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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Aug 08. 2021

한라산이라...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04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아침을 먹고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딸이랑 제주도 감. 숙소 어디?"

"헤이 서귀포. 서귀포 위치. 무난하고 저렴. 주변 커피. 맥주. 관광 등 맛집 많음"


숙소는 그렇게 해결되었다.


친구는 한 달 내내 서귀포에 있었다고 했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숙소를 거기에 정할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딸도 서귀포에 있자고 했고 특별한 이유 없이 서귀포에 있었던 친구의 경험은 우연일 뿐이겠지만 필연으로 받아들였다. 


친구는 다시 서귀포에 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어디에 뭐가 좋고, 뭐가 맛있고, 어디는 꼭 가봐야 하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는 둥 저런 생각을 했다는 둥... 친구가 많이 외로운가 보다. 이야기 들어줄 금붕어라도 한 마리 사줘야겠다. 모기, 벼룩, 바퀴벌레, 무당벌레 등도 괜찮겠지만 이 놈들은 친구의 이야기에 질려 도망갈 것이 분명하다. 도망갈 곳 없는 금붕어에게는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의 선택을 마치면 다른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그 선택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린다.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여행 준비 역시 행복한 일이기는 하지만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여행이 끝나면 이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나겠지?

정신 차리자!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공항에 어떻게 갈지 고민해야 한다. '공항버스냐? 운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운전은 주차비, 공항버스는 버스비. 햄릿의 고민보다 더 어렵다.


아내는 버스 타고 가라고 했다. 딸은 차를 가지고 가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하고 싶은 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럴 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는 그러니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서는 당연히 아내 편을 들어줘야 할 것이다. 당장 어머니는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혼자 찾아가서 '어머니 지난 일은 죄송하지만, 아버지 그러니까 어머니의 남편이 어머니 편을 들어주면 좋겠어요? 아니면 어머니의 시어머니 편을 들어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못된 놈'이라는 이야기는 듣겠지만... 


아내와 딸의 대립이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는 있겠지만 해결책은 비슷할 것이다. 나중에 혼자 딸과 빙수를 먹으며 '지난번은 미안하지만 네가 결혼을 했다 쳐, 나중에 남편이 너 편들어주는 게 좋겠어? 니 딸 편들어주는 게 좋겠어?'라고 이야기하면 될 문제이다. '아빠 나빴어!'라는 이야기는 듣겠지만...


아내에게 혼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다. 남편이라면 자동반사적으로 고개가 아래 위로 움직여질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는 갈 때는 못 데려다 주지만 올 때는 데리러 가겠다는 제안을 했다. 올 때 편하게 오는 건 아주 구미가 당긴다. 딸도 흔쾌히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목록을 다시 보았다.

1. 목적지 - 해결

2.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교통수단 - 해결

3. 지낼 숙소 - 해결

4. 일정 - 미해결

5. 현지 교통편 - 미해결


 이제 4번과 5번이 남았다. 미해결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쯤 되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마는 돈이 문제고 준비가 싫을 뿐이지... 


자 그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보자. 4번과 5번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5번, 차는 가장 저렴한 경차로!

4번, 일정은 딸이 가고 싶어 한 여행이니 딸에게 양보했다.


드디어 나의 여행 준비는 끝이 났다! 야호~~


와이프가 말했다.

"비 안 오는 날로 한라산 등반 예약해. 딸이 가고 싶어 했거든"


한라산이라....

'날씨는 기상청에 한라산 등반은 국립공원에 전화해야 하나?'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탐방 코스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가 있다. 성판악이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했다. 정상까지 가지 않는 탐방 코스는 어리목, 어승생악, 석굴암, 영실, 그리고 돈내코 탐방코스가 있다. 이왕 가는 김에 정상까지 가기로 했고 코스는 성판악으로 정했다. 수요일로 예약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한라산 등반은 참 잘했다 싶다. 하지만 두 번가고 싶지는 않다. 둘째 딸과는 제주도 여행을 하지 않을...


마지막 남은 4번 일정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 - 출발

화요일 - 미정

수요일 - 한라산

목요일 - 미정

금요일 - 미정 후 집으로


이 정도면 훌륭하다.

<번외> 한라산 탐방코스를 정하게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한라산 등반 어떻게?'

'한라산 영실코스는 왕복 5시간. 담날. 팔자걸음. 괜찮으면 성판악 코스. 왕복 10시간. 시도해봐도 좋을 듯. 성판악은 예약해야 함'

'10시간이면 서울 오는 거 아님?'

'ㅋ. 사려니 숲길은 반드시 갈 것. 내비 찍으면 주차장 나옴. 포장마차 있음'

'사려니가 무슨 뜻임?'

'몰라'

'바보'

'...'

'영실코스도 천지 감?'

'천지는 백두산이고 한라산은 백록담! 띨띨아!'

'당연한 거 아냐? 멍충이!'

'... 사려니 숲길은 비옷 가져가. 포장마차에서 어묵 먹어. 나도 어묵 먹으면서 니 생각 많이 했음'

'어묵 콜. 니 생각은... 아침 어디서 먹어?'

'아침은 내가 모르지. 알아서 해! 아! 잠시만...'

'빨랑 말해!'


나이가 들면 수다가 느는 게 분명하다. 문자로 수다를 떨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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