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돌아보는 모임, J언니가 준 질문리스트 첫 번째 항목에 시선이 멈춰버렸다. 내 몸, 내 신체 부위를 떠올려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망설이다 문득,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피부가 많이 건조한 편이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독 엄마 유전자를 타고난 편인데, 그중에 하나가 피부타입이다. 지성 피부에 나타나는 트러블이 없어서 좋긴 한데, 여름을 제외하면 바디로션을 필수로 발라줘야 한다.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희끄무레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피부로 먼저 안다.
샤워 후 촉촉하게 대우받는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수시로 부엌살림을 만져야 하는 내 손은, 챙겨 바른 핸드크림이 채 흡수되기도 전에 다시 또 물에 닿아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중간 중간 아이의 먹거리를 챙기며 집안일도 겸하려다보니 크림이 발라져 미끄덩한 손으로는 효율이 떨어졌다. 금방 또 젖을 텐데..하는 생각에 어쩌다 한번 씩 바르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틈새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몰입한 사이, 내 손은 건조한 상태 그대로 자주 방치되곤 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젖고 마르고 젖고 마르고를 무한 반복했다. 바르는 즉시 수분을 몽땅 앗아가 버리는 손소독제도 거들었으니, 가뜩이나 건조한 내 손이 몇 배로 수난을 당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건조함을 타고났다 해도, 이십대 때는 내 손도 꽤 보드랍고 보암직했던 것 같은데, 그동안 마구 부렸던 세월이 미안하고, 고맙고, 좀 더 아껴볼걸 후회도 된다. 나도 할머니가 되면 우리 엄마 손처럼 되어 있으려나?
우리 엄마 손을 떠올려본다. 오랜 세월 살림에 의해 단련된 엄마의 손은, 마디의 굴곡도 없이 멋없게 뻗어있고 거죽은 두터워져 마치 장갑을 낀 것 마냥 두루뭉술하다.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은 어렸을 때 문틈에 끼는 사고로 인해 손톱대신 딱딱한 굳은살이 일그러져 있다. 조카가 세 살 무렵에 할머니 손가락이 무섭다며 피해 다니기도 했는데, 엄마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고놈이 얄밉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기특했다. 나는 몇 살이 되어서야 엄마의 그 손가락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까 되짚어 보게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건조하고 투박한 손이 부끄러워 악수를 청하는 상대의 손길에 선뜻 응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늘 자신 없어 하셨던 자신의 못난 손에 애정을 갖고 반지라도 하나 끼워주게 된 건 불과 몇 년 안 된 것 같다. 독한 락스를 이용해 화장실 바닥을 문지를 때도, 분갈이를 한다고 흙을 갈고 엎을 때도, 자식들 먹이겠다며 딱딱한 게를 성큼성큼 손질할 때도, 손주들 위해 차가운 눈을 여기저기서 쓸어 담아 뭉칠 때도, 엄마는 늘, 여전히 맨손이다. 장갑을 끼시라며 했던 소릴 또 해봐도, 맨손이 편하다며 일축하신다. 분명히 아파 보이는데, 엄마는 ‘여리디 여린 너희들 손이랑 다르다, 이런 것쯤 아무일도 아니다’며 꼿꼿하게 일관하신다.
엄마가 아무리 그리 말해봤자, 엄마의 손이 종종 칼에 베어 상처 나고 때로 락스에 살갗이 벗겨지며 계절과 상관없이 자주 갈라져 트는 것을 알고 있다. 맨손이 편한 게 아니라, 맨손이 익숙해져버린 거겠지. 자식들을 위하는 일에만 온 정신을 쏟느라 내 손의 안위를 돌볼 틈이 없는 거겠지. 날 때부터 못난 손이었던 것처럼, 이제 와서 예뻐해 준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부질없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 손도 분명, 엄마가 되기 전에는 꽤 보드랍고 보암직했을 텐데 말이다.
엄마로서 살아온 일기가 고스란히 퇴적되어 있는 엄마의 손을 나는 애정한다. 건조한 내 손으로 거친 엄마손을 맞잡으면, 사실 부드러운 촉감은 서로가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손의 온기는 늘 나에게 한량없는 포근함을 안긴다. 내 손을 잡으시며, 왜 이렇게 차냐, 크림좀 자주 발라라 듣기 좋은 잔소리를 하시면 마음의 온도까지 뜨끈하게 올라간다. 내 손이 엄마 손의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닮아간다면, 내가 엄마로서 잘 살고 있는 거구나,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