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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un 21. 2019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딸에 쓰는 편지 1

너 가기 전까지 앞으로 몇 통의 편지를 적을지 모르지만,


건강하고 즐겁게

일단 이 두 단어가 생각난다.


단비가 대학에 가서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것 같으니,

별 다른 말을 안하고 싶지만, 아빠라는 사람은 참 이상해서 꼭 한 마디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그래서 억지로 다른 말을 생각해 본다.

음...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말을 해 봐야 잔소리 같을 것이고,

결국 결정은 너 스스로 해야 하니, 내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조금 의심스러운건 사실.


동생이랑 아직 열심히, 정말 열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니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거 잘 살 수 있을까?' 상당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니 모습을 생각해 보니, 아주 잘 살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렇다고, 아빠나 엄마에게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 달라는 말은 아니니 지금처럼,

동생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듯, 솔직하게 너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좋으면 좋은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말이다.

참고로 화를 내도 되지만, 화풀이를 나에게 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나도 사람이라...


지금까지 너를 보아온 결과, 니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대략은 알 것 같다.

그러니 일부러 잘 지내는 것처럼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연습을 하고 도전해라. ㅎㅎ


물론 내 바램은 니가 항상 즐거운거지.

그래서 기도한다.


어제 오랜만에, 너 태어났을 무렴, 친하게 지내던 지인(아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급언어)과 전화 통화를 했다.

참 반갑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다음주에 만나기로 했다.

십 몇년만에 만나는 거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당연히 너 이야기도 했지.

단비가 이제 대학을 간다고,

말도 안된다고, 이야기하더라.


계속 너랑 같이 지낸 나는, 니가 대학가는게 말이 되는데,

오랜만에 니 소식을 들은 그 분한테는 말이 안되게 들렸나보다.

생각해 보니, 니가 대학가는게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 인지,

아니면 니가 대학가는 나이가 된게 말이 안되다는 이야기인지 살짝 헷갈리지만... 쿨럭


너 기저귀 갈아주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수 차례 '말도 안돼'를 말하더라.

아마 니가 돐이 아직 안되었을때, 거의 돐이 되었을때 였을 것이다.

나, 엄마, 그분, 미유키라는 일본친구, 미유키의 친구, 그리고 너와 같이 떠난 여행이었다.


보스톤에서 타던 승합차 기억나지?

그 차를 막 샀을때였다.

그 차로 니가 태어난 시카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갔었다.

카시트에 앉아 몸도 가누지 못하던 너와 같이...


차로 쉬지 않고 가면 약 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니까 상당히 먼 자동차여행이었지.

90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약 900킬로미터의 여행.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인디애나, 오하이오, 팬실베니아, 뉴욕을 경유하는 경로였다.


끝없이 펼쳐지던 옥수수 밭, 바다같이 보이던 이리호수,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기억나지만,

몇일간의 여행동안 니가 큰일을 안봐서 걱정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던길, 한적한 고속도로 쉼터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드디어 너의 큰일 보았던 소식에 다 같이 기뻐했던 일이 기억난다.


큰일을 잘 보는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물을 많이 마셔라.


참 더디게 가는게 시간인데, 지나서 뒤 돌아보면 엄청 빨리 가 있다.

니가 좀 더 나이가 들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해하겠지만...


어쨌던, 시간이 지나니 니가 커서 이제 어른 비슷한 것이 되고 있고,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될 날이 가까이 오네.


아직은 집을 떠나지 않았으니 니가 가고 나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은 해 보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은 가봐라.

그래야 나도 내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철 없게 들리수도 있겠지만, 재미나게 잘 지내는 니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래서 난, 약간은 설레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을 거다.

즐거울 거다.


그러니 걱정은 하지 말고,

건강을 잘 챙겨라.

옆에서 잔소리하면서 너의 건강을 챙기고 싶지만, 나도 내 인생이 있기에...


니 건강은 니가 알아서 잘 챙겨라.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잘 챙기마.

또 적을께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가

2019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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