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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Feb 11. 2020

아이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어른이 되고 있는 딸에게

아이가 타던 자전거는 군데군데 꽃이 그려진 보라색 자전거였다. 하얀 타이어에 휠도 보라색, 얇은 판을 겹쳐 놓은 듯한 촘촘한 손잡이 고무 손잡이도 보라색이었다. 손잡이 끝에는 무지개 색깔의 술이 바람에 반짝이며 휘날리던  보라색 자전거를 아이는 참 좋아했었다.


네발 자전거의 좋은 점은 넘어질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 억지로 몸을 자전거 한쪽으로 빼내어 기울이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이 자전거를 좋아했다. 보라색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렸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아이가 아무리 쌩쌩 달려봐야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뒤뚱거리면 간신히 앞으로 나가는 것이 다이긴 해도 자전거에 올라 혼자 앉아 있는 자신이 대견하고 어른스러운지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귀엽기도 했다.


“이제 나 혼자 자전거 탈 수 있어! 봐봐!”

“우와! 대단한데”

“이제 안 도와줘도 돼!”

“진짜네! 멋지다 하하”


화창한 봄, 하루가 멀다 하고 자전거를 타러 동네 공원으로 갔다. 아이는 네발 자전거를 좋아했다. 그렇게 조금씩 네발 자전거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아이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우아하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보라색 자전거 뒷바퀴에 붙어 있던 보조 바퀴들을 보았다. 이제야 그 보조 바퀴가 보였던 걸까? 아이는 보조바퀴를 보며 말했다.


“이거 떼 줘!” 목소리가 단단했다.

“넘어질 텐데”

“나 이제 자전거 잘 타! 이거 없어도 돼!”

“안 될 텐데?”

“괜찮다니까! 빨리 떼 줘!”


알고 있다. 뒷바퀴에 달아 놓은 보조 바퀴는 넘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속도를 낸다든지, 마음대로 방향을 돌린다든지 하는 자전거의 묘미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특히 속도를 조금 낼 요량이면 왼쪽이나 오른쪽에 있는 보조바퀴에 부딪혀 속도가 전혀 나지 않는다.


“오늘만 이렇게 타고 다음에 떼 줄게!”

“지금 떼 줘!”

“지금은 안돼, 집에 가서 떼야 돼”

“집에 가면 꼭 떼 줘! 진짜다?!”

“오케이”


보조바퀴를 떼어 준다는 말에 신이 난 아이는 보란 듯이 핸들에서 두 손을 놓고 다시 공원을 달렸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약속한 대로 보조바퀴를 떼어 내었다. 보조바퀴를 고정하고 있던 너트를 렌치로 풀었다. 아이는 옆에 앉아 신기한 눈을 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왼쪽 보조바퀴를 떼어 놓았다. 아이는 냉큼 바퀴를 집어 들어 바퀴를 돌렸다. 아이가 왼쪽 보조 바퀴를 가지고 노는 동안 나는 오른쪽 보조바퀴를 떼었다. 보조 바퀴를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며 ‘얘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보조바퀴가 떨어져 나간 자전거를 벽에 기대어 두었다. 아이는 이제 보조 바퀴가 필요 없으니 버리자고 했지만 난 혹시 모르니 잠깐 두자고 했다. 신발장을 열고 구석에 보조바퀴 두 개를 내려놓고 신발장 문을 닫았다.


다음날 집에 오니 아이는 기다리는 게 지겨워졌는지 빨리 자전거 타러 가자며 짜증을 내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내심 재미가 나기 시작했다. ‘이놈 지가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고...’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네발 자전거와 두 발 자전거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두발로 페달을 굴린다는 것만 빼고는 완전 다른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직접 당해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는 현관에서 자전거 핸들에 붙어있는 작지만 엄청나게 시끄러운 벨을 울리며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속으로 ‘좀 더 편하게 더 타지, 왜 이러나?’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며 ‘직접 당해봐라’하는 쌤통 같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웃으며 아이와 함께 공원으로 나갔다.


동네 앞 공원으로 가는 길은 엎어지면 코 닳을 곳이라 배가 고픈 조선시대 양반처럼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오늘은 왠지 오래 걸릴 것 같았고 실제로 공원까지 가는 길은 20분이 넘게 걸렸다. 아이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이었는데 자전거에 올라 탄 아이는 페달을 밟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에 올라 탄 아이는 왼쪽 발을 땅에 대고 오른쪽 발을 페달에 올렸다. 그리고 오른쪽 페달을 밟는 순간 자전거는 기우뚱하며 오른쪽으로 기울어졌고 그럼 아이는 급하게 오른쪽 발을 페달에서 떼어 땅을 짚었다. 그리곤 다시 왼쪽 발을 페달에 올리고 왼쪽 페달을 밟으면 자전거는 다시 왼쪽으로 기울어졌고 그럼 아이는 왼쪽 발로 땅을 짚었다. 이렇게 오른쪽으로 한번 그리고 왼쪽으로 한번 기울어지며 나간 거리는 고작 1미터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바둥거리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쌤통이기도 했다. ‘두 발 자전거가 만만하지 않단다’ 속으로 생각했다.

“잘 안돼? 도와줘? 잡아줘?”라고 말하고 이어서

 “오른쪽 발로 페달을 밟으면서 왼쪽 발을 빨리 올려서 왼쪽 페달을 밟아야 돼,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내가 말했던 대로 오른 페달을 밟으며 왼발을 페달에 올려놓으려고 낑낑거렸다. 아이의 얼굴에 땀이 맺히지 시작했다.


“자전거 잡아줘?”

“응”

금방이라도 울듯한 눈으로 아이는 말했다.


나는 안장 뒤에 있는 조그만 손잡이를 잡아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었다. 아이의 양발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우리는 공원에 도착했다.


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자전거가 살짝만 기울어도 아이는 겁이 나서 발을 땅에 디뎠다. 무서워서 천천히 가려할수록 자전거 타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아이가 이해할까?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고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고 있는 동안엔 괜찮았지만 혼자 시도할 때는 페달 두세 번 돌리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전거 타는 것은 스스로 터득하기 전까지는 설명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아이가 타고 있던 자전거를 밀었다. 자전거의 중심을 잡고 빠른 걸음과 느린 달리기 중간 정도 되는 속도로 자전거를 밀었다. 속도가 조금 붙자 아이는 자전거 속도에 놀라 눈이 커졌다. 하지만 속도에 익숙해지자 놀란 눈은 반달 미소가 되었고 입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와~”

“재밌어? 안 무서워?”

“응! 안 무서워! 잡고 있지?”

“응”


아이는 신이 나 페달을 밝기 시작했다. 페달 속도를 못 이긴 발이 페달에서 떨어졌다. 그럴 때면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다시 출발했다. 아이가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을 때 아이가 모르게 자전거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이는 위태롭게 기웃뚱거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뭔가 달라진 것을 눈치챈 아이는 나를 불렀다.


“잡고 있지?”

“....”

“잡고 있는 거지?”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뭐?”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려던 아이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다.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아이가 웃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아이처럼 아이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아이를 본 사람처럼 나도 웃었다.


“봤어? 나 혼자 탔어! 봤어?”

“봤지! 와 정말 잘 탄다! 멋진데?!”

“봤지? 나 혼자 타는 거! 봤지?”

“그래! 봤지!”

나도 웃었고 아이도 웃었다.


아이는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 다시 자전거를 탔다. 출발할 때 처음 조금 자전거를 밀어주다 손을 놓았고 아이는 혼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은... 그리고 예상과 같이 아이는 넘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일으켰다. 그렇게 아이는 수십 번을 넘어졌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일어났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밀었다. 이제 아이는 혼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기웃뚱거렸지만 제법 오랫동안 페달을 밟았다. 신이 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았다. 몇 번이고 뱅글뱅글 돌며 바람을 맞았다.


그렇게 이제 막 혼자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식당이 없는 기숙사라 삼시 세 끼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기숙사이다. 아직 보조바퀴를 단 네발 자전거 같던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는 아이처럼 집으로 온 아이는 대학에서의 처음 학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집으로 온 아이는 다시 보조바퀴를 붙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조바퀴를 단 네발 자전거는 페달을 움직이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는다. 첫 방학을 보내는 아이는 네발자전거에 올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즐겼다.


방학을 마친 아이는 네발자전거에서 내려와 두 발 자전거를 타러 다시 학교로 갔다. 아이의 표정이 가벼웠다. 혼자 두 발 자전거를 타던 아이처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아이처럼...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기숙사에서 혼자 두 번째 학기를 보내는 아이의 목소리가 밝고 가볍다. 가끔 아니 종종 넘어지겠지? 그래도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 자전거에 올라 타 혼자 페달을 굴리며 다시 달려가겠지? 내가 잡아 주지 않아도 혼자 잘 갈 거야!


아이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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