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2
나는 분명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축은 절대 아니다.
대신 나는 책과 잘 논다.
한때 냄비 받침이나 벌레 압사도구 같은 일차원적 용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책의 과거를 떠올리며,
진짜로 '책과 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part2) 심화 편
도서관 가기
긴 역사를 묵묵히 이어가는 도서관은 참 고마운 공간이다. 요즘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하는 기회가 생겼는데,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 새삼 환기하게 된다. 공식적인 공부가 끝난 지금은 도서관에 가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 됐지만, 한 때는 여러 동네의 도서관을 오갔더랬다. 강남구,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동대문구, 서초구, 성북구, 영등포구, 용산구, 종로구, 중구...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빌려야겠다. 그전에 모바일 회원증이 잘 살아 있는지 확인부터..!
서점 가기
365일 늘 그 자리에서 수많은 책들과 함께 반겨주는 서점은 언제고 찾아가기 좋은 놀이터다. 나는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한 곳을 이용한다.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하나만 파는 습성이 있기도 한 거 같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항상 그곳을 찾는다. 언제부터 이용했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오래됐는데,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생 때 아빠와 언니와 함께 책을 사러 갔던 일이다. 그때 내가 산 책 보다 언니가 산 <삼국유사>가 너무 부러워서 언니 눈치를 보며 책을 빌려달라 청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변화 많은 세상에서 나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으며 미래까지 함께 할 거리는 믿음을 준다는 건 참 좋은 관계다! 공간과의 관계라, 매력적인 말이다.
독립서점은 생각보다 발걸음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독립서점에 들르면 책을 꼭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사실 책을 즉흥적으로 구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두 마음의 교차점에 닿기가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찾는 일이 많지 않다. 또 하나, 서점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오래 머물기에 미안한 느낌이 드는 곳이 많다는 것도 방문을 부추기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동네에 참새의 방앗간 같은 서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오가며 책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북카페 가기
북카페는 도서관이나 서점과 달리 변화가 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내가 즐겨 찾던 북카페는 사라졌다. 가보고 싶어서 오래도록 지켜보던 북카페는 작정하고 찾아갔더니 얼마 전에 사라졌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가보고픈 곳들은 있다. 문제는 내 활동영역과 거리가 있어서 대놓고 그곳에 목적을 두고 가지 않는 한, 나와 접점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어디에 어떤 북카페가 있는지 한 번씩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젠가 그 동네에 볼일이 있을 때 자연스레 방문할 수 있도록 내 관심의 끈을 헐겁게 유지하는 중이다.
북 토크 / 책 강연
가끔 북 콘서트에 갈 때가 있는데, 그중 특별했던 자리를 소개해보려 한다.
#<안녕, 오늘의 십장생> 북 토크
그림책 관련 브런치북인 [사치권장 프로젝트 - 마음의 장바구니]를 쓰고 있을 만큼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전문적이거나 깊이 있게 발을 들여놓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를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이수지 작가'를 바로 떠올리곤 한다. 이 북 토크를 신청하게 된 것도 이수지 작가의 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생각 이상으로,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유익한 자리였다.
시민 체험 프로그램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세심한 준비와 높은 퀄리티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바캉스 프로젝트 / 비키니 프로젝트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책 강연
사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책 강연이지만, 강연 제목은 조금 색다르다. '마음으로 가는 미술관 : 멈춰야 보이는 치유의 미술관' with. 이지안 도슨트.
이 강연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가 전하는 서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속에 등장한 예술 작품들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대한 해석이 있는 강연이다. 책이 점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만큼이나 강연 아이디어도 돋보인 시간이었다.
이지안 도슨트가 전시해설가일 뿐만 아니라, 미술치료사이기도 해서 더 깊이 있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장소 또한 인상적이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문관 명례방'을 처음 방문했는데, 그곳의 의미만큼이나 의미 있는 장소로써 자리하고 있었다.
타인의 서가 들여다보기
어디를 가든 서가가 놓여있으면 호기심이 동한다. 이 사람은, 이 주인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꼭 훑어보게 된다. 서가에 놓인 책들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은 흥미롭다. 예상했던 목록과 비슷하면 비슷해서, 다르면 달라서 재미있다. 또 누군가의 서가에서 내가 소장한 또는 읽었던 책들을 만나면 괜스레 반갑고, 그 빈도수가 잦으면 친밀감이 확 상승한다. 그리고 믿을만한 독서가의 서가를 볼 때면 내가 몰랐던 책을 하나라도 더 알고자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게 된다.
이런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독립서점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의 센스와 관심분야를 날카롭게 파악하게 되는..
북 펀딩
가끔 북 펀딩에 참여할 때가 있다. 독립출판물도 아닌데 왜 북 펀딩을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분명 북 펀딩 후에 일반 서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면 북 펀딩이 필요한 책이었는지 의문이 들곤 하는데, 아무튼 그런 내막과 상관없이 세상에 나오는 일을 응원해 주고픈 책들이 있다. 내가 북 펀딩을 하는 이유는 딱 그것이다. 진심 어린 응원!!!
책 관련 굿즈 펀딩
아주 가끔, 책 관련 굿즈 펀딩에 참여할 때도 있다. 정말 아주 가끔, 그 내용물이 어떻게 빠졌는지 궁금한 경우가 있어서다. 이건 기대의 영역과는 다른 이야기다. 순전히 그 결과물의 상태가 궁금해서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결과물이 기대 이상이었던 적은 없었다.
중고서적 찾아 삼만리
내가 원하는 책이 절판인 경우는 흔하다. 그렇다고 중고서적을 구입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 읽고 싶으면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니까. 무엇보다 난 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책은!
그런데 정말이지 소장하고픈 욕심이 치솟는 책들이 아~~주 가끔 있다. 그럴 땐 무슨 마음인지 정가보다 좀 비싸더라도 과감하게 구입하기도 한다. 단, 최상급이라는 조건 하에서.
나의 조건에 맞는 중고책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은근 재미있다. 그 일을 핑계로 중고서점을 찾아가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그러려면 적어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검색만 하면 줄줄 엮어 나오는 그런 책은 아니어야 한다.
책 장정
내가 해본 경험 가운데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책 장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해보고픈 작업이기도 하다. 해보고픈 마음이야 내 속 한구석에 고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일상에서 장정과 연결될 일이 없었기에 특별한 이유나 결심을 하지 않는 한 실행까지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예전, 논문 주제를 찾아 헤매던 시절에 매우 중요한 전문서적이 필요했더랬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책이라 사방팔방 수소문해도 구할 수 없었을뿐더러, 웬만한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없는 어마무시한(?) 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국회도서관에서 생존신고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곳 특성상 대출이 불가한지라 큰 맘먹고 한 장 한 장 복사에 들어갔다. 그곳 복사집 직원에게 주문했더라면 훨씬 깔끔하고 부피도 날렵했겠지만, 당시 복사비도 만만치 않았던 터라 직접 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똥고집이 좀 있었다. 그렇게 공들여서 복사한 책은 부피가 상당했다. 앞뒤 복사를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기도 했고, 학문적 이유라지만 책 전체를 복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굳이 단면 복사를 실시한 탓에 아담한 원본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복사본이 탄생했더랬다. 이렇게 힘들게 세상에 나왔건만, 학교 앞 복사집마다 제본을 퇴짜 맞았다. 달랑 한 권을 위한 제본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의 '피, 땀, 눈물'로 탄생한 복사본을 위해 장정하는 곳을 찾기에 이르렀다.
나의 '책 장정' 작품으로 왼쪽은 일기장, 오른쪽은 위에 소개된 책이다.
후에 저 전문서적과 상관없는 주제를 잡아 논문을 썼지만, 나의 이 삽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장정'과 만나는 기회를 잡았을뿐더러, 귀한 책의 복사본을 가질 수 있게 됐으니까.
H-er.
*커버 이미지 -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展에서, 마이아트뮤지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