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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Feb 24. 2020

도서관, 나만의 경험을 만드는 곳

헬싱키 중앙도서관 Oodi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읽는 것, 가방에 넣어 다니는 것,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책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만큼은 책과 나만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이렇게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 자체에서 단단한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핀란드에서도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게 만드는 것들로 꾸리는 여행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공간의 이름은 Oodi(오디), 헬싱키의 중앙도서관입니다. 발음마저 괜히 귀엽다 느끼는 건, 제가 그 공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 정도로만 알고 갔던 Oodi는 도서관 이상의 '경험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이런 경험을 해봐야 해'라는, 애초에 정해진 경험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누구든 그곳에서는 자기만의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그게 가능하도록 하는, 개인들과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본문은 '-다'체로 씁니다.



'사람'이 완성하는 디테일


1층은 도서를 구매 또는 자동반납하거나 기념품을 사는 공간이다. 2층은 개별/그룹 스터디룸과 3D프린팅 실험실이 주요 공간. 계단식 또는 개방형으로 모여 앉을 수 있는 자리와 아이나 어른이 게임하는 곳도 눈에 띈다.



핵심은 3층이었다. 책 대여 가능. 장서는 수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류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픽션, 논픽션 같은 일반 분류 방식에 LGBTQIA+(성소수자)까지 더해졌다. 아동 서가는 높이를 확 낮췄고 간단한 놀이도구들도 보였다. 같은 층엔 음료나 샌드위치 등을 파는, 작은 카페테리아도 있었다. 여기서 산 게 아니어도 가져와서 3층 내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소음이나 냄새는 없었다.


사람들은 이 공간이 '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경험을 하는 곳'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배려와 스스로 하는 적절한 수준의 절제가 있다면, 그 공간의 활용 범위는 상식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종류가 십 수가지는 돼보이는 책상과 의자들, 거기에 맞는 조명들도 눈길을 끌었다. 자세 잡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도, 편하게 기대어서 e-book이나 SNS를 볼 사람도, 친구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만 찾으면 된다. 아이들도 양말만 신은 채로 그 넓은 곳을 자유롭게 다닌다. (부모가 적절한 제재는 한다.)


휠체어나 전동차를 타는 사람들을 위해 크게 양옆으로 계단 없는 길도 당연히, 있다.


이건 디테일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 여기도 옷걸이가 곳곳에서 보였다. 그것도 어른용과 아이용으로 높이를 나눠서. 핀란드는 공공기관, 카페나 식당 등 대부분의 공간에 외투를 거는 옷걸이가 있다. 외투만 걸어둘 수 있어도 많은 사적 공간이 확보되기 마련이기에 좋고, 개인용품을 이렇게 둬도 안전하단 게 더 좋고.


'구조'가 완성하는 디테일


3층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건 여기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여기서 가장 '많은 경험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이와 그 가족들, 1020세대의 학생이나 청년들, 나이 지긋한 이들이 모두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3층에 모이지만 '그 목적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공간은 세심하게 구획돼 있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유모차를 세워두는 구역도 따로 있다. '애를 여기 데려오면 어떡해', '애를 데려오니까 유모차 때문에 앉을 데가 없지'와 같은, 원망이면서 때로는 혐오인 말이 나올 수도 나올 필요도 없는 것이다. 배려와 절제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예방되거나 해결되기가 어려운 문제란 것도 분명히 있는데, 이 때 제 매력을 드러내보이는 게 결국 구조(시스템)이다.


멋진 공간의 필요


이곳이 멋지다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함께 모여 있는 곳이면서도 각자의 이용 목적과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게 '잘' 설계된 구조. 그 공간을 성숙하게 활용하는, '평범한' 사람들. 이런 공간이 '일상'일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의 꽤 많은 문제들이 꽤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Oodi 홈페이지에는 이런 소개가 있습니다. Oodi is a non-commercial, urban public space that is open to all. 공공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 누구든 환영한다고 알려져있지만 알고 보면 '단'이라는, 합리를 가장한 씁쓸한 조건이 숨겨져 있고 조건이 은밀하고도 쉽게 동의 받는 곳들이 여전히 많음을 우리는 알죠.


금요일에 방문했고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 걸 보며 나왔는데, 구글맵의 정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월-금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토-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바로 옆에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콘서트 홀인 핀란디아 홀, 호수(실은 뙬뢰만이라 불리는 '만'), 공원 등이 있어 찾기 쉽고 주변을 찬찬히 걷기도 좋습니다.

책과 책을 기반으로 한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라면, 건축이나 디자인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어딜 여행하든 '여기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하는 분이라면 시간을 내어 방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분 좋은 영감의 시작이 될 거라고 자신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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