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전공수업인 ‘고전문학’ 시간이었다. 고전문학 작품 중 하나를 정해 자유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해보는 과제였다. 며칠째 고심하다가 고려가요 쌍화점을 떠올렸다. 대표적인 남녀상열지사라는 것만으로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는 계산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탄생한 인생 첫 단편소설 주인공 이름이 쌍화와 화점이였다. 절친인 쌍화와 화점이가 심부름으로 만두 가게에 갔다가 낯선 사람에게서 남성성을 느끼고는 순박한 상상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몸의 반응을 때로는 무던하고 때로는 명민하게 알아채며, 꿈속에 19금이 나와 당황했다가도 금세 잊고 명랑해지는 '볼 빨간 사춘기'의 마음이었다.
단상에 올라 직접 쓴 야한(?) 글을 읽는 내내 나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고, 교수님의 평가와 상관없이 평정심을 유지했으며, 발표 후에는 드디어 끝냈다는 후련함만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40대의 나로서는 결코 못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오래전 일을 떠올리며 <초고를 선보이는 마음>을 썼다. '솔직'보다는 '포장'을 무기로, 적당히 체면을 차리느라, 쪽팔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실 초고를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초고를 완성하고, 초고를 선보이고, 소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한 번 더 퇴고의 고행을 치른 후 드디어, <탈탈탈 털리고, 탈GO!>를 마지막으로 탈고했다. 12주 글쓰기에 도전했으나 10주 만에 탈고라는 완주도장을 찍었다. '다 쓴' 스스로가 참 대견했다.
10주 전만 해도 일주일에 글 한 편 쓰는 일은 이상향에 불과했는데, 오전에 한 편, 밤에 한 편 쓰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쓰기를 앞두고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작심하면 쓰게 되고 삼일 이상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증명해냈다.
대견함과 뿌듯함을 충분히 누릴 새도 없이, 두려움이라는 불청객도 맞아야 했다.
여기까지가 한계는 아닐까? 내가 더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만큼 나이먹고 보니 불안과 공허까지도 자연스러운 수순임을 알아간다.불청객이 아닌 예정된 손님을 맞이하듯 두려움을 감싸안으며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처음부터 가능할 것이라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능한 일이 되어 있는 그것. 바로 제작 지원사업에응모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