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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Feb 20. 2021

어묵 하나에 바친 시간

먹고 그리고 쓰다

   

아들과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 호떡 두 개와 어묵 네 꼬치를 사들고 나란히 걸어오던 참이었다. 어묵꼬치 가격이 올라서 여러 개를 사도 딱 떨어지지 못하고 잔돈이 생긴다. ‘왜 하필 700원이야?’ 짤랑거리는 잔돈 때문에 시작된 이의제기는 결국 ‘동네 장사치고 영 비싸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엄마가 오뎅장사 하면 좋겠다!”     


갑작스런 아들의 말에 상념을 그치고 “왜?” 되물었다. 내가 어묵장사꾼 역할을 해야 한다면 시나리오라도 기발하고 세련된 것이길 기대했건만, 어묵을 실컷 먹을 수 있지 않겠냐는 단답이 돌아왔다. 아 이 단순한 족속이여! 먹을 수 있는 양도 최대 두 꼬치인 주제에, 자기 배를 어묵으로 꽉꽉 채우고자 엄마를 어묵장사로 내몰려 하다니 요놈! 단순한 족속인 아들에 비해 복잡한 족속에 속하는 나는 아들의 말 한마디 가지고 야속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엄마가 장사하러 가면 너는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느냐 따져 물으니 엄마한테 놀러 가면 된단다. 순간, 정신없이 어묵을 팔다가 배곯은 아들이 오면 어묵을 한 사발 챙겨 먹이는, 신파극의 한장면이 그려졌다. 무슨 선입견인지 어묵을 파는 일은 아무래도 아름답게 그려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후의 말들에 괘씸한 감정이 조금 더 실릴 밖에.      


“엄마가 맘 놓고 오뎅장사 하려면 너부터 잘해야지. 요즘처럼 해야 할 일 죄다 미루고 만화만 주구장창 보면 되겠어 안 되겠어? 밖에서는 오뎅 파느라 못 놀아주고 집에서는 오뎅 끼우느라 바쁠 텐데, 그래도 엄마한테 오뎅장사 하라고 할 거야?”

 

당장 어묵장사를 하라고 등 떠밀린 사람처럼 방법을 모색하는 건지 발뺌을 하는 건지, 목적도 알 수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엄마의 타령이 길어지자 아들은 그저 킥보드를 조금 세게 밀고는 작아져갔고, 들을 사람이 멀어지고 나서야 현타가 왔다. 아들은 단지 맛있게 먹던 순간을 회상하며 마음껏 먹는 행복을 상상한 것뿐인데!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바라보는 것이 능력이고 깊이라고 여겼다. 평소 아들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단순함’을 보일 때마다 대놓고 시큰둥했고, 이 단순한 아이가 얼마나 커야 나와 대화가 되려나 답답해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뎅장사’ 한 마디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되감고 있는 내가 지겹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쓸데없이 자주 진지해지는 내가 알루미늄 자전거를 끌고 는 인생이라면, 단순하게 듣고 적절하게 튕겨내는 쿨한 아들은 카본 자전거를 타고 슝ㅡ거침없이 달리는 인생 같다.


이쯤 되면 아들의 단순함과 쿨함은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떤 위대한 경지가 아닐까 싶다. 호떡 뒤집듯, 갑자기 아들이 좀 있어 보인다.  


“좋아 아들! 엄마는 오뎅값 안올리고 500원에 팔아서 빌딩 올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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