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3
나는 오롯이 저녁형 인간이다.
얼마 전, 한 작가님이 댓글에서
"작가님은 밤에 늦게 주무시는 거 같아요. 저번에 새벽 3시 넘어서 댓글 주셨던 게 생각나요."
라고 남겨주신 걸 보고 새삼 나의 늦은 활동을 환기했더랬다.
새해마다, 월초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노라 다짐하지만,
아니 일찍까지는 아니더라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지는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영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
또한 작가소개란에도 버젓이 써둔 것처럼
나는 오롯이 느리..게 굴러가는 사람이다.
성미가 꼭 느린 것만은 아니지만, 여유 있는 걸 좋아하고 찬찬히 하는 것을 즐긴다.
이런 내가 적잖이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아침 독서다.
언젠가 지인이 토요일 아침에 열리는 독서모임에 나갔노라고 전했다. 세상에, 조기축구도 아니고 골프모임도 아니고 아침 독서라니..! 시간이나 날씨에 구애를 받는 일도 아닌데 이른 아침부터 한다는 것이 그저 놀라웠다. 취미생활을 그렇게 전투적으로 하다니..!?
그런가 하면 어떤 독서모임은 리포트를 쓰듯 정해진 글을 쓴다고 한다. 그 또한 놀라웠다. 말로만 들어서는 스터디 모임 같았다. 사람마다 다양한 성품과 스타일을 갖고 있으니 각자의 취향껏 살아가면 그만이겠지만, 적어도 예술을 즐기는 취미라면 속도와 질량에서 조금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 이것도 개똥철학이겠다만..
자유로움
여유로움
평화로움
...
.....
꽃 피움
아무튼 이런 내가 봄부터 독서모임을 하나 시작했다.
이 모임의 특징을 이름 짓자면, 한마디로 느슨한 모임이다.
우리는 모임 일정을 몇 번씩 번복할 때도 있다. 다들 프리랜서인지라 사전에 충분히 인지가 된 부분이다. 정중히 양해를 구하지만,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독서모임이지만, 책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혹시 먼저 가야 하는 인원이 생길 수도 있으니 책 이야기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할까,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 또한 우리 모임스러운 진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회 차까지 진행되었는데 아직 모임 이름도, 모임에 대한 시스템도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하나 모임과 함께 고민해나가고 있다. 서두를 필요가 뭐 있겠나. 함께 만들어갈 시간이 분명 더 길 텐데..
재미있는 건, 책을 다 읽지 않고 올 때도 있다. 사정이 있어서 모임날까지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여기선 노 프라블럼!이다. 심지어 대놓고 스포를 해도 아무런 지장을 안 받는 사람들이다. 해당 모임이 끝났다고 차후에 책을 마저 읽지 않을 사람들도 아니다.
우리는 책으로 세계일주를 떠날 수도 있고, 벽돌책을 깨부술 각오도 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만들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답을 내린 건 없지만, 그 어느 것도 못할 일은 없다.
모임의 회수가 좀 쌓이면 매거진에 하나씩 올려볼 생각이다. (개인적인 아카이빙 성격으로다가..)
이 느슨한 모임이 어떤 색을, 어떤 향을, 어떤 맛을 지니게 될지 퍽 궁금하다.
H-er.
*커버 이미지 - <취향가옥 : Art in Life, Life in Art> 展, 디뮤지엄,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