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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Dec 23. 2020

그러고보니 추운 겨울은 참 따뜻했어요

# 오늘의 느낌 :  포근하고 훈훈한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상투적으로 말하곤 한다. 그런데 조금 전 문득, 하얗고 보송한 이불 위에 사각형 창 모양으로 내려앉은 환한 햇살을 보고 생각했다. 아, 겨울도 나쁘지 않네. 오늘 같이 볕이 내리쬐는 날이라면, 겨울이라도, 좋네.


우리집은 남향이긴 한데, ㄴ의 세로획처럼 위치한 옆 동에 가려져서 해가 귀한 편이다. 오전 동안은 빛으로 인해 눈부실 일이 없고(동향인 본가에서는 아침 댓바람부터 커튼이 필수였는데 말이다), 한여름 한낮에도 뜨거운 태양빛은 우리집 베란다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오면, 비로소 집 안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우리집의 일부가 되어주는 것이다. 거실 바닥에, 안방 침대 위에 내려앉은 볕을 보는 동안, 포근함과 공간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겨울이 좋다는 DJ의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겨울’에 대한 춥고 차가운 이미지와 대비되는, 뭔가 새로운 관점이었다. 겨울의 따뜻함, 나비를 좇다가 꽃밭을 발견하듯, 단어를 좇아가다 어릴 적 추억으로 마음이 가 닿는다.


외풍이 사정없이 밀려들어올 부실한 창틈을 비닐과 문풍지로 대비하고, 연통을 길게 연결해 거실 한가운데 난로를 들여놓으면 비로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 난로 위에서는 자식들 씻길 물이 혹은 자식들 먹일 간식이 데워지고, 뜨끈한 수중기는 오래된 단독주택의 썰렁한 거실을 훈훈하게 채워주었다.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도록 뛰어 놀다 들어와 이불 밑에 꽁꽁 언 손과 발을 쑤욱 밀어 넣으면 찰나의 통각 끝에 온몸에 퍼지는 뜨끈한 기운이 더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네 남매 중 유독 손발이 찼던 나, 그래서 엄마는 더 자주 내 손을 안쓰럽게 쓰다듬어 주셨다. 엄마 손의 따뜻함 역시, 추운 계절에 더 절실하게 전해졌다.


교회 앞 모퉁이에 터를 잡고 계절 따라 주전부리를 파셨던 아주머니가 찬바람을 신호탄삼아 호떡을 개시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데일까봐 조마조마하게 베어 물어야 하는 호떡은 역시 겨울에 먹어야 참맛이었다. 한참을 그리워하다가 겨울이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기에 참 맛났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나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이 있었다. 바로 2011년의 겨울, 두 사람 몫의 온기가 더해졌기 때문이었을까, 내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추위 한 번 모르고 지나갔던 그해 겨울은, 내복을 껴입지 않아도 희한하게 춥지 않았다. 추워추워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되었던 그 겨울이 그저 신기하고, 적당한 온도로 데워져있는 내 손이 낯설면서 좋았다. 작디작은 아이가 나에게 준 그 따뜻함이 신묘하고 막측했다.


그 이듬해 태어난 작디작은 아이는 벌써 아홉 살이 되어,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서로의 몸을 부비며 온기를 나눈다. 겨울의 온기, 겨울의 따뜻함, 더 늦기 전에 헤아려보길 잘했다. 따뜻한 계절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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