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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Jun 29. 2019

오늘 하루 축하해

딸에게 보내는 편지 3

하루 하루가 너무나 비슷하지 않아?

학교에서 돌아온 너에게 "학교 어땠어?" 하고 물으면 너는 늘 "괜찮았어"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특별한 것 없었어?"

"맨날 똑같지 뭐"


하루 하루가 참 비슷하지? 특별할 것 없는, 맨날 똑같은 일상은 이렇게 만들어지니 말이야.


뭔가 다른 하루가 시작되면 그땐 너무나 새롭지만, 그 새로운 하루가 이틀 삼일 반복되면 다시 일상이 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항상 특별한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딸 오늘 어땠어? 특별한 것 없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뚜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그건 너무나 비슷해 보이는 '하루'지만, 사실하루 하루가 특별하다는 사실이야. 예를 들어, 생일같이, 일년에 하루밖에 없는 특별한 날처럼 말이야. 


생일은 특별한 날이지. 그렇지?

생일이 되면, 생일 선물도 받고,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고, 음... 또 그래 축하도 받고 말이야.

"생일 축하해"는 "니가 태어날 날을 축하해" 이런 뜻이지?


너도 축하 받아야 하지만 사실 나도 엄마도 축하 받아야 해. '축하'는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하는 인사잖아? 축하는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의미니까. 그럼 니 생일이 되면 난 "생일 축하해~"라고 너에게 인사를 하고, 너는 나에게 "아빠, 내 생일 축하해~"라고 인사하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일 반복되는 오늘 하루도 생일만큼이나 특별한 날인 것 같아. 

어제를 봐도, 그제를 봐도 그렇다. 어제 뭐 했는지 생각나? 혹시 그제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것 같다. 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천천히 꼭꼭 씹어 먹게 되잖아? 그것처럼 시간 지나는 것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이 생각나듯 잘 보낸 시간은 시간이 지나도 그 시간이 생각이 나지.


맛있는 음식은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이 생각나듯, 
잘 보낸 시간은 시간이 지나도 그 시간이 생각이 나지

어제 너랑 같이 광교호수를 한 바퀴 뛰었어. 물론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뛰었던 시간이 좀 더 길었으니까 그냥 뛴 걸로 하자.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쉽더라. 했던 이야기라고 해 봐야, "자 이제 뛰자" "힘들어?" "뛸만 하지?" "걸을까?" "게토레이 마실까?" "다시 뛰자" "오~ 생각보다 잘 뛰는데?" 난 이런 말들을 했고, 넌 "오케이" "아니 아직 괜찮은데?" "응" "힘든데 좀 걷자" "목말라 게토레이 마시자" "오케이" "그렇게 저질 체력은 아니거듣?" 이런 말들을 했었지.


인생을 바꿀만한 뭐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생각날 만한 시간이었다. 


너무 힘차게 달려서 오히려 내가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할 만큼 의욕적이던 모습, 

채 오분이 지나지 않아 조금만 걷자고 소심하게 말하던 모습, 

다시 뛰자고 말했을 때 싫음이 살짝 얼굴에 스치던 모습, 

그리고 이마와 코끝에 땀이 맺히던 모습,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운동 좀 한 사람의 표정이 나오던 모습과

힘차게 한 걸음 한 걸음 너와 함게 뛰어 나가는 느낌과

힘들어 천천히 걸으며 같이 숨을 고르던 느낌,

나뭇잎 우거진 좁은 산책로를 같이 지나는 느낌은 앞으로도 생각 날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니가 대학을 가기 위해 떠나기 전까지 같이 달리기를 해야겠다.

귀찮더라도 같이 뛰자. 목표는 광교호수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뛰는 거니까.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어쩔 수 없느니 억지로 해라'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하는 건 나도 싫으니까.

가능하면 니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난 니가 앞으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이 빨리 지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면 좋겠다.


오늘도 즐겁게 보내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 축하해'라는 인사를 할 수 있게


하지만 운동은 하기 싫어도 했으면 좋겠다.

운동은 '내일 하루도 축하해'하기 위한 저축이라 생각하자.

그럼 오늘도 같이 뛰는 거다?


2019년 6월 29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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