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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Dec 05. 2021

만족감이나 충족감은 노력이나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

잘 자라거라.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야.

매년 겨울이 되면 이제 10년이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를 창고에서 꺼낸다.


2010년 한국에 왔던 그 겨울에 장만한 것인데 플라스틱으로 된 받침이 부러져 이렇게 저렇게 세우다 작년에는 선반에 기대 두어었다.


사실 작년엔 ‘이제 그만 버려겠다’생각하고 있었는데 베란다 구석 해피트리가 있었던 빈 화분이 보였다.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를 화분에 심었다. 너무 잘 어울려, 버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겨울이 되면 가끔 와이프는 벽난로 이야기를 한다. 지나간 일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보스톤 학교옆 작은 반지하 원베드룸 아파트에 있던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를 와이프는 그리워한다.


보스톤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운데 작은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이면 세상 부러울 것 없어졌다. 동네 유학생들 모여서 불멍하며 쿠킹 호일에 고구마를 싸서 장작불에 넣고 얼마를 기다려 먹던 고구마의 맛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비록 벽난로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고민끝에 중고 등유난로를 장만했다. 주유소에서 등유를 받아 와서 손 펌프로 난로에 기름을 넣고 불을 붙였다.


낯선 기름냄새가 어색했지만, 할머니 생각이 났다. 라면냄비를 곤로에 올려 불을 붙일때 나던 냄새다. 창문을 열어 잠깐 환기를 시켰다. 찬바람이 들어왔지만, 난로는 따뜻했다.


등유 난로위에 고구마를 올렸다. 고구마 껍데기가 타며 고구마 익는 냄새가 났다. 겉이 바스락거리게 탄 고구마를 반으로 가르면 노란 고구마 속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포크로 찍어 한 입 두 입 먹다보면 어느새 껍질을 긁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난로 뚜껑에 고구마를 올린다. 밤이 되면 식구들이 난로 주위에 모여 앉아 고구마 타는 냄새를 기다린다.


고구마를 굽지 않을때 난로는 공기를 너무 건조하게 한다. 겨울만 되면 건조해 하는 아내는 난로때문에 더 건조해 하는 듯 하다.


몇일동안 당근에서 주전자를 살펴보던 아내는 드디어 오늘 주전자를 사기로 결정했다. 아내가 보내준 주소로 주전자를 가지러 갔다. 할머니가 반짝거리는, 수박만한 주전자를 들고 계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전자를 안고 집으로 왔다.


몇번 헹구어 내고 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얼마를 기다리니 물 끓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조금 뒤 주둥이에서 하얀 김이 나온다.


난로 덕에, 주전자 덕에, 고구마 덕에 마음이 든든해 진다. 이제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만 잘 자라면 되겠다.


만족감이나 충족감은 노력이나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위로가 된다.


2021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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