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을 품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전UP주부의 삶이 펼쳐졌다고 보면, 12년, 딱 아이의 나이만큼이 지났다. 고학년이 된 아이는 이미 내 손을 많이 벗어나있다. 한창 독립된 자아를 구축하는 시점이라 엄마 말에 바로 수긍하는 법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참을 인'자를 새기게 하는 아들에게 자주 그르렁거리지만,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만큼은 나도 순한 양처럼 변하고 만다.
'피아노'는 자녀가 배웠으면 하는 1순위이자 억지로는 절대 가르칠 수 없는 1순위기도 하다. 인상되는 학원비만큼 실력이 쑥쑥 늘지 않아도, 연주에 소울이 없어도, 그저 자진해서 피아노를 즐기는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다. 글쓴답시고 자꾸 떼어놓고 무엇이든 혼자하도록 내몬 적이 많았는데, 알아서 잘 커주는 것 같아 울컥한다. 감성형 인간다운 감상에 빠져 카톡창을 열어 몇자 끄적였다. 이렇듯 긍정의 기운이 온 몸에 퍼지는 일은 자주 있지 않으므로, 가슴에 꾹꾹 눌러담는다.
속고 속이는 아들과의 일상을 떠올리며 <눈감는 진짜 이유>를 썼다. 한다고 약속해 놓고 안 하고, 안 한다고 약속해 놓고 하는, 속터지는 행태가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한다는 약속과 안 한다는 약속에 매번 속아주는 이유. 나름의 명분을 찾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믿어주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90퍼센트 정직하다고 자평한 아들은, 자신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가끔 내가 요알못인 척하는 요리천재 아닌가 싶다. 능력이 없는데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으른 천재 요리사가 귀찮음을 떨치고아들을 위해 솜씨를 좀 발휘한 흔적이다. 썰고 담고 데치고 데우는 먹거리가 아닌 무려 '소불고기'라니!
주렁주렁 맺힌 글감 사이사이 장봐야 할 목록이 툭툭 자리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글쓰는 전UP주부의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는 카톡창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