 없다. 상상하지 마시길.
비장한 각오와 함께 전신의 근육과 세포를 최고의 긴장 상태로 유지하고 천천히 신중하면서도 급하게 걷는다. 누가 봐도 무슨일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걸음걸이였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른쪽의 막혀있던 벽이 조금씩 낮아지더니 어느새 낮은 둔덕이 나타났다. 희망은 몸의 긴장과 인내심을 빠르게 소진 시킨다. 마침내 동물들이 지나다닐것 같은 샛길이 보였다. 어린 소나무들 사이로 들어갔다. 더 안쪽으로 길이 이어져있을 것 같았다. 급히 두리번 거리며 지질을 조사하듯 바닥을 훑었다. 조금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빗물에 길게 패인 곳이 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머릿속에 순서와 자세를 시물레이션 한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먼저 판초우의를 벗고 다음에는 배낭을 던지듯 내려놓는다. 물살에 패인 곳을 양다리로 걸치고 선다. 가장 깊고 넓은 곳이 포인트 제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방심하기 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한 번은 하기 마련이다. 집으로 들어설 때나 화장실 문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더한 경우는 허리끈을 해체하는 그 순간에 모든 일을 그르쳤던 일을 말이다. 긴장을 풀어 버리면 끝이다. 자칫 안도의 숨이라도 깊이 쉬게 되면... 생각하기도 싫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아랫배와 엉덩이에 힘을 주어야 한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다. 떨리는 건 손도 마찬가지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지뢰를 해체하는 폭발물 제거반 보다 최소 180배 정도는 신중해야 한다. 심리적 압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허리띠는 하지 않았다. 바지의 단추를 푼다. 지퍼를 내린다. 최고의 절정! 대부분 이때 실수를 한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흐트러지지 않는다. 최종의 순간까지. 주위는 아무도 없고 비는 부슬부슬 내린다.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느리게 더욱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 지금까지 잘 참아왔다. 천천히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골반뼈에 걸쳐있는 바지와 팬티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땀과 비에 젖은 옷들이 피부에 들러붙어있다. 엄지는 꼬물꼬물 피부와 속옷의 틈을 잘 파고들었다. 잘했다. 서둘렀으면 헛 손가락질에 모든 것을 개방했을지도 모른다. 알맞은 깊이로 위치를 장악한 엄지는 나머지 네 손가락과 협력하며 부드럽게 움켜쥔다. 너무 세게 쥐면 삑사리가 날 수도 있다. 라켓이나 당구 큐대를 움켜쥐듯 손바닥의 공간은 장악하되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처럼. 젖은 옷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다. 부드럽게 잘 내려가 주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운명을 이끄는 마지막 숨소리뿐. 심호흡. 이젠 더 이상 참을 수도 없다. 아. 절정의 절정!! 최고의 속도로 빠르게 앉으며, 최고로 빠르게 앉는 속도보다, 더 최고의 빠른 속도로, 움켜쥔 바지를 내.린.다!
으~~ ..하....아~~ 아! 아~......................................................................................................
......사............랑.......해......! 입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이 말을 되뇌었다. 왜 그 순간에 그런 말을 되뇌었을까. 모든것이 해소되는 그 쾌락의 순간을 사랑했을까. 아니면 일을 그르치지 않고 잘 견디고 인내하며 침착하게 대응한 나 스스로에 대한 애착의 표현이었나.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비가 다시 세차게 내린다. 빗물은 도로를 투명한 비단처럼 덮고 흘러내린다. 그 물결들을 처벅처벅 일정하게 조각내며 걷는다. 그런데 이런 똥 같은 경우가... 오늘 왜 이럴까. 이번엔 정말 대책이 없어 보인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전두엽을 모두 씻어버렸다. 당황함 빼고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다.
걸음이 빨라지고 굽어진 오르막을 오르며 고개를 돌리자 왼편에 난데없이 건물이 하나 있다. 굶주린 포식자의 눈빛으로 흥분하며 건물을 스캔한다. 신축으로 보이지만 사용하지 않아 오래 방치된 건물이다. '임대문의' 글씨가 보인다. 희망을 갖게 될까 두려워 엉덩이에 최대한 힘을 준다. 건물의 오른쪽 끝에서 시선을 뽑아 내려는 순간. 화장실!! 기막힌 타이밍. 어쩜 보란 듯 하얀 바탕에 검푸른 명조체의 또렷한 글씨가 내 눈에 띄었을까. 이곳이 사막이라면 분명 신기루라 할 것이다. 콧김까지 씩씩 뿜어낼 정도로 다급하게 흥분한다.
다가가는 십여 미터의 거리는 셀린 디온의 파워 오브 러브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느리게 움직이는 장면을 상상하시기를 권장한다. 화장실의 문이 열려 있기만을 간절하게 바라며 다가간다. 대부분 저런 건물은 모든 문을 폐쇄해 버린다. 만약 문이 잠겨있다면... 안된다.
운명이다.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덜컥! 누구도 모르리라. 이 순간. 화장실 안은 역시 거미줄이 엉겨있고 오래된 지하실 냄새가 났다. 물 내림 장치를 발로 밟았다. 물도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높은 수압으로 시원하게 변기를 쓸고 흘러간다. 나를 괴롭게 했던 배설의 강력한 요구를 매우 민주적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부득이하게 장소의 편법 증여만을 제외하고는 큰 오점을 남기지 않고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체중의 감소가 이루어졌다. 몸도 마음도. 가벼웁다.
주룩주룩 비는 더 많아졌다. 차량 한 대가 멈추며 어디까지 가는지 묻는다. 무주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고맙지만 걸어서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이참에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전한다.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덕유산을 넘어서면 경남에서 전남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정상에 오르자 비가 그친다. 비구름은 산 중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멀리 구름에 가려진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숨을 고른다. 조금 늦추고 싶었다. 때로는 게으름이 자신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힘이되기도 한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일은 번거롭다. 발의 통증 때문에 뒤로 걸을까 생각했지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산 중턱에 다다르자 비가 다시 내린다. 정확히 말하면 비가 내리는 중턱까지 내려온 것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을 테니까.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길을 물었다. 구천동까지는 5km가 넘게 남았다고 한다. 아. 이런... 언제나 그렇지만 지금의 시간은 육체가 정신을 설득하기 시작한 뒤 주도권을 확실하게 행사하는 시간이다. 할 수 없다. 구천동 방향으로 가자. 적당한 곳이 나오면 머물러야겠다.
리조트, 펜션, 가든의 모습들만 보인다. 날은 벌써 침침해 지고 있었다. 구천동행 버스를 기다리는 아주머니께 비옷을 덮어달라고 부탁했다. 빨리 걷기 시작했다. 통증이 심해지는 과정이 넘어가더니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마치 경보를 하듯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상태에 도달한다. 시선은 발로 향했지만 발의 움직임보다는 빗물 속에서 철벅 거리는 일정한 소리만이 느낄 수 있었다. 소리에 집중되었다. 세상에는 빗물을 밟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몸이 가볍고 떠오르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걸었다.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구천동에 도착했다. 믿기지 않아 이정표를 다시 보았다. 시계를 보니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혹시 내가 뛰었던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해방감. 평온함. 몸과 마음이 안정된 상태가 되자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이제서야 들린다. 물은 계속 흐르고 있었을 것인데 그동안 내게는 들리지 않았을까.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듣지를 않았나? 그것도 아니다. 나는 들을 수가 없었다. 듣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 선별적이거나 왜곡된 상태로 차별화하여 인식한다. 심한 경우는 아예 인식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인식과 판단의 오류도 조직화된 논리로 합리화하면 그 품은 따뜻하고 안락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때로는 목적에 따라 뇌의 편의를 제공받기도 한다. 독서에 집중할 때 안경테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목적에 따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정작 위험한 것은 지나친 욕망이 만들어내는 착각이나 환상이다. 과한 욕망에 의해 떠돌던 의식이 동원되기 시작하면 현실은 목적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고 그 세계는 일반 보통의 현실 체계와는 급격한 괴리가 일어난다. 원치 않는 현실의 결과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을 현실부정이라고 한다. 사실 무엇이 실제이며 현실세계인지는 철학적으로도 커다란 난제이며 누구도 자명하게 해결해 주기는 어렵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합리적이지만은 않다.
나는 모든 것들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만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 말한다. 자신이 지금 믿는 것만이 전부 아닌가?
오늘은 먹고, 자고, 싸는 일만이 내게 가장 확고한 사실로 증명된 날이다. 숭고하다고 말하는 정신세계보다는 이 원초적이고 솔직한 생물학적 세계의 본질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감각 인식의 오류가 없는 완벽한 믿음을 주는 유일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그만큼 신뢰할만하다. 내 몸을 이루는 살. 이 살덩어리만이 실체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살에서 시작되는 통증과 쾌감은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정신. 적어도 이 살덩어리에서 배양되고 태어난 정신만이 순수하며 믿을 수 있다. 육체를 부모로 둔 정신은 타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쓸데없이 낯선 거리를 방황하거나 배회하지 않는다. 정신은 육체의 보호와 격려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단순하지만 책임져야 할 것들을 알고 있고, 책임감이 있는 정신은 편한 휴식과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 작지만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생각이 깊어지면 물 소리는 그만큼 멀어져버린다.
빨아서 매달고 다니던 양말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오늘 입은 옷에서는 냄새가 난다.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다.
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사람이 그리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