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0
지금까지 내가 끊임없이 사 모으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책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 욕심이 있었던 나는 책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가방 속에 늘 책이 들어있는 편이다. 책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니 나의 시간을 채워줄 총알을 넣고 다녀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책이 들어가지 않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가방은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책을 천천히 읽는 습성 탓에 한번 내 가방에 들어간 책은 책꽂이로 돌아가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겉이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그래서 북커버를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북커버가 유행이 될 정도지만, 북커버를 낯설어하던 시절부터 줄곧 이용해오고 있는 충실한 고객이라 하겠다.
커버를 커버하다.
어쩌면 불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없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사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세상엔 필요악이라는 것도 있는데, 필요사치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비 오는 날 명품백이 젖을까 봐 품에 꼭 끌어안고 뛰어가는 이들의 사치와는 분명 다른 결의 문제다. 북커버야말로 진정 커버해야 할 것을 커버하는 대단한 사물이다.
문제는 책의 사이즈가 다양한지라 북커버를 사용하는데 한계가 좀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지 사이즈는 너무 라지 했고, 스몰 사이즈는 너무 스몰 했다. 둘 다 마침맞은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원치 않게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너무나 멋진 나의 몇몇 북커버는 그렇게 책장에서 긴긴 잠을 자야만 했다.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아무 쓸데없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나무거울'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에게 어떤 북커버는 근사한 나무거울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나무거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 그렇지 그 누구도, 그 어느 것도 허투루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믿는 편이다.
나의 기다림은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드문 일이긴 해도, 크기며 두께며 놀랍도록 딱 들어맞는 책과의 만남을 이뤘기 때문이다. 책과 북커버의 이상적인 궁합을 보면서 기다린 만큼 기쁨은 더했다. 뭐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다림의 끝을 만나는 건 상황의 크기와 상관없이 즐거움의 열매를 맛보는 일이다.
살면서 딱 맞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만나는 일이, 그 사실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건 참으로 유쾌하고도 힘이 되는 경험이다. 사람이든, 신발이든, 의자든, 직업이든.....
우리는 살면서 딱 맞는 친구(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통칭해서 친구라고 부르자)를 만났을 때 배가되는 삶의 에너지를 알고 있다. 어쩌면 그 행운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때로 작은 신발에 억지로 발을 욱여넣을 때도 있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불편한 시간을 참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거울이 될지언정, 진정한 친구를 끝까지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
세상의 참견에도 씩씩하게 늑장을 부려보련다.
기어이 오고야 말 마침맞은 만남을 위하여..!
H-er.
*커버 이미지 -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이용한 퍼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