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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책과 놀기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1

by 율하



나는 분명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축은 절대 아니다.

대신 나는 책과 잘 논다.

한때 냄비 받침이나 벌레 압사도구 같은 일차원적 용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책의 과거를 떠올리며,

진짜로 '책과 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part1) 방구석 편


책정리

책장 안의 책을 정리하는 방법은 많다. 우선 크게는 도서분류법에 따라 각 구역을 나눠 지방자치체제를 구축한다. 그런 다음 각 섹터별로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장르별, 작가별, 출판사별로 구분 짓는 것이 가장 무난한 구성일 것이다. 그 외에 가나다순이나 키순으로 왼쪽 정렬 / 오른쪽 정렬을 해볼 수 있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순으로 무작위 배열을 할 때도 있는데, 별 거 아닌데도 꽤나 진지해지곤 한다.

번외로, 책을 옆으로 누이거나 뒤집어 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건 일종의 '책의 혈액 순환'을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책이 한 자세로 오래 있다 보면 아랫면은 닳거나 눌리는 일이 많고, 반대로 윗면이나 책등은 빛이 바래고 꺼낼 때마다 같은 부위가 쓸리게 되기 때문에 가끔씩 책의 포즈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지르기

이건 보통 기분이 업된 상황보다 다운된 타이밍을 노리는 게 훨씬 타율이 좋다. 다운된 기분을 업 시키고자 좀 더 과감해지기 때문이다. 서점 앱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겨 있던 책들을 뭉터기로 구입할 때의 희열은 주문한 책 부피의 몇 곱절이다.

주의사항 : 가끔은 다운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독서'라는 긍정 에너지로 치환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훑어주기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며 '언젠간 읽을 거야..'라는 자기 암시를 하는 행위다. 시식 코너를 도는 기분이랄까.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희망회로를 돌리며 괜스레 뿌듯해지는 배부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포인트 : 특히 품절이나 절판된 책이 있다면 더더욱 으쓱해지면서 차기 '지르기'에 큰 밑거름이 되어 준다.


책탑 쌓기



책탑을 쌓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해진 기간 동안 읽을 책을 쌓아놓고 파이팅을 불어넣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신입생 책들과 친해지기 위해 가까운 곳에 쌓아놓기도 하고, 얼마간 읽은 책들을 쌓아놓고 책걸이를 하기도 한다.




책장 넘기기

뭔가 소일거리가 필요할 때 하는 정말로 무용한 작업이다. 성경이나 사전처럼 아주 얇은 내지의 책 또는 사전이나 이론서처럼 두께가 있는 책이 제격이다. 말 그대로 책장을 한 땀 한 땀 넘기는 게 전부다. 아는 내용이나 예전에 체크해 놓은 것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뭔가 나름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Tip. 어렸을 적엔 실제로 공부에 약간의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


읽을 책 목록 만들기

앞서 나왔던 '훑어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의 행위다. '훑어주기'는 주문을 거는 유쾌한 놀이라면, '읽을 책의 목록 만들기'는 좀 진지한 놀이다. '훑어주기'는 즉흥적인 부분이 강하다면, '읽을 책의 목록 만들기'는 계획적이고 고민의 시간이 녹아든다. 물론, 계획이란 지켜지기보다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뭐 어떤가? 새로운 마음으로 또 계획을 세우면 된다. 그러니 계획을 세울 때는 원대하게, 자신 있게, 과감하게!!!


사고 싶은 책 장바구니에 채우기

다른 글(아래 링크 첨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서점 앱의 장바구니 채우는 것을 즐긴다. 현재 이용하고 있는 서점 앱의 장바구니는 200권이 최대치다. 늘 자리가 부족해서 품절된 책은 없는지, 다른 곳에서 구입한 책은 없는지 종종 확인하고 정리하곤 한다. 별생각 없이 장바구니 담기를 눌렀다가 거절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것도 좋은 삶이겠지만, 형편껏 절제하며 신중하게 책을 선택하는 삶도 나름 재밌다. 그렇기에 장바구니에서 만큼은 신나게 플렉스 할 수 있도록 장바구니 양을 늘려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다.

01화 Viva la Vida


정리할 책 고민하고 솎아내기

이건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책장은 한계가 있는데 자꾸 들여놓기만 할 수는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첫 번째다. 그다음으로 건강하지 못한 책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픈 이유가 있다.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줬는데 이상한 얼룩과 구김이 생겼다든지, 책 스스로 본의 아니게 병이 났다든지 했을 경우에는 아주 길고 긴 장고 끝에 떠나보낸다. 아끼는 책은 몇 년씩이고 고민을 하다가 큰맘 먹고 버리기도 한다. '책을 사랑해서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vs 깨끗하지 않은 책 때문에 심적으로 부대끼는 상태'가 오래도록 대치하며 나의 심기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깨끗하지 않은 책의 기준은, 자연스럽게 생긴 얼룩이나 낡음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긴 파손이나 해충에 의한 문제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아주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간혹 구입한 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헌책방으로 보내는데 이런 경우에는 조금의 미련도 없다. 외려 중고서점에 팔아서 돈이 생기니까 은근 공돈 생기는 기분이다.


필사하기


나는 필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평소 팔을 많이 사용하는 터라 팔에 무리가 따르는 필사를 지양하는 편이다. 하지만 필사는 정말 좋은 독서법이라 생각한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예전에 필사한 노트를 발견해서 기념으로 남겨본다.

김승옥의 「생명연습」 부분





*그중 가장 재밌는 건..

누워서 책 읽다가 잠들었다가 눈 뜨면 다시 책 읽는 것..!!!!!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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