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말

사랑과 신뢰

그 느낌을 사랑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건 쾌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by 아무개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지극한 지향을 말하며 그러한 감정의 상태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정신적 지향은 사랑 이외의 다른 열망이나 신념으로 표현되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은 개인이 경험한 좋은 느낌의 자극을 지속시키려는 강렬한 욕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욕구는 자기를 희생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선택에 대한 당연한 기회비용이나 투자로 인식합니다. 사랑이 지속되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기희생은 사랑의 감정에 대한 자기 확신의 가장 강렬한 수단이자 메시지입니다. 메시지는 외부보다는 자기를 향하는 강력한 믿음의 증거로 내면화되어 갑니다. 감정의 자기 확신이 극대화되면 이때, 타인들은 그에게서 놀라울 만큼의 소명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가 사랑의 숭고함에 찬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는 무한한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실연, 이별 이런 것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는 사랑을 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모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좋은 느낌을 계속해서 받고,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 느낌을 정말이지 사랑합니다. 그런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려는 헌신을 진실로 믿고 열정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저 느낌을 충분히 즐기고, 그 감정의 바다에서 마음껏 빠져 있어야 했습니다. 누리기만 했어야 했는데 그만 감정을 너무 믿었습니다. 왜 그러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그 무한하고 격정적인 몰입을 자기 말고 누가 더 잘 알고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 사랑을 , 그런 자신을, 누군들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믿고 신뢰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좋은 느낌을 언제까지 계속 주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상대방 자신도 모르니까요. 상대에게서 받는 느낌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감정도 변합니다. 변화된 자신의 감정은 상대방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그 좋은 느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실망스럽습니다. 상대를 향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과 자기 신뢰까지도 말입니다. 결국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무너지게 되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섣부르게 자기를 파괴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 놓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원망을 수단으로 자신을 지탱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새롭게 자신을 세우는 것보다는 수월하고 방어하기에도 좋습니다. 이것은 중독과 같아서 아주 위험합니다. 멈추어야 합니다.


느낌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느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소유할 수도 있지만 신뢰해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이 이렇습니다.









당신은.


나의 어떤 느낌을 좋아했습니다.


나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신뢰했습니다.


정말 사랑했으니까요.


그 진실을, 그런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지금은,


그 이유로 불행을 느낍니다.


설마, 내가 불행을 선물했나요?


그렇습니다.


사랑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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