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intessence of life
THE QUINTESSENCE OF LIFE
벤 스틸러가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2013년에 개봉했다. 영화에서 사진작가 숀 펜이 현상 담당자 벤 스틸러에게 'LIFE' 잡지의 폐간호 표지 사진으로 전달한 필름의 스물다섯 번째 사진의 이름이 'The quintessence of life'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삶의 진수' 혹은 '삶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quintessence'는 순수한 본질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상당해 위험한 일인데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가고야 마는 이런 단어에 꽂혀 영화가 끝나도록 그 단어에 붙들려 내 '인생의 정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맥주 한 캔, 두 캔, 세 캔을 비우고서야 결국 포기하고 만다. 행여 친구에게서 문자라도 오면 '옳다구나'싶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예고도, 서론도 없이 뭉탱이 문자를 보내고, 불쌍한 친구는 오밤중에 '삶의 정수'라는 봉변을 당하게 된다.
세미나 스케줄을 정리하기 위해 문자를 한 어리석은 친구에게 물었다.
'네 인생의 정수는 뭐냐?'
준비 없이 받기엔 너무나 무거운 질문이라 영어로 물었다.
"What is the quintessence of your life?"
잠시 멈칫한 친구가 답했다.
"해석이 안되네... 단어 뜻을 몰라서...ㅋㅋ"
"멍충이"
"아, 지금 구글 번역기 돌렸다. ㅋㅋ. 나 지금 맥주 한 캔 먹었는데... 어려운 질문이네..."
"나 맥주 한 캔 먹다 생각하기 시작해서 이제 막 세 캔이 되었다!"
이쯤 되면 생각의 두서도, 이야기도 흐름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게 수십 개의 뭉탱이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아침에 다시 읽어보니 당최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인생이 어쩌고, 추억이 어쩌고, 엄마가 어쩌고, 할머니가 어쩌고, 형제가 어쩌고, 친구가 어쩌고 하는 인생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흐르는 듯 싶다가 갑자기 냄새 이야기도 나왔는데 도대체 '삶의 정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좀 더 읽어보니 '삶의 정수리 냄새'라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농담으로 낄낄거렸으니 무슨 진지한 이야기를 기대하겠는가?
결국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가스레인지도 아닌 곤로에 쥐포를 구워 먹는 걸로 끝이 났다. 안주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삶의 정수'가 곤로 위의 쥐포로 끝이 나는 걸 보니 인생 뭐 별것 없다. 아마 이것이 '삶의 본질'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