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이 지나간 후 회상하는 여름
때로는 질 줄 알아야 한다.
안간힘을 쓰고 이기려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날씨일 것이다.
여름의 한중간에는 무엇 하나 잘 해낼 요량이 없다.
"네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과 다르게 여름은 무서워서 피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여름과 싸워보려고 객기를 부리다 더위를 먹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때로는 머리를 좀 식혀야 정상적인 생각과 말이 가능하듯이,
더위의 한중간에서는 더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더위가 한풀 꺾인 후에야, '아 정말 더웠다.' 하고 생각할 틈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여름이었다.'라는 문장만 붙이면 아련해지면서 없던 추억이 생긴다고 하는 밈이 있다.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여름은 버텨내고 겪어내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졌던 시간을 애써 아름답게 회상하며 넋두리하는 시간일 것이다.
여름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것은, 그 험난한 시간을 버텨온 자신에 대한 격려일지도 모른다.
올여름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웠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가, 나가기를 거부할 정도의 날씨였으니깐.
환경 문제가 기업의 경영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 체감이 될 정도로 대두되고 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앞으로를 예상 가능한 '예고' 시간이 있었다. "곧 엄청 더워질 것이니까 준비하세요" 같은 일종의 더위의 그라데이션이 있었다. 요즈음의 여름은 예고 하나 없이 성큼성큼 찾아온다. 해가 갈수록 그 걸음이 당차서 꽤나 당혹스럽다.
오늘은 한풀 꺾인 여름의 틈을 놓치지 않고 어느 카페의 야외에 앉았다.
가만히 여름을 들여다보니, 매미 소리가 들린다. 최근 서울에 고추잠자리가 있냐 없냐로 친구와 갑론을박을 한 것이 기억이 나는데, 눈에 띄지 않던 고추잠자리도 보인다. 봄이 향기와 함께 찾아왔다면, 여름은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설레었던 초여름을 지나 혹독한 여름의 한중간을 지나는 중이다. 다행히 7월은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부했던 시간이었다. 오랜 취준의 기간 중 가장 밀도 있게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다. 유의미한 성과도 있었고, 나라는 사람의 방향성에 대해 피드백도 하게 되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다음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내 삶에서도 뜨거운 여름을 지나 수확의 계절이 가까워져 감을 조금씩 느낀다. 물론 아직 해가 오래 떠 있으니 좀 더 달려볼 요량이다. 더위 먹지 않고, 차근차근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힘을 빌려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을 최근 갖게 되었는데,
눈에 불을 켜고 인사이트를 찾으려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더 좋은 인사이트들이 떠오른다.
인풋과 아웃풋 사이에 잠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콘텐츠 가드닝>에서도 나오는 부분인데, 삶으로 적용해가고 있다.
길은 있다.
나의 씨앗을 찾고, 가꾸고, 기다려주는 일에 자신감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