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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을 나누는 사이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4

by 율하



얼마 전, 처음 들어보는 질문을 받았다.




혹시 좋아하는 책 중에 '나'랑 비슷한 캐릭터, 내용, 서사 등을 담은 책이 있으신가요?

'어, 이 책/글 나랑 닮았네!' 하는 그런 책이요.


여기서 '나'가 정말 저 말씀인가요?


네~.


음.. 어렵네요. 책 한 권이라..

단편이나 시편은 몰라도 책 한 권이 떠오르진 않아요..ㅜ

그런 생각을 크게 떠올리진 않는 거 같아요..

집에 가서 서가를 들여다봐야 할 듯요. 너무 좋은 질문이라 답이 어렵네요..^


단편이나 시도 좋습니다!!

아님 다음에 만날 때 각자가 좋아하는 책이나 글이나 시를 가지고 만날까요?


네. 좋은 질문 감사해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이.. 멋진걸요!!


덕분입니다.




그렇게 톡은 끝났고, 집으로 오는 내내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딱 떠오르는 책이 없었다!!

'나'와 닮은 캐릭터, '나'와 닮은 서사의 책이라.. 흠..

이건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집에 와서 책꽂이를 훑으며 생각해도 역시나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의 독서량이 빈약한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없다고?!

나에게 살짝 섭섭해지려는 찰나, 책이 아닌 영화로 방향을 틀어 보니 속속 대답이 떠올랐다.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맡았던 캐릭터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 빌리의 캐릭터

<아는 여자>에서 이나영이 맡았던 캐릭터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가 맡았던 캐릭터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던 캐릭터

...

이와 같은 캐릭터 속에서 나는 나를 느꼈다.

물론 오롯이 사적인 견해로다가..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더 즐거웠고, 더 아팠고, 더 슬펐고, 더 기뻤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책 속의 인물들에게서 나를 느끼지 못했을까, 곰곰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이유를 찾았다.

영화와 달리 책은 캐릭터에게 나를 투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인물에게 동화되어 읽기 때문에 나와는 별개로 인물 자체로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지만, 나와는 상관없지만 그저 그 인물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 내 독서의 방향 같았다.

<스토너>의 삶을

<자기 앞의 생> 속의 모모의 삶을

<채식주의자>의 영혜의 삶을

<고래>의 춘희의 삶을

<존재의 형식> 속 재우의 삶을, 그리고 레지투이의 삶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 속 화자의 삶을

<윤동주 평전> 속 시인의 삶을

...

나는 투명하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더 놀라웠고, 그래서 반복해서 읽었고, 그래서 밑줄을 그었다. 거기엔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하여 좋아하는 책은 있지만, 나와 닮은 책은 없다.



이건 영화와 책이라는 각각의 장르와 상관이 있으면서도 또 상관이 없다.

그냥 개취.. 개인의 취향이라 부르련다.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좋은 질문 덕이다.

그 덕에 나를 또 알아간다.

나도 한마디 해야겠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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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구입한 책과 함께-----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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