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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ul 26. 2019

괜찮다. 일으켜 주마

걸음마

편지를 적으면서 되는 고민은 편지도 잔소리가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이럴땐 이렇게 하고, 저럴땐 저렇게 하면 된다'라든지

'이러면 안되고 저러면 안된다'하는 잔소리 말이지.

할 말이 그렇게 없나 하는 생각을 너도, 나도 하면서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는 훨씬 더 어른스러운데, 그지?


니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너를 봐와서 그런가 보다.

말 그대로 니가 세상에 나올때부터 너를 보았으니까 말이야.

너의 까만 정수리가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니가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는거였거든.

태어난지 10초도 안된 아이가 우는 걸 보면 참 안쓰럽거든.

그래서 나도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엄마가 안아주거나 내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곤 했다.

그게 습관이 되었나 보다.

니가 울면 뭐라도 해서 너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나의 습관말이다.


처음엔 나도 몰랐지, 니가 왜 우는 건지...

배고파 우는건지, 

기저귀때문에 우는 건지,

아니면 졸려서 우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울고 싶어 우는 건지 말이야.

그냥 울고 싶은때도 있기는 하다.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니가 왜 우는 건지.

그래서 울면 바로 니가 필요한 걸 눈치를 챘지.

그리고 도의 경지에 오르니 울기 전에 미리 준비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너랑 18년 넘게 살다보니, 이제 잔소리도 미리하게 되네.

쏘리.


혹시 니가 이런일 때문에 힘들고 저런일 때문에 괴로울까봐...

이제 그런것쯤은 충분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지?


아무리 준비해도 우는걸 막을 수 없고,

아무리 조심해도 넘어지지 않게 할 수가 없는데,

시간이 지나니 까먹게 되네, 이 사실을.


니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정말 신기하더라.

그리고 진짜 조마 조마 했다. 넘어질까봐.


하루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기어나오던 니가, 다시 보니 걸어서 오더라고...

정말 신기했다.

고작 한 두 걸음 걸었을 뿐인데, 어떤 서커스보다 신기했다.


그렇게 한 두걸음 걷고 너는 주저 앉았다.

꼬꾸라졌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어쨌든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고맙다.


그 이후, 넌 걸음마를 했고 무지하게 넘어졌다.

무릎팍이 까지고, 손도 까지고, 때론 얼굴도 까지고...

무릎에서 피가 나고, 손이 빨개지고, 얼굴에 상처가 생길때마다 참 속상했지만,

그래야 걸을수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래도 조금 덜 다치게 하는거였다.

그래서 그 습관이 아직 내 몸에 베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덜 다치게 하려고...

그래서 잔소리도 하고...

이제 어른인데, 그지?


너 어릴땐 니가 넘어지면 달려가 넘어진 너를 일으켜 세우고,

무릎팍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며 혹시 피가 나지 않는지,

팔꿈치나 손바닥은 괜찮은지 확인하곤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혹시 지내다가, 살다가 넘어지면, 그 때 내가 니 옆에 있다면,

우리딸 무릎팍은 괜찮은지, 팔꿈치는 괜찮은지, 손바닥은 괜찮은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살다 넘어지면 울어도 된다.

그럼 아빠한테 와라.

이제 젖 대신 맥주 한잔하며 어디 까졌는지 이야기 해 보자.


어른으로 산다는게 만만하지 않겠지만, 사실 별 거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걸으면 된다.

걸음마 배우는 거랑 비슷해.


혹시 넘어졌는데 일어나기 힘들면 아빠 불러라.

달려가 일으켜주마.

보자, 우리딸 무릎팍은 괜찮은지, 팔꿈치는 괜찮은지, 손바닥은 괜찮은지...


2019년 7월 26일 저녁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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